80대 살해 뒤 “기억 안 나” 오리발 내민 男 ‘무기징역’

재판부 “죄질 극히 무거워”

80대 이웃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잔혹히 살해한 후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은 50대 남성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영진)는 살인 및 특수주거침입,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52)에게 이 같이 선고하고 보호관찰 5년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 8월 2일 강원도 양구에서 피해자 B씨 집에 몰래 들어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정신질환 치료제를 복용해 사건 당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검사가 심증만으로 자신을 기소했다” “다리가 불편해 범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 집 방범 CCTV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 외에 제3자가 출입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 집 출입문에 묻은 혈흔에서 A씨와 B씨 DNA가 확인된 점, 한여름이던 범행 당일 검은색 긴팔 니트와 긴바지, 검정 장갑, 슬리퍼를 착용한 데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점도 유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또 범행 이튿날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집 마당에서 물건을 불에 태우고, 빨래를 한 것은 증거인멸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여겼을 주거지에서 갑자기 잔혹하게 살해됐다”며 “피해자가 느꼈을 극도의 공포심과 고통, 무력감은 도저히 가늠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이튿날 아침 요양보호사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피해자가 다른 사람과 있는 걸 봤다’며 이야기해 혼선을 일으켰다”며 “죄질이 극히 무겁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면서도 유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선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진술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태도를 보면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조금의 미안함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질책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것과 관련해 생명 자체를 박탈할 만한 사정까지 존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 점, 현재 국내에서 사형 존폐를 놓고 위헌 논쟁이 이어지는 점,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 점 등을 감안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청구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출소 뒤 재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사회 구성원들과 어울릴 기회를 줄 수 없다고 판단해 무기징역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