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특목고법’에 발목잡힌 현수막법, 이태원·오송참사 후속법

김다영 2023. 11. 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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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광역시에 과학영재학교를 설립하는 법안을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다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민생 법안 처리를 줄줄이 연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사위는 이날 오전 10시 전체회의를 열고 ▶반지하 건물에 원칙적으로 거실 설치를 금지해 안전을 강화하는 건축법 개정안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활성화 하기 위한 경제자유구역특별법 개정안과 같은 민생 법안 등 법안 18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정치 혐오’를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은 정치 현수막을 규제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과 ▶이태원 참사와 같이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도 안전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도 처리 안건에 올랐었다.

그러나 이날 법사위는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광주과학기술원에 특목고인 과학영재학교를 둘 수 있도록 하는 ‘광주과학기술원법 개정안’ 처리 문제를 놓고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법사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 간에 다툼을 벌인 까닭이다. 여야 간사는 전날 밤 11시까지 협상을 벌여 광주과기원법을 전체회의에 올리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회의 30분 전 이를 전달 받은 김도읍 위원장이 “위원들에게 최소 하루 이틀 정도는 법안을 검토할 시간을 줘야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안건 상정을 미뤘다. 이에 민주당 위원들이 “여야 간사가 합의한 것을 위원장이 왜 거부하느냐”며 의사 일정을 전면 거부했다.

소병철 의원 등 법사위 소속 민주당 위원들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호남 홀대 인식을 드러낸 국민의힘 법사위원장의 월권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한전 공대법(한국에너지공과대학법)을 심사할 때에도 당시 김도읍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를 비롯한 국민의힘이 통과를 반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점식 의원 등 국민의힘 법사위원들도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법안에 문제가 있으면 법사위원들의 논의를 통해 수정을 하거나 합의점을 찾으면 될 일”이라며 “제대로 논의도 해보지 않은 채 의사일정 전체를 파기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받아쳤다. 국민의힘은 ▶이미 광주과학고가 운영 중이고 ▶전북·전남·강원 등 과학영재고가 없는 곳에 특목고를 설립하는 것이 지역 형평성에 부합하고 ▶재원에 관해 기획재정부와 의견 조율이 안 됐다는 이유 등을 들어 법안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울산시 도시미관 작업 관계자들이 16일 울주군 장검교차로에서 정당현수막을 포함한 거리에 게시된 불법현수막에 대해 일제 정비를 실시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 9월 21일 '울산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 공포에 이어 3주간의 홍보와 계도기간을 거쳐 10월 16일부터 거리에 게시된 정당현수막 및 불법현수막에 대한 일제 정비를 실시한다. 울산광역시 제공


문제는 이날 처리하지 못한 법안 대부분이 여야 이견이 없는 비쟁점 법안이란 점이다. 특히 옥외광고물법은 지난해 12월 시행된 뒤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아 안전사고 등 시민의 피해가 잇따랐다. 이에 여야는 정당 현수막 갯수를 제한하는 개정안을 시급히 처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이날 처리가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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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안전과 직결된 법안도 줄줄이 처리가 밀렸다. 재난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 당시에도 “사고 발생 1년이 지나도록 국회는 관련법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며 지탄의 대상이 됐던 법안이다. 집중호우 등으로 인해 신고가 폭주하는 현상에 대비하고 소방 활동의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119 정보통신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119긴급신고법 제정안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예방 법안 성격이었으나 이 역시 미뤄졌다.

법사위 소속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광주에 특목고 하나 세우는 것의 무게가 민생 법안의 무게보다 무겁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며 “특히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존속 기간과 위원의 임기를 동일하게 맞추기로 한 5·18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도 민주당이 추진해 이날 처리하기로 합의했는데, 지역 공약 하나 때문에 배짱을 부리니 과연 민생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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