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탄핵과 맞바꾼 방송3법, 대통령이 거부하면 생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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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 기자]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9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 남소연 |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네요, 무슨 의도인지..."
더불어민주당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당론으로 정한 지난 9일, 국회 상황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국회 앞 현장에 있던 언론노조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포기했다며, 어떤 꿍꿍이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당초 국민의힘은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예고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날 오후 더불어민주당이 이동관 위원장과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하기로 하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포기했다.
방송3법 내주고 이동관 지킨 국힘
국민의힘의 의도는 곧 드러났다.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을 내주는 대신, 본회의를 종료시켜 이동관 위원장의 탄핵을 막았던 것.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상황에서 이뤄진 본회의 표결에서 방송3법은 큰 무리 없이 통과됐다. 방송3법 중 방송법 개정안과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투표는 176명이 참여, 176명 찬성했다.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투표도 175명이 참여해 175명 모두 찬성했다.
방송3법은 그동안 언론 현업 단체와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언론독립 법안이다. 이 법들은 KBS(방송법)와 MBC(방송문화진흥회법), EBS(한국교육방송공사법)의 이사 수를 대폭 늘리고, 공영방송 사장 선출 등 이사회 운영에서 정치적 입김을 막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3대 공영방송 이사들의 추천은 대통령과 국회가 독점하고, 이사회도 여권 우위 구도로 맞춰지도록 돼 있다. 현재 KBS 이사회는 여권 추천 7명, 야권 추천 4명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고, MBC(6 대 3), EBS(7 대 2)도 마찬가지다.
전임 정권에 임명된 이사들이 있더라도, 이사 몇 명만 해임하면 여권 우위 구도를 만들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사회 장악을 통해 정권 성향에 맞는 사장을 앉히려는 일들이 반복돼왔다.
남영진 이사장 등의 해임으로 여권 우위 구도가 된 KBS 이사회가 김의철 사장을 해임하고, 이동관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사장으로 앉힌 것이 단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고대영 KBS 사장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을 해임한 것도 그렇다.
이번에 통과된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를 21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권도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등이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권을 가진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 1~2명을 해임해 손쉽게 여권 우위 구도를 장악할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들도 이 법이 시행되면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는 최소한의 방패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방송법 처리 이동관 탄핵 촉구"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방송법 처리 이동관 탄핵 언론노조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이정민 |
하지만 이 법이 공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포기하고 '이동관 사수'에 나선 것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라는 든든한 밑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해 다시 국회로 돌아온 법안은 본회의 가결 요건이 높아진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하는데, 국민의힘 의석으로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 언론 보도를 봐도 대통령실은 방송3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방송3법도 양곡법이나 간호법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을 살펴봐도 윤석열 대통령만큼 거부권 행사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인물도 드물다.
그렇다고 해도 방송3법의 국회 본회의 가결이 지닌 의미마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언론현업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방송3법이 입법기관인 국회 문턱을 넘었다는 것 자체로도 커다란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지난해 한국기자협회와 언론노조 등이 방송3법 통과를 위해 벌인 서명 운동에는 5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방송3법이 민의'임은 증명된 것이다. 9일 국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170여 명의 국회의원이 그 민의를 대변한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한다면, 그 민의를 무시한 것이고 정권의 방송장악 의도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로 나타난다. 거꾸로 방송3법에 대한 여론적 동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방송3법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지는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쯤이야, 잠시 돌아가는 길이라고 여기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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