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R&D 예산 삭감을 둘러싼 논란
올해 정부 예산안의 주요쟁점 중 하나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다. IMF 외환위기 때에도 축소하지 않았던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을 16.6%나 삭감하였고, 이에 대해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의 반발은 특히 젊은 연구자와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젊은 과학기술자의 입장에서 보면 화가 날 만도 하다. 국가연구개발 중장기투자전략(2023~27년)에 따라 전년도보다 약간 증가한 상태로 진행되던 내년도 과학기술 예산안이 지난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갑자기 대폭 삭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계 카르텔도 거론되었고, 이유조차 분명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비가 무차별적으로 삭감되었다. 이러한 예산 삭감으로 젊은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자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이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거나 일조(一助)하는 듯한 과학계 출신 공직자나 과학기술 단체, 그리고 과학계 리더들에게 분노를 표시하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의대 쏠림현상으로 인재들의 과학기술계 영입에 문제가 있는데, 이번 사태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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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정부 R&D 예산 삭감
피해 예상 젊은 과학자들은 분노
비효율 분석 후 예산 조정했어야
도전적 연구 지원 시스템 필요해
」
정부 여당의 명분은 지난 수년간 연구개발예산이 급격히 증가하여 비효율이 발생하였으므로,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예산 팽창기에 연구개발예산도 급격히 증가했고, 그중 효율성에 문제가 있는 사업도 일부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비효율 사업을 가려내어 그 부분을 조정하는 것이 원칙일 텐데, 이번에는 일괄적으로 예산부터 삭감하였다. 그것도 국회예산정책처가 지적한 대로 법규에 정해진 절차를 지키지 않고 졸속으로 처리하였다. 결국 국제 과학계에서도 우려를 표시하는 등 여론이 심각하게 악화하자 정부와 여당은 “신진연구자 지원 등에 지장이 없도록 필요하면 R&D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한발 물러섰고, 대통령도 대덕에서 젊은 연구자와 모임을 갖고 “도전적 연구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이러한 사태 진행은 윤석열 정부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정책의 취지나 목표는 이해할 만한데, 집행 과정이 거칠고 이해 당사자들과의 소통이 부족하여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일 과학기술계에 카르텔이 존재한다면 직접 피해를 보는 일반 과학자들이 카르텔 척결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또한 예산의 효율화는 당연한 명제이고 합리성을 존중하는 과학자들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카르텔의 존재나 비효율성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예산을 삭감하니 반발하는 것이다. 사실 예산 효율화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문제 사업을 골라내어 법과 규정에 맞게 대통령의 뜻을 관철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참모와 공무원들은 그 시기를 놓쳤고, 때늦은 지시가 있었을 때 문제점을 직언하기보다 무리하게 집행에 나섰다. 결국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대통령이 직접 수습에 나서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에 이 실수는 뼈아프다.
사실 R&D 예산의 효율성 제고는 과학기술계의 오래된 숙제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R&D 투자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해 왔지만, 예산부처를 중심으로 그 효율성에 의구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에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슈가 제기되었고, 특히 정부출연연구소 관련 제도가 자주 바뀌었다. 불만의 요지는 왜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사업에서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눈에 띄는 세계 최초의 선도 기술이 나오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 정부 연구과제 선정과 평가 기준이 과거 ‘따라가기’ 시대의 관성에 묶여 선진국형으로 탈바꿈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 연구개발 과제의 성공률은 95%를 넘는다. 이러한 높은 성공률은 거꾸로 보면 될만한 과제만 수행한다는 말이다. 실패하면 엄청난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실패 위험도 크지만 성공하면 세계 최초의 위대한 성과가 될 수 있는 도전적 과제는 제안하기도 어렵다. 반면 이스라엘의 경우는 성공률이 30%를 넘으면 과제 설계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고 한다.
앞으로 연구개발을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중점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다. 즉 연구과제 선정과 평가시스템을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선도형으로 바꾸어 도전적 과제를 지원하는 것이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도 해외 순방 때마다 과학자를 만나는 등 과학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도전적 연구를 강조한다. 공무원들은 제대로 된 제도를 마련하여 우리나라가 진정한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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