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좌석 없앤다? 장거리 출퇴근족은 웁니다

장한이 2023. 11. 10.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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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직장생활] JTBC <나의 해방일지> , 집이 멀어 서글픈 직장인의 현실

결코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현실 세계의 직장생활에 질리고 지쳤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주말, OTT가 부지불식간에 눈과 마음에 들어와 앉아 버렸다. 직장생활 전문가로서, OTT 속 직장생활 노하우를 현실에 담아본다. <편집자말>

[장한이 기자]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주인공 염미정이 지하철을 이용해 퇴근하고 있다
ⓒ JTBC
 
"내가 죽으면 서울로 출퇴근하다 죽은 줄 알아."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경기 남부 끝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염기정(이엘)이 퇴근 후 침대에 쓰러지며 쏟은 탄식이다.

염기정은 의정부에 사는 남자와의 소개팅에서 경기 북부와 남부, 극과 극에 사는 사람이 만났다며 "출퇴근이 죽음이죠"라고 말한다.

"동아리 활동을 아무것도 안 해? 왜 안 해?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집이 멀어서요."

주인공 염미정(김지원)은 집이 멀어 회사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왜, 벌써 가게?"
"막차 시간이 다 돼서..."

염미정은 회식할 때도 집이 멀어 먼저 일어난다. 삼남매 모두가 약속 있는 날에는 함께 택시를 타 교통비를 아낀다. 누군가에게는 깃털 같은 출퇴근이 이들에게는 작전과도 같다.

나 역시 38년 차 경기도민으로 염미정 남매와 비슷한 생활을 18년째 이어오고 있다. 최근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2년 전 이직해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 넘는 회사에 다닌다(물론 나의 선택이니 감내하고 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니 벗어날 방법이 점점 희미해진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아빠(나) 혼자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거나 가까운 곳으로 이직하는 방법뿐이다.

지하철에서만 편도 1시간 20분을 머물며 강남 끝자락으로 출근한다. 3호선 끝에서 끝으로 오가기를 매일 반복한다. 출근 시간에는 자리가 거의 나지 않아 1시간가량 서 있을 때가 잦다. 강남 지역에 다다라 주요 환승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빠지면 자리가 난다. 그나마 퇴근할 때는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드라마에서처럼 그리고 현실의 나처럼 장거리 통근자는 많다. 한 취업플랫폼이 전국 직장인들을 상대로 출퇴근 시간을 조사한 결과 서울에 사는 직장인은 약 1시간 20분, 경기도 직장인은 평균 1시간 40분 이상을 출퇴근에 쓰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출퇴근 길에 느끼는 피로도를 점수로 환산(100점 만점)하니 경기권 거주 직장인들의 피로도가 74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양평(전철)에서, 대전(KTX와 버스), 천안(KTX)에서 출퇴근하는 동료가 있었다. 양평에서 출퇴근하던 후배는 "출근할 때 이미 방전되는 기분입니다"라고 했다.

진짜 '지옥철'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전동차 객실 의자 개량 후의 모습
ⓒ 서울교통공사
 
그나마 장거리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은 편리한 대중교통수단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 기사를 보고 힘이 쭈욱 빠졌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내 좌석 일부를 없앤다는 내용이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일 지하철 혼잡도 완화를 위해 2024년 1월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 4·7호선 열차 2칸을 대상으로 객실 의자를 모두 없애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하철 좌석 없애기 프로젝트에 앞서 지난 2017년에는 지하철 선반 없애기 프로젝트도 진행된 바 있다. 당시 서울교통공사는 선반을 없애는 가장 큰 이유는 테러로부터의 안전과 미관 때문이라고 했다.

2호선은 시범운행을 거쳐 순차적으로 선반 없는 열차를 도입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8년까지 서울지하철 1∼8호선 전동차의 70%가 순차적으로 선반이 없는 신형 전동차로 교체된다고 한다. 9호선은 애초에 개통 당시 노약자석에만 선반을 설치했다.

"너 만나는 동안 내가 맨날 너희 동네까지 갔어. 강북에서 우리 집이 얼마나 먼지 아냐? 너랑 헤어지고 난 맨날 우리 집까지 한 시간 반 걸려서 갔어."
"그건 네 사정이고. 누가 그렇게 멀리 살래?"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 염미정 오빠 염창희(이민기)와 여자 친구가 다투는 내용 일부다. 아직은 해당 사항이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 잠시라도 지하철에서 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지하철의 좌석을 없앤다는 정책은 마치, 장거리 출퇴근으로 지친 나에게 '그건 네 사정이고'라고 하는 듯해 씁쓸하다.

시민이 감당할 몫은 생각보다 큽니다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한 장면 주인공 염기정이 지하철로 퇴근하고 있다
ⓒ JTBC
  
"진정한 지옥철을 만드는 중이네요."
"차량을 더 증설하거나 배차 간격을 줄이는 방향이 맞지 않나요?"
"승객 더 태우려다 압사 위험 높인다에 한 표 던집니다. 절대 개선 안 됩니다. "
"출퇴근길에 지하철 안 타본 사람의 발상이네요. 주구장창 서서 먼 거리 버텨봐요. 저런 소리 안 나옵니다."
"서민을 짐짝 취급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네요."

직장인들이 '지하철 4·7호선, 일부 칸 좌석 없앤다' 관련기사에 남긴 댓글 일부다. 

<나의 해방일지>의 삼남매도 나도 장거리 통근을 견딜 수 있는 것은 편리한 교통수단 덕이다. 그 안에서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좌석이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유튜브나 영화, 드라마를 감상한다. 달콤한 꿀잠도 취하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18년의 직장생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출퇴근 시간에는 직장인뿐만 아니라 노약자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 좌석 없는 지하철을 타는 노인 그리고 임산부가 감당해야 할 몫은 더욱 크지 않겠는가. 

개인의 삶과 더불어 가족을 위해 새벽같이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조금이라도 편리한 출퇴근 환경이 주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더 많은 이에게 도움되는 방향의 정책이 시행되길 바란다. 출퇴근 지하철 좌석 이용 수요와 시민 의견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해 정책에 반영하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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