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문화재전쟁] 개성 법당방 고분 벽화, 1000년 만에 찾은 ‘고려의 얼굴’
한국 고고학의 탄생지 ‘개성’
개성은 한국 문화재 연구의 산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고유섭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재 연구의 기틀을 세운 곳이다. 해방 직후에는 그의 제자인 진홍섭과 황수영이 연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 문화재 하면 통상 신라의 금관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해방 직후 순수 한국인의 발굴은 판문점 근처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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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한국인이 첫 발굴한 유적
일제 도굴터에 남은 고려의 숨결
해방 직후 문화계 주역 한데 모여
삼불 김원룡과 장욱진 화백 인연
1977년 연천에선 ‘주먹도끼’ 나와
세계 구석기 연구의 획기적 사건
」
일본인이 주도한 경주 호우총 발굴
흔히 해방 이후 최초의 발굴로 1946년 5월의 경주 호우총을 꼽는다. 하지만 호우총 발굴은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던 일본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주도했다. 일본의 무장해제가 주목적이었던 미군정은 일본인의 문화재 조사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지만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원은 미국 고고학자 랭던 워너까지 동원하며 아리미쓰의 발굴을 성사시켰다〈중앙일보 7월 14일자 26면〉. 해방 당시 고고학 발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대부분 북한에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보름 남짓 동안에 고고학을 배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나마 김재원은 밀려오는 손님과 행정 처리에 정신이 없었다. 아리미쓰는 여러 회고록과 사석에서 “나 혼자 발굴을 주도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최초의 발굴이었다.
정확히 1년 뒤인 1947년 5월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발굴이 시작됐다. 그 대상은 개성 동쪽 야산에 위치한 고려 고분인 파주 장단면의 법당방 유적이다. 지금은 북녘땅으로 판문점에서 개성 방향으로 약 3㎞ 정도에 있다.
이홍직·최순우 등의 선구적 노력
법당방 발굴은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던 이홍직(전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09~1970)과 개성에서 활동하던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1916~1984)가 지휘했다. 일제강점기 개성박물관장을 지낸 고유섭으로부터 문화재 연구를 배운 최순우가 직접 답사하며 찾아낸 유적이었다. 발굴팀은 당시 사회에 갓 진출한 20대 청년 둘을 데리고 갔다. 바로 한국 고고학의 기틀을 닦은 삼불(三佛) 김원룡(1922~1993)과 현대화의 거장 장욱진(1919~1990) 화백이었다. 해방 직후 한국의 역사·문화·예술계를 이끈 주역이 모인 셈이니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고려 수도 개성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있었고, 법당방 유적도 그중 하나였다. 고려 고분은 유독 도굴 피해가 심했다. 값비싼 고려청자를 노리는 도굴꾼이 많았고, 무덤 또한 입구만 파면 쉽게 도굴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법당방 유적도 이미 도굴꾼들이 다 털어간 빈 무덤이었다. 동전 몇 닙에 깨진 도자기 1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고려 12지신상과 고려 귀족 그림
대신 기대 이상 수확이 있었다. 무덤 벽에 그려진 12지신상과 고려시대 귀족을 그린 벽화였다. 세계문화유산인 고구려 벽화에 비하면 고려 벽화는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이라면 자기가 직접 땅을 파서 얻어낸 유물의 느낌을 평생 잊지 못한다. 발굴단 막내 격이자 발굴 두 달 전에 박물관에 들어온 삼불 선생이 그랬다. 그는 원래 동양사를 전공할 생각이었으나 이 발굴을 계기로 고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장욱진의 사연도 흥미롭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에 처음 들어간 직장이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성격상 조직사회와 어울리지 못한 장욱진은 이 발굴 직후 박물관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컴컴한 무덤방 속에서 발견한 고려의 소박한 벽화를 보면서 큰 영감을 얻었다.
장욱진 화백 화풍에 큰 영향
장욱진은 이후 단순하면서 웅숭깊은, 이른바 한국의 전통을 결합한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완성했다. 실제로 1950년을 전후해서 장욱진의 화풍은 민화를 연상시키는 정겨운 그림으로 바뀌는데, 왠지 모르게 법당방 고분의 고려 벽화가 연상된다. 김원룡과 장욱진은 이 발굴을 기점으로 평생 친구로 지내며 한국의 문화예술계를 선도했다.
법당방 발굴 3주일 동안 초짜 고고학자들은 낮에는 과거의 유물과 대화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해방 정국의 어지러움을 잠시 잊고 자유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러던 중에 묘한 경험도 했다. 밤마다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시끄럽게 하니 발굴장 숙소로 썼던 수백 년 된 기와집 속에서 살던 구렁이가 ‘층간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갔다고 한다. 삼불 선생은 그때 술을 먹다가 지켜본 구렁이의 피난기를 평생 즐겨 꺼내곤 했다. 아마 수십년간 문화재 연구를 독점하던 총독부 소속 고고학자가 물러가고 한국의 고고학이 자립하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박물관 최초의 벽화 전시
한국인 최초의 발굴은 곧바로 한국 최초의 벽화 전시회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벽화를 보여주기가 어려웠다. 태평양 전쟁과 해방의 혼란 속에서 국립박물관이 오랫동안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휴관과 개장을 반복하다가 1947년 6월 6일에 오랫동안 닫혀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다시 개관했다. 법당방 벽화 사진과 모사도가 특별전 형식으로 소개됐다. 해방의 감격에 더하여 우리가 직접 찾아낸 벽화를 본 언론들은 “민족 예술의 극치”라며 대서특필했다. 소박한 고려 벽화에 대한 과다한 평가였지만 우리 손으로 이룬 첫 발굴이라는 의미는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대중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은 곧바로 고구려 벽화 특별전을 개최하며 한국 사회에 고구려의 기상을 불어넣었다.
이렇듯 우리 문화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였던 법당방 발굴은 이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1949년 송악산 전투와 이듬해 한국전쟁으로 개성은 전장의 포성으로 뒤덮였다. 휴전 후에도 판문점이 설치되면서 남북 대치의 상징공간으로 남게 됐다.
동아시아에 대한 편견 깨뜨려
법당방 발굴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휴전선 지역은 다시 세계 고고학계의 관심을 끌게 됐다. 이번에는 구석기시대였다. 1977년 판문점 한탄강 주변인 연천 전곡리에서 미국 고고학자 보웬이 그동안 아시아에서는 없다고 생각하던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 자격으로 왔던 보웬이 동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깨버린 세계 고고학의 일대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놀라운 발견 소식을 접하자 한국 고고학계도 대규모 발굴단을 조직했다. 이미 고고학계의 원로가 된 삼불 선생이 지휘했다. 당시 발굴 실무를 맡았던 배기동(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교수는 전곡리 발굴을 계기로 전공을 삼국시대에서 구석기로 바꾸었다. 그는 이후 전곡선사박물관의 개관에 앞장섰고, 지금은 널리 알려진 전곡리 선사시대 축제도 조직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삼불 선생은 1993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뜨면서 자신의 유골을 전곡리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혼란한 시기에 고고학의 기틀을 세운 그가 남북이 날카롭게 대립하던 지역에서 고고학 인생의 처음과 끝을 바친 셈이다. 올해는 마침 그의 30주기를 기리는 해다.
개성 유적 발굴은 언제 다시…
일제강점기 고유섭과 그의 제자들이 헌신적으로 모은 개성의 고려시대 유물도 다행히 한국전쟁 직전에 서울로 옮겨졌다. 하지만 고려 수도 개성은 여전히 가볼 수가 없다. 예전 남북한 관계가 좋을 때에는 만월대 등 개성의 여러 유적을 조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관계가 악화해 다시 볼 날을 기약할 수 없다.
한국사와 한국 문화재에서 개성 일대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해방의 기개로 첫 발굴의 삽을 떴던 법당방 유적에서부터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은 연천 전곡리까지 휴전선 일대의 문화재적 가치는 숫자로 말할 수 없다. 판문점과 개성 일대가 갈등의 공간에서 우리 문화재의 중심축으로 다시 설 날을 기다려본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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