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이 폭탄... 조중동이 윤석열 버리는 순간 오나
[이정환 기자]
▲ 윤석열 대통령, 제61주년 소방의 날 기념사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61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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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전 강서구청장)를 특별 사면한 건 대통령의 재량이라고 치자. 굳이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 김태우를 내리 꽂고 정권 심판 선거로 키운 게 윤석열(대통령)이다. 질 게 뻔한데도 김기현(국민의힘 대표)은 별다른 저항 없이 질질 끌려갔고 참패 이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혁신위도 별다른 감동이 없다. 이제 집권 1년 반인데 공공연하게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는 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야권 연합 200석 이야기가 나오고 탄핵과 개헌 이야기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이 뒤늦게 메가시티에 공매도 금지까지 포퓰리즘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반응이 시원치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슬퍼런 검찰 공화국도 이재명(민주당 대표) 구속 영장 기각 이후 명분을 잃었고 이제 와서 판을 흔들기에는 여론이 차갑게 식었다.
이게 왜 중요한가
언제나 그랬지만 보수 언론에 보수 정권의 대통령은 '쓰고 버리는 말'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보수 기득권 세력의 아성은 공고하다. 이해관계가 맞을 때는 싸고돌지만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말을 갈아탄다.
2011년 6월, 이명박 지지율이 데드 크로스를 넘겼을 때 조선일보는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정권 교체"라는 기묘한 논리로 이명박 정부를 레임덕으로 몰아붙였다. 이명박이 죽어야 박근혜가 뜨고 그래야 보수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2016년 10월 26일, 최순실 태블릿 사건이 터졌을 때도 조선일보는 발 빠르게 박근혜와 손절했다. 다음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부끄럽다"였다. 애초에 우병우(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를 내쳐야 한다고 조언한 것도 조선일보였고 미르재단 의혹을 가장 먼저 보도한 건 TV조선이었다. 정권 연장에 실패했지만 적어도 조선일보는 순장조가 되지는 않았다. 요즘 조중동의 지면을 보면 윤석열을 언제 손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그날이 빨리 올지도 모른다. 총선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한데 윤석열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조중동이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타격감이 없기도 쉽지 않다. 지면을 보면 보수 언론의 실망과 짜증, 누적된 분노가 느껴진다. 조중동의 윤석열 탈출은 동아-중앙-조선 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동아일보 대기자 김순덕의 분노
김순덕(동아일보 대기자)은 문재인 정부를 가장 혹독하게 공격했던 보수 논객 가운데 하나다. 그랬던 김순덕의 최근 논조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잼버리 사태 때는 "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거대 야당이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는 건 사실이지만 정부도 국민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했다. 해병대 병사 사망 사건 은폐 의혹을 두고는 "방향은 맞을지 몰라도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다면, 이 나라는 자유로운 게 아닌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궐 선거 패배 직후에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또 질 경우, 윤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에 들어설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건희(대통령 부인)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은 대통령을 분명 한 사람만 뽑았는데 VIP1과 VIP2가 있다는 소리가 용산에 떠돈다고 한다"고도 했다. 역시 보수 언론 지면에서 찾아보기 힘든 논조다.
"문재인 정권이 좌파 이념으로 뭉친 이권 카르텔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윤석열과 친구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다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이 내건 공정과 상식에 환호한 게 아니었던가."
▲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관련 입장 밝히는 한동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월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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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신뢰가 결정적으로 무너져 내린 건 이재명 구속 영장이 기각됐을 때다. 이태원 참사 때도 오송 지하차도 사고 때도 해병대 병사 사망 사건 때도 결연하게 '쉴드'를 치던 신문들이 멘탈 붕괴의 증상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판사 한 명의 결정에 '명운'을 걸었다"며 뒤늦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창균(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영장 기각 다음 날 "고도의 정치적 선택을, 정치가 개입되면 절대 안 되는 법률 판단에 맡긴 셈"이라고 뒤늦게 불만을 쏟아냈다. "재판을 통해 유무죄가 가려지는 것을 기다리면 되는데 구속 먼저 시키겠다고 안달을 낸 검찰의 집착도 이 꼴을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는 대목에서 한동훈(법무부 장관)에 대한 강한 실망이 읽힌다.
한동훈이 영장 발부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에 보수 언론의 실망과 충격, 배신감이 더 컸을 것이다. "증거가 차고도 넘친다"고 했고 이재명을 겨냥해 "잡범도 이렇게는 안 한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확률이 반반이었다 하더라도 애초에 불확실한 게임에 정권 차원의 승부수를 건 것부터 패착이었다. 정치는 검찰 수사와 다르다.
"검찰 수사와 법원 판단에 요동치는 요지경 정치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넘어 넌더리를 내는 지경이 됐다"는 동아일보 사설은 싸잡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윤석열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송평인(동아일보 논설위원)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 무렵이다. "올라가는 집값을 못 잡은 정부는 많이 봤지만 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은 정부는 처음 본다"고 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문재인 정부보다 나은 게 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양상훈(조선일보 주필)은 "윤 대통령은 안정적으로 40%를 넘은 적이 없다"면서 "윤 대통령 스타일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여러 얘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문제는 '이 일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그동안 눌러 왔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집권 1년 반의 풍경이다.
▲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치고 공매도 제도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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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 선거 패배 이후 김포시 서울 편입과 공매도 금지 등 국민의힘이 야심차게 내놓은 이슈 파이팅에 대한 평가도 냉담하다. "최고의 선거용 카드"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자칫 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는 냉정한 평가가 더 많다.
'메가 서울'이라는 정국 반전의 카드를 두고 중앙일보는 "눈앞의 표 계산에만 골몰해 즉흥적으로 추진한다면 그 후유증은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도 "국가 미래 전략과 총선 전략을 구분 못 할 유권자들은 없다"면서 " 찬성이건 반대건 총선용 정치 이벤트가 돼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2008년 뉴타운 같은 반전을 기대했겠지만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공매도 금지 다음날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포퓰리즘은 경제에 독약"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실제로 반짝 급등했던 주가는 속절없이 주저앉았다. 동아일보는 "정치 논리로 자본시장의 격을 스스로 깎아 먹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분위기지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찌감치 선을 긋는 분위기다.
돌아보면 조중동은 열심히 방어를 했다. 다수 야당의 횡포라고 비난했고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논점을 돌렸다. 무엇보다도 진보 진영의 내로남불과 이재명의 위선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런데 이재명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고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적어도 2~3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태원 참사 때는 뭉갰고 양평 고속도로 논란 때는 물타기 했다. 인사 참사가 계속돼도 문재인 정부는 더 심했다는 말로 넘어갔다. 이재명 리스크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이제 공격과 수비가 뒤바뀌었다.
▲ 10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 숫자 뺀 맹탕 국민연금 개혁안, 이러고 文 정부 비판할 수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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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말한 3대 개혁 가운데 하나인 국민연금 개혁은 손도 못 댔다. 조선일보는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맹탕' 연금 개혁안"이라며 "이러고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만도 못하다는 건 조선일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도가 높은 비판이다.
빈대와의 전쟁도 시작도 전에 패색이 짙다. 질병관리청이 안내한 살충제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중앙일보는 "살충제 원액에 담갔다 빼도 죽지 않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도 좋지 않다. 역대급 세수 펑크를 한국은행 '급전'으로 메꾸고 있고 건전 재정을 고집하면서 추경도 하지 않았다. 상저하고가 될 거라고 했지만 L자형 경기 침체를 거론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스스로 재정 정책의 손발을 묶으면서 시장에 돈이 마르고 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정부가 경제의 비전과 위기 타개 방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국전력 사장에 정치인을 임명했지만 전기요금도 손을 못대고 있다. 한전 부채가 200조 원을 넘어섰고 하루 이자만 70억 원에 이른다.
인사 실패도 계속되고 있다. 국회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 인사만 18명이고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은 공백 상태다.
김순덕 못지않게 독설로 유명했던 안혜리(중앙일보 논설위원)는 "반국가세력들이 활개 치고 있다"는 등의 윤석열 발언을 두고 "대통령 품격에 걸맞은 정제된 언어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카카오 택시에 대한 돌발 발언을 두고는 "대통령에게 잘못 입력된 정보가 지금 기업을 필요 이상으로 옥죄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분기별 역대 대통령 지지율 (갤럽 조사, 이명박부터는 주간 단위 조사를 분기별로 평균 집계. 문재인 정부부터는 5월부터 1년차로 집계.) (그래픽 : 이정환.) |
ⓒ 갤럽, 슬로우뉴스. |
전망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지만 박근혜는 태블릿 PC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지켰고 문재인은 40%가 넘는 지지율로 정권을 마무리했다. 윤석열은 애초에 0.74%p 차이로 당선된 데다 역대 가장 낮은 지지율로 출발했다. 문재인은 180석을 확보한 집권 여당이 있었지만 윤석열은 여소야대로 출발한 데다 내년 총선에서 뒤집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임기 5년의 단임제 시스템에서 지지율이 곧 권력이다.
조중동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건 윤석열의 좌충우돌 행보가 보수 기득권 진영의 헤게모니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내년 총선에서 완패하면 남은 3년은 식물 정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경희(조선일보 논설위원)는 아예 "윤석열의 시간은 6개월도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중동은 윤석열에게 볼모로 잡힌 상황이다. 윤석열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년 총선은 집권 여당이 참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남은 3년도 문제지만 다시 정권을 빼앗길 거라는 공포가 조중동의 지면을 지배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준석의 뉴스 비중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SBS 폴리스코어에 따르면 11월 7일 기준으로 한국의 주요 뉴스 가운데 이준석 관련 뉴스 비중이 21.2%로 윤석열(19.7%)이나 이재명(6.4%)보다 높게 나타났다. 윤석열이 정국 주도권을 잃는 것과 비례해서 차기 권력으로 힘이 분산되고 이합집산하면서 전선이 모호해질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은 15일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잠깐 한국을 들렀다가 26일까지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한다. 12월에는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다. 외교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지지율이 반등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 공식이 윤석열 정부 들어 안 먹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자칫 올해 안에 20%대 지지율을 찍게 될 수도 있다.
윤석열이 조중동의 메시지를 읽지 못한다면 조중동이 윤석열을 포기하는 시점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조중동마저 윤석열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그때가 진짜 레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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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슬로우뉴스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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