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인요한, 이제는 대통령에게 직언해야

고세욱 2023. 11. 1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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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5·18 30주년에 만난 인요한
광주 정신, 대북 지원에 애착

그의 보수정당행 의외이나
진영 대립 틀 깨는 계기 됐으면

대통령 국정운영 문제 직언이
국가 살리고 통합 이끄는 길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만난 것은 2010년 5월 18일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인터넷뉴스부 소속이었는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인요한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쓴 책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에서 5·18 시민군 통역 내용을 본 뒤 섭외해 센터로 찾아갔다.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 현장에 있던 ‘푸른 눈의 이방인’. 조회수 등 관심을 끌 만한 요소라고 봤다. 다소 속물적 시각으로 접근했는데 1시간여의 인터뷰는 이를 넘어서기에 충분할 정도로 유쾌하고 진지했다.

외모에 대한 선입견인지 몰라도 걸쭉한 사투리와 언어 전달 능력에 우선 놀랐다. “광주항쟁은 미국 독립운동이나 3·1운동보다 레벨이 높다” “5·18은 북한 군부가 저지른 천안함 사태와 같다. 이유 없이 무차별로 남한 군부에 당했다.” 쉬운 비유에 의미가 확 와닿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인 위원장에게 (우리말) 뉘앙스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영어로 질문했다는데 납득이 잘 안 간 건 이런 경험 때문이다. 한국인도 아니면서 (당시는 귀화 전) 우리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에 눈을 돌리는 신념에도 놀랐다. 5·18의 아픔, 대북 사업에 대한 진심이 묻어났다.

인상 깊던 인 소장이 이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최근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호남, 5·18, 대북 지원의 조합을 가진 이가 보수 정당과 손을 잡았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기미는 보였다. 책에서 그는 박정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인 중 가장 높이 평가했다. 인터뷰에서도 높은 도덕성을 보여주지 못한 진보 진영이 5·18 폄하의 빌미를 줬다고 질타했다. 대북 지원을 꾸준히 해야 한다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신랄히 비판했다. 진영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새누리당 때와 달리 지금은 정치 한복판에 서 있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 된 뒤 2주도 안 됐지만 곳곳에서 성과를 재촉한다. 3차례 내놓은 혁신안은 몇몇 당사자들이 반발해 삐걱댄다. 하지만 성과 여부를 떠나 그가 불러일으킬 나비효과에 주목하고 싶다.

‘5·18 폄하’ ‘대북 지원 무용론’이 횡행하는 보수 진영, ‘수구 꼴통’으로 불리는 국민의힘에 대한 인식 변화에 인 위원장만한 사람은 없다. 게다가 그는 비난보다는 칭찬, 상대를 띄우는 화법을 애용한다. 유승민 전 의원에겐 “코리안 젠틀맨”, 혁신 대상인 친윤 인사들을 “영남 스타”라 치켜세웠다. 만남을 외면하는 이준석 전 대표에게도 비난이 아닌 “마음이 아픈 분, 한이 맺힌 분”이라 하며 포용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야당을 향한 공격도 없었다. 적대적 대립의 정치권에서 생소한 모습이다. 신선한 통합 행보다. 적의와 대결 구도의 정치가 계속되다간 국가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좌우를 막론하고 제2, 제3의 인요한이 나타나야 할 때다.

다만 나비효과가 힘을 받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 현재 한국 정치의 왜곡, 경제·사회 각 분야에 파생되는 부작용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보궐선거 패배와 관련) 강서구민들과 대화는 해 봤냐. 모든 해답은 그들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서구민 21년차인 기자도 동감한다. 1년 전과 지금의 주민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이웃 몇명과 얘기해보면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에 대한 분통을 쉽게 접하게 된다. 인 위원장은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뜸들인다는 느낌이다. 그를 믿지만 변죽 울리기는 그만두고 정공법으로 직진해야 한다. 쓴 약을 대통령에게만 처방해선 안 되지만 대통령을 빼고 처방하는 건 오진이다.

인 위원장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일상의 안락함에 머물지 않는 삶, 그것이 나의 숙명이자 소망”이라고 말해왔다. 5·18 참여와 30여년에 걸친 대북 의료 지원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안락함을 거부하겠다는 결기를 갖고 대통령에게 직언할 때가 왔다. 그게 국가를 살리고 국민 통합을 가져오는 길이다.

인 위원장 가문은 대한민국에 정착한 뒤 구한말 선교·의료 봉사→항일운동(신사참배 거부)→6·25 참전→5·18 참여→대북 의료 지원의 발자취를 남겼다. 좌우 어디서도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다. 발자취의 끝에 한국 정치·사회의 통합과 혁신을 새긴다면 가문의 화룡점정이 될 듯하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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