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중국에 "북·러 밀착 막으라" 촉구…중동서 韓역할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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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도 좋을 일 아냐"
9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전날 방한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도 북ㆍ러가 밀착하고 군사 협력과 무기 거래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좋아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동북아에서 러ㆍ북 군사 협력에 의해 긴장이 고조되면 중국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다.
그는 이어 "(북ㆍ러 간) 위험한 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중국의) 역할을 촉구하기 위해 한ㆍ미가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도 "북한이 위험한 행동에서 발을 떼도록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며 건설적 역할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ㆍ러 협력은 쌍방향 관계(two-way street)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에 지원하는 기술을 면밀히 관찰할 것"이라며 "군사 기술 이전을 막기 위한 추가 대러 압박 방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이날 "러시아가 북한에 기술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하며 러시아의 북한을 향한 반대급부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앞서 백악관은 지난달 "러시아 선박이 북한에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것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그간 중국은 북ㆍ러 밀착과 관련해 "양국 사이의 일"이라며 '거리 두기'를 해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북·러 간 불법거래를 경계한다기보다는 북한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각기 관리하며 한발 물러서 있었다.
이날 한ㆍ미가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건 중국이 북ㆍ러와 '한통속'으로 묶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길 바란다면 묵인에 가까운 방관만 할 게 아니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북ㆍ러의 전통적 우방국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북한, 러시아와 '불량 삼각 공조'로 묶이고 싶지는 않은 중국의 속내를 겨냥한 셈이다.
중국 내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도 양국 외교장관 회담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최근의 대거 북송 사태를 겨냥해 "한ㆍ미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탈북민의 강제북송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한·미가 이를 공식 외교 의제로 다루는 것 자체가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중동 정세에 韓 역할도 논의
이번 블링컨 장관의 방한에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한 논의도 비중 있게 이뤄졌다. 박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적 목적의 일시적 교전 중단'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외교 장관 또한 지난 8일 공동성명을 통해 인도적 교전 중단을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박 장관은 또 "이스라엘-하마스 충돌로 전 세계의 복합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한ㆍ미 동맹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강화돼야 한다는 데 블링컨 장관과 인식을 같이 했다"며 "구체적 협력 방안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ㆍ미 동맹의 범위가 한반도를 넘어 중동을 포함한 전 세계로 확장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블링컨 장관 또한 "중동 사태와 관련해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해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의 민간인에 대해 신속하게 인도적 지원을 한 데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이-하마스 전쟁으로 피해를 본 민간인을 돕기 위해 2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 정부는 추가적인 인도적 지원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도 만나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 등 국제적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ㆍ미 협력의 중요성을 논의했다"고 미 국무부가 밝혔다. 미국이 최근 일시적 교전 중단, 전후 가자 지구 처리 문제 등을 놓고 중동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인 이스라엘과 잇따라 마찰을 빚는 가운데 여타 동맹·우방과 협의에선 '한 목소리'를 내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확전 여부 및 민간인 피해 규모 등이 바이든 행정부의 글로벌 리더십과 직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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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중 정상회담 '프리뷰'도
이날 회담은 다음 주 미ㆍ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의 대(對) 중국 전략에 대한 사전 브리핑의 성격도 있다. 오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막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미ㆍ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고, 같은 기간 한ㆍ중 및 중ㆍ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을 포함해 한ㆍ미가 전략적으로 함께 공유하는 대중국 접근법에 대해 박 장관과 이야기했다"며 "(지난달 26~27일 워싱턴에서) 왕이(王毅)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한 내용에 대해서도 공유했다"고 전했다.
미ㆍ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블링컨 장관이 일본, 한국, 인도 등 인도·태평양의 주요국을 훑으며 대중 정책과 관련한 사실상 '프리뷰'를 해준 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늦은 오후 인도로 떠난다. 다자외교 행사를 계기로 한·미·일이 각기 중국과 양자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을 향해 일관된 메시지를 발신, 3국 안보협력 강화를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략적으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역내 파트너가 더 가까워졌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AP4·나토의 아시아태평양 파트너국)가 정기적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유럽과 인도·태평양이 안보 측면에서 분리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불법 침략전쟁으로 인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 간 연대는 더 강해졌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이날 회담에선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이뤄진 9·19 남북 군사합의와 관련한 협의도 이뤄졌다고 한다. 블링컨 장관은 "남북 군사 합의에 대해 한ㆍ미가 협의하고 있으며,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하면 이와 관련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9·19 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 중인 가운데 미국이 이런 결정을 지지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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