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패배자 박제…황정민·정우성 '서울의 봄', 명품 연기의 향연
김성수 감독이 1979년 12월 12일, 반란으로 긴박했던 하루를 높은 밀도 높은 연출로 완성했다.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는 김성수 감독, 배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이성균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서울의 봄'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로 김성수 감독의 신작이다.
김성수 감독은 "제가 19살 때 집이 한남동이라 육군참모 납치 총격전을 들었다. 무슨 일인지 숨겨져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30대 중반이 돼 알게 됐을 땐 우리나라 군부가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지 당혹스럽고 놀라웠다. 총소리가 들렸던 겨울밤으로부터 44년이 지났다. 그날의 사건이 한국 현대사에 운명적인 전환점이 됐고, 저의 오랜 화두기도 했다. 오래된 숙제를 이 영화로 갈음해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서울의 봄'을 연출한 이유를 밝혔다.
'서울의 봄'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김성수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돼 완성됐다. 김성수 감독은 "처음에 시나리오는 역사적 사건에 입각한 다큐멘터리 같아 고사했다. 시간이 지나서 2020년 여름, 군사 반란을 일으킨 신군부 세력에 끝까지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신군부의 내란죄가 입증된 것이다. 아무도 맞서지 않았다면 역사의 승리자로 기억됐을 수도 있다. 훌륭한 군인들의 시선으로 보면 이 영화는 반란군의 승리가 아닌, 그들이 얼마나 잘못 했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는 알지만 영화적으로 구성하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라며 영화 연출 과정을 전했다.
이어 "저도 처음에는 역사의 기록을 샅샅이 찾아봤다. 각색 작업하면서는 실제 기록은 미뤄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자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나라를 책임 지던 대단한 사내들이 각자 바라보고 판단한 결과들로 우리 역사가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에 1980년대 제 20대는 절망감과 패배감, 참을 수 없는 최루탄 연기에 갇혀 흘러갔다"라며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또 저의 해석을 배우들이 훌륭하게 표현해 줬다"라고 설명했다.
진실과 허구의 비율에 대해선 "영화는 창작을 통해 새로운 영역으로 점화된다고 생각한다. 창작의 영역으로 넘어가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된다. 역사에서 출발했지만 제 영화는 많은 허구가 많이 가미됐다"라고 말했다.
황정민은 통령 시해 사건 수사 책임자인 합동수사본부장이자 보안 사령관 전두광 역을 맡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비주얼로 화제가 된 황정민은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분석해 전두광이란 인물을 만들어냈다. 비주얼 변신은 제게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좋은 작품에 제가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훌륭한 영화라면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박해준, 박훈, 안내상, 최병모 등 많은 배우들과 반란의 밤을 만든 것에 대해 "동료 선배, 후배 분들이 연극을 하셨던 분들이라 신 전체를 하나의 연극하듯이 연기했다. 연습을 많이 했다. 각자 자리에서 역할을 해주지 않았나 싶다. 그런 식으로 신을 한 땀 한 땀 만들어 나갔다"라고 밝혔다.
수도경비 사령관 이태신 역의 정우성은 "이태신은 앙상블을 기대할 수 없는 외톨이였다. 전두광 패거리들의 신을 보며 연기적 하모니가 부러웠다. 저는 전화기 너머 사정하는 목소리를 연기하느라 답답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 기억이 떠올라 기가 빨렸다"라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또한 실존 인물을 연기해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실제 사건이지만 제 나름의 해석으로 부담감을 덜어냈다.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은 실제 사건에서 가장 거리가 먼 가공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 수도경비 사령관의 이야기를 오히려 배척하고,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할까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어느 때보다 감독님에게 많이 기댔다"라고 답했다.
정우성은 '비트', '태양은 없다', '아수라' 등 김성수 감독과 다섯 번째 번째 호흡을 맞췄다. 그는 "감독님은 매 작품마다 집요함을 경신한다.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신다. '아수라' 때도 집요하셨다. 모든 배우들이 '감독을 줄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할 정도로 스트레스로 밀어붙이셨다. 인간 군상의 스트레스를 끄집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봄'에서는 다른 치열함이 있었다. 이태신이 가진 고민의 끝이 어디일까를 찾아내기 위해 디테일한 지침을 주셨다. 그런 치열함이 영화의 밀도와 캐릭터를 만드는 것 같다"라고 김성수 감독과 재회한 소감을 말했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를 연기한 이성민은 '서울의 봄'으로 김성수 감독과 첫 작업이다. 이성민은 "감독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촬영했다. 감독님께서 책을 주셨는데 읽지는 않았다. 어차피 제가 연기해야 할 캐릭터는 시나리오에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포용해 주셔서 감사했다"라며 "이미 역사적으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연기한다는 것이 관객들에게 어떤 긴장감을 줄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성민은 황정민과의 연기 호흡 관련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애썼다. (황)정민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우성 역시 "전두광은 감정이 폭주하고 이태신은 억제하는 인물이다. 전두광이 불이라면 이태신은 물이었다. 전두광의 뜨거운 열기를 참고 한 걸음 뒤로 물러 연기했다"라고 덧붙였다.
김성수 감독은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되면 인간이 각자 살아온 생애와 가치관, 세계관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1979년 12월 12일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하고 결정하는지 극화시켜 관객들을 몰아넣고 경험시키고 싶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궁금증이 생기면 진짜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을까 한다"라며 "영화는 이미 감독의 손을 떠났다. 최고의 스태프, 배우들이 완성도를 높였다. 모든 배우들이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야말로 '연기의 향연'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많은 관심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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