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 적어 셀프 졸업앨범…선생님은 1년 내내 '폰카' 찍었다
“매년 졸업앨범을 만들면서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어요. 입찰을 해야 하는데 참여하려는 업체가 아예 없어요.”
전교생이 173명인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는 “11월만 되면 고민이 많아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졸업을 앞두고 졸업앨범을 만들어야 하는데, 학생이 워낙 적다보니 단가가 맞지 않아 제작 업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출산 여파로 졸업생이 크게 줄어들며 학교 현장에선 졸업앨범 만들기가 ‘골칫거리’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유·초·중·고(특수·각종학교 등 포함) 졸업생 수는 159만3841명이었다. 10년 전인 2013년 240만3351명에 비해 80만명이 줄었다.
졸업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는 졸업앨범 단가가 일반 학교보다 두배 이상 비싸다. 한 졸업앨범 제작 업체 관계자는 “보통 졸업생이 200명 이상이면 4만원대, 100명 이상이면 7~8만원 정도”라며 “100명도 되지 않으면 단가가 10만원이 넘어가 입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입찰 단가를 높여도 업체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보통 졸업앨범이 20쪽이 넘어가는데, 소규모학교는 절반도 안 된다. 가격은 비싸고 질은 떨어지니 학부모들도 만족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졸업앨범 촬영 시기가 몰린 시즌에는 큰 학교에 가려고 하지 작은 학교는 잘 안 맡으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셀카’ 넣고 교사가 촬영·편집
전남 영암군의 구림초등학교는 전교생 43명 중 10명이 12월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구림초 졸업앨범에는 각 학생들의 프로필 사진 옆에 잘 나온 ‘셀카’가 두 장씩 붙어있다. 6학년 담임을 맡은 조영훈 교사는 “졸업앨범이라기보다는 '학급 문집' 같은 느낌이다.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일상 사진이나 친구들한테 쓰는 편지도 들어간다”고 말했다. 졸업앨범은 학생들과 학급 회의를 통해 함께 만들어 간다. 조 교사는 “요즘은 다들 핸드폰이 있어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학생들이 제작에 참여하니까 더 관심을 갖는다”며 “교사가 직접 편집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도시도 학생 줄어 '셀프 앨범' 제작
이런 졸업앨범은 더는 시골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도 소규모 학교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서울의 소규모 학교(초등 240명 이하, 중·고등 300명 이하) 수는 2022년 119곳으로 2014년 35곳에서 세배 이상 늘었다.
전교생이 117명인 서울 본동초에선 6학년 담임 교사가 직접 촬영 기사로 나섰다. 염민예 교사는 “예전엔 업체에서 학교 행사 사진을 찍어주지만, 지금은 1년 내내 체험학습부터 축제까지 내가 ‘폰카’로 찍고 있다”며 “직접 편집까지 하면서 10만원 이상이던 졸업앨범 단가를 8만원대까지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년째 소규모 졸업앨범을 만들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염 교사는 “요즘에는 소규모 학교를 전문으로 해주는 업체도 생겼다. 일반 종이가 아닌 두꺼운 하드보드지로 만들어 장수가 적어도 책 형태의 졸업앨범이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염 교사는 “6학년 담임이 한 명 뿐이라 편집, 제작을 혼자 해야 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디지털앨범 대안 될까…학부모는 '실물 앨범' 선호
앨범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학교가 많아지면서 무상 앨범을 만들어주는 업체도 있다. 앨범 제작 업체 스코피는 기부금을 모금해 13년째 소규모 학교에 졸업앨범을 만들어 주고 있다. 류원기 대표는 “처음엔 졸업생 100명 이하인 학교를 대상으로 하다가 작은 학교가 너무 많아지면서 최근엔 50명 이하 학교에 앨범을 제작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선 소규모 학교에 맞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소규모 학교 졸업앨범을 따로 지원하고 있지는 않다. 수익자가 부담하던 급식이 무상으로 변화한 것처럼 졸업앨범 등도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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