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본 캐나다 유학생들의 반응, 그 놀라웠던 순간
[김우철 기자]
▲ 영화 <1987> 포스터 |
ⓒ CJ ENM |
20여년을 언론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적지 않은 나이에 캐나다로 유학을 와 학생 신분으로 지낸 지 3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세계 곳곳에서 유학을 오는 캐나다에서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힘들지만 이들이 살게 될 미래를 알아가는 무척 의미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서툰 영어로 하는 긴 호흡의 유학생활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순간은 발표 시간에 시간을 잘 때울 요량(?)으로 준비해간 영화 < 1987 >의 티저 영상을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줄 때였다.
발표를 마친 뒤 '아, (시간) 잘 때웠다'라는 나의 안도감과는 다르게, 수업이 끝난 뒤 그리고 그 뒤에도 이메일을 통해서 중국, 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젊은 학생들이 너무 큰 관심을 보였다.
▲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
ⓒ 쇼박스 |
조금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영화 <택시 운전사>에도 등장인물로 나오는 독일기자 힌츠페터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에서 공동 주관하는 국제 보도상이다.
이 상의 모티브가 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광주에 들어가 시민들의 모습을 전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당시 폭발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포착했던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서 그의 신체 일부는 광주에 묻혀 있다. 이 상은 그런 그의 정신을 기리면서 세계의 기자들과 연대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자리이자, 부패한 독재 권력과 싸우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 8일 세 돌을 맞은 이 상엔 세계 곳곳에서 사선을 넘나 들며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권력에 맞서 싸우며 기록하는 세계 여러 나라 기자들의 땀과 열정이 오롯이 담겨있다.
먼 발치에서 보자면, 아직 시민들의 기대에 한참 모자라는 한국의 언론과 정치 상황 속에서 이 상의 가치가 빛을 잃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넘어선 그 임계점은 많은 국가들에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자 피로 얼룩진 진행형이다.
그래서 영화 < 1987 >의 영상클립을 보고 나서 세계 여러 국가 학생들이 보인 공통 반응은 그만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우리가 얻어낸 경제적 번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선 그 아슬아슬한 '선'에도 있다.
그 위에 더해진 한류는 이들에게 대한민국을 더 힙하게 보이게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이루어낸 민주적 가치를 확산하고 연대한다는 취지의 이 상은 그래서 그만큼 가치가 있다.
▲ 캐나다 대형매장 캐나다 코스트코 |
ⓒ 김우철 |
소비 천국이라는 북미의 대형매장에서, 품질이 더 이상 결코 나쁘지 않는 수많은 저가 브랜드 티브이들이 팔려 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라와 기업의 미래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물론 "무엇을 국가 정체성으로 할 것인가", 또는 "그것을 누가 정할 것인가?"는 정치의 영역이고 그 자체도 논쟁적이지만, 외국에서 살다보니 국가 번영이라는 틀에서는 국가 브랜드의 중요성에도 공감도 어느 정도 간다. 우리는 어느덧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이기도 하면서,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낸 아주 매력적인 브랜드를 가진 희귀한 나라 중에 하나이다.
영상을 업으로 했던 사람이지만 이곳 캐나다의 대형매장에 진열된 즐비한 가전제품들을 보면, 솔직히 그 차이도 잘모르겠고 또 기술 대중화의 시대에 그 차이가 그만큼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면, 제품의 사용가치를 넘어 상징을 소비하는, 감성적 문화적 소비의 시대에 저 수많은 제품들과 다르게 우리가 강조해야 할 지점은 우리나라 제품에 내포된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문화적 힘은 국가행사에 한류 스타들이 출연하고, 정치인들이 연예인을 초대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위에서 위계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힘도 아닐 것이다. 또한 노동을 쥐어짜내어 만들어낸 가격경쟁력도 더 이상 아닐 것이고, 인권을 희생하며 무대 위에 세운 몇몇 잘못된 아이돌 같은 모습도 아닐 것이다. 정확한 언어로 짚어낼 수는 없어도 그 힘은 우리가 돌파해 낸 그 임계점 위에서 끌어오르는 사회 전체의 에너지와도, 그리고 민주적 가치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 같다.
▲ 힌츠페터 수상 아담 데지데리오, 줄리아 코체토바, 벤 C. 솔로몬 |
ⓒ 한국영상기자협회 |
마지막으로 다시 영화 < 1987 >에 외국학생들이 보인 반응을 생각해보며, 계속 퇴행하는 정치에 한류의 경제적 가치를 셈하는 어법을 차용해 보고 싶다.
내년에 퇴행적인 구악 정치인들을 몰아낸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잠재적 경제가치는 수 조원에 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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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힌츠페터 공식홈페이지: https://www.hinzpeterawards.com/main/main_kor.do * 위의 글은 개인적인 소견으로서 힌츠페터 조직위원회의 공식적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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