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누출에, 작업 중지 후 대피…대법 "직원 징계 부당하다"
화학물질 유출로 피해가 우려되자 ‘작업중지권’을 행사해 근무를 중단한 채 사업장을 떠난 직원에 대해 회사가 징계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회사를 상대로 정직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낸 A씨에 대해 원고 패소 판단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세종시의 한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6년 7월 26일 오전 9시 무렵 회사로부터 약 200M 떨어진 한 공장에서 화학물질인 티오비스가 누출됐다는 사고 소식을 들었다. 티오비스는 상온에 노출되는 경우 유독성 기체인 황화수소로 변질해 두통이나 수면장애, 눈과 코 등에 자극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이다. 당시 회사의 노동조합 지회장이던 A씨는 고용노동부에 대책을 요청하고 회사에도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A씨는 회사가 별다른 지침을 내리지 않자 소방본부에 유해성에 대해 묻고 ‘대피방송이 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듣고는 작업 중단을 지시하고 조합원 28명과 함께 대피했다. 산업안전보건법 52조 1항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A씨는 사고 이틀 후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누출사고 소식을 노동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피해가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며 “근로감독관이 인근 대피상황을 알리고 관련 조치를 제안했는데 회사가 거부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측은 2016년 11월 A씨가 임의로 작업을 중지시킨 채 사업장을 무단이탈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회사를 비방했다며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A씨의 재심청구로 징계 처분은 정직 2개월로 다소 내려갔지만, A씨는 2017년 3월 회사를 상대로 징계가 부당하다고 소송을 냈다.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대해서는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물을 수 없도록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52조 4항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1·2심은 사측의 손을 들었다. 근로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인 ‘급박한 위험’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1심은 A씨 회사가 소방본부의 통제선 밖에 위치한 점, 이상 징후로 치료를 받은 직원이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부당하게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역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대표가 노조활동 목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작업중지권이 일상적 파업권으로 쟁의행위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A씨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고 현장 반경 1km 내에 있는 마을 주민들에 대해 대피방송이 있었던 점에 비춰 황화수소 피해 범위를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고, 회사가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A씨의 합리적 작업중지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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