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7000원 메뉴판 보고 기겁" 직장인들 벌써 송년회 걱정
9일 점심시간 때 찾은 서울 강남구 코엑스 뒷골목에 있는 한 닭볶음탕 전문점. 올해로 8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일연(52)씨는 요즘 고민이 깊다. 하루에 400~500명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몰리는 곳인데 소줏값을 수년째 병당 5000원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근에 있는 다른 음식점은 지난해부터 5500~6000원을 받고 있다. 조만간 가격을 더 올릴 것이란 소문도 돈다. 박씨는 “그렇다고 값이 올리자니 단골을 잃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참이슬‧테라 등 하이트진로의 일부 제품 가격이 인상되면서 식당 주인들과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졌다. 서울 강남의 일부 식당은 소주 한 병당 7000원에 판매 중이다. 직장인들이 주로 즐기는 ‘소맥’(소주+맥주) 가격이 곧 1만5000원이 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소주 업계 1위 하이트진로가 이날 가격을 올리면서 참이슬 360mL 기준으로 병당 가격은 1166.6원에서 1247.7원으로 81.1원 올랐다. 주류 업계에 따르면 좌석을 50개 안팎으로 운영하는 식당은 보통 매일 두 박스(60병)를 준비한다. 이번 가격 인상에 따라 하루에 4866원을 추가로 부담하는 셈이다. 월 14만1000원쯤 된다.
다만 이날 취재진이 찾은 종로·강남·마포 등 서울 시내 음식점 20곳 중에선 이달에 소주 가격을 올린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최근 1년 새 가격을 인상했다고 한 곳은 3곳이었다. 이들의 소주 평균 가격은 5250원이었다. 하지만 박씨처럼 가격 인상을 고민 중인 곳은 10곳이 넘었다. 서민과 직장인들이 고물가·고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만큼 당장은 가격을 올리기가 부담스러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한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는 소주 도매가를 당분간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에 동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주류도매업중앙회에는 전국 도매사업자 1100여 곳이 가입해 있다. 그런데 이는 고육지책이다. 중앙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직장인들이 회식을 크게 줄인 데다 인건비, 식재료 가격까지 올랐다”며 “이대로 가면 폐업하는 식당이 급증하고, 도매사업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만 목소리가 커졌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직장인 김모(40)씨는 “식당에서 두세 명이 술을 마시면 음식값에 맞먹는 술값이 나와 (술을) 주문하기 겁난다”며 “이럴 바에 보드카 같은 독주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박모(51)씨는 “얼마 전 한 음식점에 갔더니 메뉴판에 소주가 병당 7000원이라고 적혀 있어서 슬그머니 (가게를) 나온 적이 있다. 이런 고물가엔 친구들끼리 오붓한 송년회도 부담스러울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음식점 업계도 시름이 깊다. 가격 인상 부담이 커짐에 따라 외부 주류 반입비(콜키지)를 받지 않는 식당도 생겼다. 소주 한 잔에 1000원, 고량주 한 잔에 3000원 등 ‘잔술집’도 늘고 있다. 주종을 바꿔 달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서울 용산구의 한 유명 고깃집은 2만9000원짜리 와인을 고객들에게 권하고 있다. 식당 주인은 “소맥보다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찾는 고객이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가격 인상은 앞서 소주 주원료인 주정 가격과 공병 가격이 각각 10%, 20% 이상 오른 데 따른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주요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8% 인상했다. 앞서 오비맥주도 지난달 카스‧한맥 등의 출고가를 평균 6.9% 올린 바 있다.
한편 주류 가격 인상으로 물가 부담이 가중되자 기획재정부는 소주와 위스키 가격을 낮추기 위한 주세 개편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주세에 ‘기준판매비율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제조장 반출 가격에 기준판매비율을 곱해 계산한 금액만큼 과세 표준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그만큼 소주·위스키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민상‧최은경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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