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감독 김기동은 무엇이 특별한가?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김기동 포항스틸러스 감독이 시즌을 마치면 하는 첫번째 행사는 안과를 찾는 것이다. 2021시즌이 끝난 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안압(안구 형태를 유지하는 눈의 압력)을 내리기 위한 수술을 받고 동계훈련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수치가 올라가는 때가 많고, 눈이 쉽게 충혈된다.
원인은 김기동 감독 본인이 잘 알고 있다. 영상 분석에 엄청난 시간을 쏟다 보니 생긴 일. 포항시 복구 송라면에 위치한 구단 클럽하우스에 있는 김기동 감독의 방을 찾으면 큰 모니터와 개인용 노트북, 태블릿, 자료가 널브러진 모습이 그의 일상이다. 그것이 이른바 '기동 매직'의 증거다.
포항 구단 창단 50주년을 맞은 2023시즌 김기동 감독은 반드시 트로피를 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난 4일 홈구장인 스틸야드에서 전북현대를 꺾고 FA컵 우승에 성공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K리그1에서는 2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우라와레즈를 원정과 홈에서 모두 꺾고 조별리그 4라운드 종료 시점에 일찌감치 J조 1위를 확정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명문이지만 포항은 200억원에 못 미치는 연간 예산으로 10년 넘게 버티고 있다. 우승 경쟁 팀들은 300억원을 넘어 400억원 넘게 예산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절반이 안 되는 금액으로 포항은 순위표 최상단에서 경쟁 중이다. 2022년 기준 선수단 총연봉은 77억원으로 K리그1에서 10위였다.
극강의 효율을 자랑하는 경쟁력의 본체가 김기동 감독이라는 것은 이제 모두가 인정한다. 포항이 긴 시간 투자해 온 인프라, 시스템의 힘과 숙련자들이 많은 프런트의 능력 등도 인정받아야 하지만 같은 조건에서 강등 위기까지 갔던 게 불과 몇 년 전의 상황이었다. 반면 김기동 감독은 2019년 4월 시즌 중 감독으로 승격한 뒤 리그에서 4위->3위->9위->3위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파이널B로 간 2021시즌은 AFC 챔피언스리그에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펼친 후유증이었다. 결국 그 2021시즌에 포항은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랐다.
김기동 감독은 무엇이 특별할까?
포항의 전현 구성원들은 김기동 감독의 전술에 대해 "특별하진 않은데, 특별한 느낌을 준다"라고 말한다. 아주 획기적인 전술을 준비하진 않지만 방향이 명확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것. 김기동 감독은 전술적 변화 폭이 크지 않다. 다수의 지도자들이 시즌 중 위기를 맞으면 전술 자체를 갈아엎는 K리그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3백을 쓰는 김기동 감독은 거의 보기 어렵다. 4-2-3-1 전형을 메인으로 쓰고, 크게 변화를 주는 것이 4-1-4-1이나 4-4-2 정도다.
대신 선수들이 이 전형을 통해 동료들의 움직임을 찾지 않아도 인지할 정도로 완성도를 높인다. 포항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될 때의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패스의 정확도와 성공률이 아주 높은 팀이다. 공을 받을 선수가 최적의 포지셔닝에 이미 가 있고, 그걸 패스를 하는 선수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김기동 감독은 "우리 팀의 빌드업 방식은 상대팀은 물론 팬들도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상대가 파악은 하지만, 그것을 뚫어내는 높은 성공률로 플레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김기동 감독이 매 경기 준비하는 특별함은 전략에 있다. 밤을 새서라도 영상 분석을 통해 상대의 허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서 거기를 끊어낼 2~3개의 맞춤 전술을 준비한다. 틀의 완성도는 동계훈련에 이미 높여 놓고, 시즌 중에는 분석에 따른 상대 맞춤 전략과 전술을 3~4일 간격의 준비 기간 동안 훈련하는 것이다.
FA컵 결승전에서 김기동 감독은 전반 15분 전북에게 먼저 실점한 뒤 좌우 측면 수비수인 신광훈과 박승욱의 위치를 맞바꿨다.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김기동 감독은 "전북이 어떤 측면 공격 조합으로 나올 지가 가장 관건이었다. 거기에 맞춰 우리도 수비 대응을 해야 했다. 전북의 옵션이 워낙 많아 몇 가지 상황을 예상했고, 경기 중 신광훈과 박승욱에게 서로 바뀔 수 있으니 준비하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변화 후 전반 중반까지 매섭던 전북의 측면 공격은 어느 정도 통제에 성공했고, 포항은 빠른 동점골로 경기 흐름을 뺏기지 않았다.
후반전 게임 플랜은 전체 경기 플랜과 컨셉보다 더 촘촘하게 가져간다. 보통 15분 단위로 3가지 플랜을 준비하는데 교체 투입되는 선수들에게 명확한 목적을 준다. 포항 선수들에 따르면 이 교체는 경기 하루 전 시나리오가 공유되고, 들어가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히 숙지하고 간다. 디렉션이 확실한 계획들의 연속이다. FA컵 결승전을 보면 홍윤상, 심상민의 동시 투입이 결정적인 승부수였다. 힘 있는 두 선수가 왼쪽 라인으로 들어가 막바지 30분의 공격을 주도하기로 돼 있었다. 그 노림수는 포항의 네번째 득점 장면에서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주포인 제카는 2-2로 가는 동점골을 만든 뒤 막판 15분을 남기고 나왔다. 계속되는 경기 일정으로 인한 체력 저하에 대비한 계획이었다. 사실 제카가 체력적으로 지친 모습을 보였지만, 워낙 멋진 동점골을 터트렸기에 더 믿고 갈 만한 유혹이 있었지만, 김기동 감독은 냉정했다. 이호재를 투입해 앞쪽에서 싸움을 붙이는 동시에 김종우를 전진시켰고 이 선택이 결승골을 만들었다.
제갈공명의 비단주머니 같은 후반 승부수들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꺼내 드는 타이밍이 더 절묘하다. 그 타이밍에 대한 감각이야말로 김기동 감독이 승부에 강하게 만드는 차별점이자 다른 지도자들이 쫓아가기 힘든 '초격차 경쟁력'이다. 이 부분은 선수 시절부터 쌓인 그만의 강점이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시야, 패스 능력으로 경기를 수도 없이 조립했던 선수 김기동의 경험과 판단이 지도자로서의 감각으로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감각에만 절대 의존하진 않는다. 김기동 감독은 누구보다 실시간 분석으로 나오는 수치를 중시한다. 포항은 벤치에 실시간으로 데이터, 경기 흐름, 상대 선수 위치를 확인하는 모니터가 2대 배치된다. 2019년 프로축구연맹이 전자 기기를 벤치에서 사용할 수 있게 승인한 뒤 가장 빠르게 실시간 분석 툴을 꾸린 지도자 중 한 명이 김기동 감독이다. 최근에는 이런 모습을 각 팀마다 쉽게 볼 수 있는데, 김기동 감독은 지난해부터는 아예 수석코치와 분석코치 2명을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확인하고 경기 상황마다 활용한다.
김기동 감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결정적인 장점은 자신감 넘치는 리더십과 치밀한 선수 매니지먼트에 있다. 준비한 전술, 전략을 가동하는 데 있어 김기동 감독은 선수들에게 절대적인 확신을 심어준다. 그는 경기 전, 도중에 넘치는 자신감으로 선수들에게 지시한다. 가령 스코어가 뒤진 상황에서 맞은 하프타임에도 그는 단호하게 승리를 자신한다. 준비한 후반 전략을 선수들이 의심하지 않고 100% 쏟아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선수들도 자신들이 시도하는 플레이에 확신을 갖고 집중력을 높이게 된다.
선수 매니지먼트도 인상적이다. 그를 거친 선수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 중 하나가 "감독님은 목적지를 정해 놓고, 선수가 그 곳으로 향하도록 계속 방향을 조정한다. 결국 대부분의 선수가 감독님이 원하는 답을 내게 돼 있다"라는 것. 전체 미팅 때 누구를 지목해서 말하지 않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 선수가 '내 얘기구나'라고 느끼게 만들 정도다.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그조차도 방향과 계획이 짜여 있다.
포항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점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과거와 달리 포항은 큰 돈을 들인 선수 영입이나, 시즌 중 빠른 외국인 선수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점을 이해한 김기동 감독은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선수의 영입을 요청하기보단 확실한 장점을 갖춘 선수의 영입을 요청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케이스가 올 시즌 임대 영입한 오베르단이다.
동계 훈련 당시만 해도 팀 내외부에서 "많이 뛰는 것 말고는 장점이 없는 선수"라는 평가와 함께 실패를 예상했다. 그러나 김기동 감독은 "애초부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를 원했다. 어차피 돈도 얼마 못 써서 브라질 3부 리그 쪽을 살펴야 했다. 그거 하나만 보고 뽑아달라고 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오베르단은 엄청난 활동량 외에도 영리한 운영 능력을 지닌 선수였고, 시즌을 치르면서 숨겨진 강점을 발휘하며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 올라섰다.
2022년 12월 포항은 김기동 감독과 3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당시 K리그 사령탑 최고 대우를 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선수 인건비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구단은 보유한 스쿼드를 120% 활용할 수 있는 사령탑을 지키는 데 무게를 실었다. 김기동 감독은 팀에게 10년 만에 트로피를 안기며 기대에 부응했고, 포항의 창단 50주년은 화려하게 빛날 수 있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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