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첫눈처럼 온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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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창문을 열면 코끝에 와 닿는 공기가 산득하다.
첫눈 소식이 들려올 것 같은 이맘때가 되면 어릴 적 오빠가 보내준 선물이 기억난다.
스케치북, 색종이, 세계지도, 장난감 등 다양한 선물이 들어 있었다.
상자를 받아 든 나는 먼 나라의 선물 가게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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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창문을 열면 코끝에 와 닿는 공기가 산득하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바뀌는 계절의 알싸한 공기. 공기 중에 알코올을 몇 방울 탄 듯이 화, 하게 퍼지는 초겨울 냄새. 첫눈 소식이 들려올 것 같은 이맘때가 되면 어릴 적 오빠가 보내준 선물이 기억난다.
해가 짧아지기 시작한 어느 저녁이었다. 오토바이 시동 끄는 소리가 대문 앞에서 들렸다. 하늘은 은막을 두른 듯 잔뜩 흐렸고, 날이 포근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집배원이 상자를 건네주고 갔다. 발신인에 오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언니들과 둘러앉아 상자를 열어보았다. 스케치북, 색종이, 세계지도, 장난감 등 다양한 선물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 시골 문방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2단 크레파스도 들어 있었다. 나는 먼저 크레파스 뚜껑을 열어 보았다. 48색의 크레파스가 면사포처럼 흰 종이를 덮고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꼭 갖고 싶었던 금색과 은색 크레파스도 있었다.
상자를 받아 든 나는 먼 나라의 선물 가게를 상상했다. 가게 안에는 눈보라 치는 스노볼, 지팡이 모양의 사탕, 발레리나의 등 뒤에 달린 태엽을 돌리면 멜로디가 흐르는 오르골도 있다. 호두까기 인형과 병정들이 북을 치고, 입체 카드를 펼치면 하얀 성이 조용히 솟는 세계. 나의 상상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으로, 우랄산맥과 태평양을 가로질러 스노맨의 손을 잡고 국경을 넘었다. 높이 하늘을 날았다.
오빠는 과묵했고 어쩐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열 살이나 나이 차가 나서 오빠라기보다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흐른 뒤 알았다. 오빠는 내가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제일 먼저 알아챈 사람이었다는 걸. 오빠는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어린 동생들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첫 월급을 쪼개 선물을 보냈다. 그 선물상자를 생각하면 알전구에 색색의 불이 켜지듯이 마음이 알록달록 빛난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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