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누가 K를 제대로 울리나
공연에 대한 열기… K(한국)
관련 대화도 끊이지 않아
음악과 문화를 다루는 입장에서 K는 무척이나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다. ‘우리의 것이 소중한 것이여’를 외치며 태극기 한 번 휘날려 버리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저 한국을 뜻하는 Korea의 이니셜일 뿐인 K는 뒤에 다양한 단어가 따라붙으며 입장이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K를 남발해도, K를 무시해도 문제가 됐다. 누군가는 K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K로 인해 틀에 갇히는 기분이라고 했다. K가 도움이 됐다는 측과 거추장스럽다는 측 사이에서 매번 눈치를 보며 머쓱하게 K를 꺼내드는 나날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함께.
지난달 호주 시드니에 다녀왔다. 글로벌 음악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초대로 시드니에서 처음 열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의 ‘스포티파이 하우스’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SXSW는 1987년부터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봄 열리는 일종의 복합 문화 콘퍼런스다. 음악만이 아닌 영화,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 다방면을 다루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악 페스티벌보다도 훨씬 규모가 크고, 한국에서도 십여 년 전부터 유명 K팝 그룹에서 장르 음악가까지 한국 음악을 꾸준히 소개해 대중에 익숙해진 행사이기도 하다. 올해는 이 행사의 시드니 버전이 처음 열리는 해였다. 아시아·태평양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최근 음악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움직임이었다.
행사에는 다양한 국가의 정말 다양한 이들이 초대됐다. 호주 현지는 물론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현재 동아시아에서 주목받는 지역의 미디어 관계자와 음악 관련 인플루언서가 대상이었다. 나흘간 이어진 행사 가운데 하루는 ‘K나이트’라는 이름으로 한국 음악가들에게 온전히 배정됐다. 보컬리스트 샘김, 밴드 새소년의 황소윤, R&B 아티스트 주니(JUNNY)가 공연을 선보였고, 마지막 날 진행된 힙합 행사에는 래퍼 허성현과 한국계 호주 힙합 그룹 1300이 무대에 섰다. 수십 개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이 열리는 행사 특성상 스포티파이 하우스뿐만이 아닌 시드니 이곳저곳에서 아도이, 김뜻돌, 힙노시스 테라피 등 다수의 한국 음악가를 만날 수 있었다. 백스테이지나 행사장 뒷골목에서 만난 한국 관계자들과 함께 ‘여기 홍대 아니냐’는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잠깐만 눈을 돌려도 어디에나 한국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심스레 접어놓은 태극기를 끝내 활짝 펼치게 만든 건 K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무대 위에서 멋진 공연을 펼친 음악가들이 전한 열기도 대단했지만, 그들이 온 한국을 궁금해하는 열기는 훨씬 다채롭고 구체적이었다. 음악을 주의 깊게 찾아 듣는 이들 가운데 K팝은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였고, 대부분은 이미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행사에 패널로 참여한 스포티파이 글로벌 에디토리얼 총괄 설리나 옹은 최근 자신이 K알앤비에 빠져 있다며 그날 개인적으로 찾아 들은 음악 가운데 한국 음악가 DPR IAN의 이름을 가장 먼저 꺼냈다. 행사를 찾은 아시안 VIP들도 마찬가지였다. K드라마, K힙합 등에 대한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면면도 상상을 뛰어넘었다. 태국 방콕에서 온 베이커는 자신이 K알앤비를 좋아한다며 한국에서도 낯설어할 사람이 많을 문수진, 지셀, SOLE의 이름을 줄줄 읊었다.
어쩐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죄책감 같기도, 부끄러움 같기도 한 묘한 감정이었다. 까다롭다는 핑계로 갖은 변명을 대며 K를 피해 온 건 결국 내가 아니었나. 내가 나고 자란 곳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K를, 한국을 피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먼 이국땅에서 굳혔다. 어떻게 해도 떼어 버리거나 바꿀 수 없다면 똑바로 바라보고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K를 울려야만 한다면 제대로 한 번 울려 보자. 모두가 바라듯 접두어 K가 굳이 필요없어지는 그날까지.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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