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어피니티 회계사법 위반 무죄…교보 "풋옵션 국제 중재와는 무관"
ICC "신 회장 되사줄 의무 없다" 이미 판결
교보생명의 지분 가치를 두고 갈등을 벌여 온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 측이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를 벗게 됐다. 하지만 이는 형사처벌을 면한 것으로, 논란의 핵심인 풋옵션 가치 판단과 그에 대한 국제 중재와는 무관하다는 평이다. 핵심 쟁점인 지분 가치 산정과 풋옵션 행사와 관련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판정승을 거둔 국제기구의 판단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9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대법원은 교보생명의 풋옵션 가치 평가 과정을 둘러싸고 어피니티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안진회계법인 관계자들 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형사 재판은 최종 마무리됐다.
신 회장과 어피니티는 교보생명의 지분과 연계된 풋옵션 계약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여 왔다. 풋옵션은 주식이나 시장 가격에 관계없이 채권, 금리 통화 등을 일정 시점 정해진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다.
신 회장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했던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한 어피니티와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9월 말까지 IPO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한 교보생명 주식을 신 회장에게 되팔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교보생명의 상장이 미뤄지자 어피니티는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이 때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가격 평가기관으로 안진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안진회계법인이 교보생명 주식의 1주당 가치를 무려 40만9000원으로 매기면서 논란이 됐다. 어피니티의 주장대로면 교보생명 주식의 풋옵션을 가진 FI의 지분 가치는 2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대법원의 판결은 어피니티와 안진회계법인이 교보생명 지분의 가격을 평가하는 데 있어 공인회계사법까지 위반했다고 보기엔 증거가 다소 부족했다는 뜻이다.
다만 어피니티와 안진회계법인이 형사처벌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신 회장과의 분쟁에서도 우위를 점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공인회계사법 위반 여부와 교보생명 지분 가치 평가의 적절성은 완전히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풋옵션 가치 평가 공인회계사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다만 본 판결은 풋옵션 중재 소송과는 무관한 공인회계사법 위반에 대한 형사 판결이고, 형사재판 무혐의가 풋옵션 가치 평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신 회장과 어피니티 사이의 풋옵션 가치를 둘러싼 판단은 이미 앞서 확정돼 있었다.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재판부가 양측의 갈등에 대해 2021년 9월에 내놓은 판결이 있어서다. 국제 중재는 단심제로 사실상 대법원 판단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ICC는 당시 교보생명의 지분 가치 평가에 대해 사실상 신 회장 쪽의 손을 들어줬다. 신 회장과 FI의 풋옵션 계약 자체는 어피니티 입장대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회계법인이 제시한 평가액대로 신 회장이 풋옵션을 이행하게 해달라는 어피니티의 요청은 기각했다. 신 회장이 FI에게 약속한 풋옵션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를 1주당 40만원이 넘게 쳐줘야 할 의무는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I 측은 또 다시 국제 중재에 나섰다. 어피니티는 지난해 2월 ICC에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 의무 이행을 구하는 중재를 신청했다. 어피니티는 해당 2차 중재 신청에서 계약상 합의된 절차에 따라 풋옵션 가격을 산정하기 위해 신 회장에게 자신의 평가기관을 선정, 교보생명의 공정 시장 가격에 관한 평가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교보생명 측은 공인회계사법 위반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 현재 진행 중인 중재판정부 풋옵션 2차 중재 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안이란 점을 강조한다. ICC에서 진행 중인 건은 민사적 분쟁이기 때문이다. 즉 신 의장이 어피니티의 풋옵션 행사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중재 소송과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앞선 중재 판결에서 공인회계사법 위반 형사재판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했음에도 어떤 가격에도 풋옵션을 받을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며 "앞으로 교보생명은 회사와 이해 관계자들의 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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