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태, 특등 전쟁상인 美 때문"…불법무기상 北 적반하장
북한이 미국의 대이스라엘 군사 지원과 쿠바 경제제재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반미전선 확장에 골몰하는 분위기다. 정작 러시아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북한이 이런 적반하장식 주장에 나선 건 반미연대를 공고히 하는 한편 '잠재적 바이어' 국가들에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흑백을 전도하는 특등 전쟁상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동 사태가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른 것은 이스라엘을 돌격대로 내세워 지역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 때문"이라며 "미국은 이스라엘에 체계적으로 막대한 살인 장비들을 넘겨주고 그들을 침략과 살육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미국이 우방국에 최첨단 무기를 지원하거나 판매하는 것도 비난했다. "미국의 무기 제공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보호해야 한다'고 떠들면서 지원의 간판을 달고 다른 나라들에 숱한 무기를 팔아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 강화 등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전략자산 수시 전개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북한과 러시아 간 불법 무기거래에 대해서도 조만간 추가제재 등 행동에 나설 전망이다.
실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 오후 한·미 외교장관 회담 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러 협력은 쌍방향 관계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에 지원하는 기술을 면밀히 관찰할 것"이라며 "군사 기술 이전을 막기 위한 추가 대러 압박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또 다른 노동신문 기사에서는 지난 3일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미국의 쿠바 경제 봉쇄 해제 촉구 결의안을 두고 "미국이 저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 실시하는 경제봉쇄 책동은 해당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정복할 수 없는 데로부터 취하는 악랄한 적대행위"라고 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봉쇄 책동은 명백히 힘에 의한 패권 야망의 집중적 발로"라며 "종당에는 미국의 고립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다.
이는 쿠바를 비롯해 미국의 직·간접적인 제재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놓여있는 반미 국가들의 세력을 결집하는 것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도 부당하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처럼 반미연대를 내세우지만, 사실 북한이 비호한 쿠바를 비롯,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나 다른 중동의 친이란 무장세력들은 모두 북한과 무기 커넥션을 갖고 있다. 이미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전쟁으로 생긴 예상치 못한 '특수'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이들과의 무기 거래 구상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하마스 측도 북한을 거론하면서 연대가 공고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주재 중인 하마스의 고위 간부 알리 바라케는 지난 2일 레바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모든 적, 또는 미국이 적대감을 보인 나라들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북한이 개입할 날이 올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 동맹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이 이달 중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1일째 공개활동을 자제하며 '잠행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김정은의 마지막 공개활동은 지난달 19일 방북 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접견이었다. 북한 매체의 보도일(지난달 20일)을 기준으로 21일째 모습 드러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19일 라프로브 외무장관을 접견하기 직전에도 21일 간 공개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속 조치,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두고 장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포함한 군사적 도발을 구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의 잠행 뒤에는 군사적 도발이나 대외메시지 발신이 뒤따르곤 했다는 이유에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나 국방 분야에서 주민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마땅한 성과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며 "한해 사업을 결산하는 연말 총화 국면을 앞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정은의 답답한 상황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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