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서울의 봄' 악마가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

이이슬 2023. 11. 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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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이달 22일 개봉
12.12 군사반란 스크린에
권력의 노예를 막아선 신념의 승자
황정민·정우성·이성민 울분의 연기
'깔끔하다' 장르적 재미와 주제 모두 충실

누가, 무엇을 위해, 왜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나. 뜨겁다. 목구멍에 무언가 치민다. 어떤 자(者)의 이름 석 자에 욕지기가 올라온다. 거창한 감상을 나열하고 싶지는 않지만, 1979년 12월12일, 9시간 동안 벌어진 사건을 극장에서 목격하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만다. 사건의 내막과 만행을 저지른 그들이 호의호식하고 승리에 취해있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덮친다. 동시에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사적인 부채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수많은 청춘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꾼 사건, 반드시 목격해야 할,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서울의 봄' 예고화면[사진출처=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비트'(1997) '감기'(2013) '아수라'(2016)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12.12 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한 '서울이 봄'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전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공개됐다. '12.12 군사반란'이란 1979년 12월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주동하고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중심이 되어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영화는 관객을 당시 반란의 목격자로 만든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늘에 총성이 울리기 시작하면 관객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 한복판으로 데려가 사건을 목격하게 한다.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따라가게 한다.

10월26일 대통령 시해 사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서울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하지만 너무도 짧았다. 이후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은 계엄법에 따라 수사 책임자인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된다. 그는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틀어쥔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은 군내 사조직을 총동원해 최전선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이며 군사반란을 일으킨다.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은 전두광이 이끄는 반란군을 막기 위해 팽팽하게 맞선다. 전두광과 하나회의 무시무시한 악행에 모두가 굴복하고 회유되지만 이태신은 꺾이지 않는다. 나라와 국민을 지킨다는 군의 사명에 충실한 그는 반란군에 맞서 끝까지 대항한다. 전두광의 개인적인 탐욕과 이태신의 군인으로서 신념이 충돌한다.

'서울의 봄' 스틸[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전두광의 친구이자 반란군의 2인자인 노태건(박해준 분)은 전두광의 탐욕에 숟가락을 얹는다. 전방부대인 9사단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등 군사반란에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수도권 방위 책임자 중 한 명인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분)은 정상호(이성민 분) 참모총장이 체포된 후 육군본부 벙커에 모인 군 수뇌부의 수세적 결정에 맞서 끝까지 외친다. "군사반란으로 나라가 뒤집히면 군의 수치고 치욕입니다." 그러나 이는 허공에 메아리처럼 사라지고 만다.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이 79년12월 당시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직접 들었던 총성이 발단이 됐다. 이후 시나리오를 읽고 연출을 고사했으나, 부채감이 발목을 잡았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고 혈관 속 피가 역류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당시 군사반란에 대해 한동안 국민들은 알지 못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어떤 일이 서울에서 벌어졌는지 알게 됐다.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었지만, 누가 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감독은 여기에서 의문을 가졌다고 떠올렸다.

영화는 장르적으로 탁월하다. 연출, 촬영, 편집 등 모든 요소에서 촘촘하다. 어떤 것을 강요하지 않고 사건을 담담히 따라간다. 마지막까지 상업영화의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관객을 이끈다. 정확하면서 담백하고, 힘 있고도 군더더기 없다. 주제 전달도 확실하게 방점을 찍는다. 재밌고도 선명한 '서울의 봄'이다.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등 출연 배우 대부분은 두려움 없이 간절하게 연기했다. 배우들의 입체적인 연기가 오선지의 음표처럼 흥겹게 춤춘다. 탁월한 협주를 완성한 건 연출의 힘이다. 감독은 마치 울분을 토해내는 듯한 격정적 감정의 소용돌이를 면밀히 포착한다.

'서울의 봄' 스틸[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한 사건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과도 연결된다. '남산의 부장들'을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연이어 완성했다. 두 편은 마치 하나의 영화처럼 연결된다. 이를 연결해 곱씹는 재미도 있다.

12월12일이 또 다가온다. 44년 전 그날, 누군가는 탐욕의 패자였고, 또 누군가는 신념의 승자였다. '서울의 봄'을 막은 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많은 피와 희생을 치러야 했나. 영화는 씁쓸한 진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런 점에서 의미는 충분하다. 러닝타임 141분. 12세 관람가. 11월22일 개봉.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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