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선거 이기려고 나라 퇴행시킬 건가
[이충재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대전시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열린 글로벌 우수 신진 연구자들과 대화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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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여당이 내놓은 정책은 하나같이 화려하게 포장된 당의정(糖衣錠)을 닮았다. '김포 서울 편입'은 집값이 오를 거라는 시민들의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공매도 금지'는 개미투자자의 환상을 키우고 있다. '일회용품 규제 백지화'는 후속세대에 대한 고민보다는 당장의 편리함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국가의 목표와 청사진은 팽개치고 오로지 김포시민 50만표, 개인투자자 1400만표, 소상공인 수백만표라는 얄팍한 표 계산만 보인다.
눈 떠보니 후진국?
그 사이 국민은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다. 공매도 정책은 해외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은 신뢰할 수 없는 곳이란 선입견을 각인시켰다. 졸지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한 공매도 금지 국가인 튀르키예 수준으로 위상이 실추됐다. 한국은 지난 6월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첫 국제협약을 성안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어렵게 유치했다. 그런데 이번 일회용품 백지화 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됐다. 윤 대통령은 해외순방 길에 자주 "한국이 글로벌 리더국가가 됐다"고 자랑했는데, 그 말이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최근 행보도 급조된 선거용 정책들과 맥락이 닿아있다. 윤 대통령은 열흘 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 번 만났다. 무슨 긴밀한 현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누나와 남동생 사이"라고까지 말한 걸 보면 보수 텃밭 다지기가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검사 시절 구속했던 인사를 자주 만나는 게 어떻게 비쳐질지는 생각해봤어야 한다. 스스로 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연일 이어지는 윤 대통령의 민생 현장 방문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의심케 만든다. 지난 1일 시민들과의 만남에 참석했던 택시운전사가 대선 당시 국민의힘 부산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모처럼의 시민과의 소통이 잘 짜여진 각본이라는 의심에 묻혔다. 참석자 가운데는 윤 대통령이 시민들 애환을 듣기 보다는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 '59분 대통령'이란 말을 실감했다고 하는 이도 있다.
윤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레임덕에 직면할 거라는 위기의식이 크다고 한다. 그나마 엄중한 현실을 깨달은 것은 다행이지만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총선 승리일 수는 없다. 선거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얼마나 국정운영을 잘했느냐를 평가받는 것이지, 선심성 정책을 남발해 승리를 얻는 게 아니다. 만일 그렇게 여긴다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는 포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포퓰리즘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한 얀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대 교수는 저서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에서 "국민을 위한다는 구실로 정당화된 정책이 실상 무책임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장기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유권자 지지 획득이라는 단기적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퓰리즘 통치의 특징으로 국가기구 장악, 부정부패와 후견주의, 시민사회 억압 등을 꼽았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윤석열 정부는 포퓰리즘 행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지금 할 일은 총선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저성장 등 정체기에 빠진 한국을 어떻게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선거 이기겠다고 나라를 퇴행시키면 위기를 헤쳐나가는 길은 더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국가 지도자라면 국민보다 더 멀리, 더 높게 내다봐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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