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전투... 애 둘 딸린 싱글맘의 총성 없는 전쟁
[김성호 기자]
이십 년 쯤 된 일이다. 이모부가 돌아가셔서 충청남도 논산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 갔고, 이른 아침 출발해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달이 뜬 시간에 일어나 새벽 첫 차를 타고 고속터미널까지 갔고, 종일 식장에 있다가는 올라올 때 막차를 타고서 새벽 즈음에야 서울에 떨어졌다.
엄마는 하루 종일 바빴고, 길 위에서도 그러했다. 한창 날래던 시기였음에도 나는 엄마의 걸음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엄마는 잰걸음으로 한참을 앞서 갔고, 답답한 듯 자주 나를 돌아보았다. 그때 나는 엄마가 왜 그리도 꽉 찬 일정을 짠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 풀타임 포스터 |
ⓒ 부천노동영화제 |
프랑스 싱글맘의 전투적 하루
전투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 아래 눈 뜰 때부터 쓰러져 누울 때까지 격렬한 하루를 보내는 여자의 이야기가 화면 가득 바삐 흘렀다. 해조차 뜨지 않은 새벽 일어나 아이들에게 아침을 준비해 먹이고는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그녀는 어느 집 문을 두드려 아이들을 맡기고 기차를 타기 위해 전력으로 내달린다. 겨우 잡은 통근기차는 교외도시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다. 여자가 일하는 곳은 파리 시내의 5성급 호텔, 청소직원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한 그녀는 직원들을 통제하며 평가하는 일까지 맡고 있는 중이다.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다시 집까지 가는 게 한참이다.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표를 사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뒤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야 한다. 집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려면 또 한참이 걸린다. 진이 빠져 쓰러질 듯 자고 나면 똑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호텔청소라는 만만찮은 일을 하며 긴 출퇴근 시간을 감당하고, 다시 아이들을 챙기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다. 몸 하나로 부족한 고된 노동을, 그러나 그녀는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남편과는 이혼한 지 오래, 양육비조차 제때 부치지 않는 그를 닦달하며 하루를 꾸려가는 삶이란 만만치 않다.
▲ 풀타임 스틸컷 |
ⓒ 부천노동영화제 |
파업으로부터 밀어닥친 일상의 붕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파리에 사는 직원들과 달리 일터에 지각을 하게 되니 신망은 갈수록 떨어져 간다. 뿐인가. 아이를 봐주던 이웃은 갈수록 늦어지는 복귀시간에 아이를 더는 봐주지 못하겠다고 통보한다. 아이를 맡아줄 곳을 구하지 못하면 일도 할 수 없을 게 자명한 노릇, 이리저리 알아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 와중에 전 남편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니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는 통장은 이내 바닥을 드러낸다.
영화는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을 실감나게 내보인다. 마치 하루 종일 뒤따르는 다큐멘터리처럼 눈 뜨고 다시 감을 때까지 닥쳐드는 과업과 그녀의 대처를 담아내는 것이다. 한 가지를 막으면 다음 것이 닥쳐오는 와중에 노동자로도 엄마로도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린다.
▲ 풀타임 스틸컷 |
ⓒ 부천노동영화제 |
여유 없는 삶은 인간을 몰락하게 한다
여유가 없는 삶은 좋은 친구의 자격만 앗아간 게 아니다. 매일 아이를 맡아주는 부인은 나이가 들어 힘든 일을 해내기가 어렵지만 좋게 말해도 여자는 귀를 기울이기 어렵다. 아들의 행동이 지나쳐 과잉행동장애가 아닌지 의사에게 데려가 보라는 말도, 병원이 문을 연 시간엔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진지하게 돌아볼 수 없다. 약속한 시간에 아이를 데려가라는 요구 또한 파업까지 겹치니 도저히 들어줄 여유가 없다. 마침내 여자는 좋은 고용인이며 이웃의 조건마저 채우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좋은 직원인 것도 아니다. 5성 호텔 청소업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껴왔다곤 하지만, 파업 이후 지각하는 날이 늘고 맡은 업무를 제때 끝내지 못하는 때가 많아져 간다. 마침내 그녀를 신뢰하던 팀장의 마음까지 잃은 그녀를 동료들도 전과 같은 시선으로는 보아주지 않는다.
▲ 풀타임 스틸컷 |
ⓒ 부천노동영화제 |
전장에 선 졸병처럼 일상을 버티는 인간
결국 머리를 쓴 것이 출퇴근 카드를 대신 찍어달라 부탁하는 일이다. 제가 책임지는 새로 들어온 인턴에게 제 카드를 내어주며 대신 찍어달라 하는 주인공, 그녀가 주저하자 그녀의 평가를 제가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러나 일은 마음처럼 풀려나가지 않고, 퇴근카드를 대신 찍던 인턴이 적발돼 해고되기에 이른다. 그녀의 해고를 통보하며 그녀가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이란 사실을 전하는 팀장, 여자는 제가 해고하라고 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자기합리화를 하기에 바쁘다.
영화는 삶에 내몰린 여자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그린다. 전장에서 저 아닌 누구를 돌볼 여유가 없는 말단 병사처럼 삶 전체가 전투적이 되어버린 현실을 비춘다. 일하는 싱글맘의 삶이 이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기에, 또 그녀가 했던 호텔 청소업과 엄마로서의 역할이 내 엄마가 겪어온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할 밖에 없다.
▲ 풀타임 스틸컷 |
ⓒ 부천노동영화제 |
꿈조차 사치가 되고 마는 고단함에 대하여
제가 사는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도시에 비해 일자리가 없다고는 하지만 마트 캐셔나 식당 종업원 등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보다는 5성호텔 직원이 낫지 않느냐고, 제 눈높이를 도저히 낮추려 들지 않는다. 파리에서의 일과 근교에서의 삶 중 무엇도 놓치지 않으려는 꽉 찬 삶을 움켜쥐다가 파업이란 상황에 부닥쳐 저와 엮인 곳곳에 부담을 지우고 만다.
남편과의 이혼 등 그녀의 얽힌 사연이 어찌되는지 모두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싱글맘으로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현실에 내몰려 있다면 저의 욕망 가운데 무엇 하나쯤은 놓고서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과 쉽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영화가 종일의 격한 노동에 시달리며 제 삶을 무너져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극적으로 비추고자 지나친 설정을 둔 것이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제10회 부천노동영화제가 초청해 상영할 만한 가치를 지녔다. 무시되기 쉬운 엄마와 3D직업 종사자의 노동을 싱글맘의 삶이란 측면에서 주목하는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환경에 놓인 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꿈조차 주인공에겐 사치가 되는 모습이 주는 감흥이 없지 않다. 그로부터 우리 안의 소외된 삶과 노동을 돌아볼 수 있다면 영화의 역할은 다 해낸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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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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