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 형이 나를 키웠다" 유재석이 고맙다고 한 까닭
[이준목 기자]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 tvN |
"강감찬도 나이 70에 귀주대첩에 나갔다. 제게도 70세가 넘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들어오고, 제가 할 수 있다면 또 하고 싶다."
어느덧 60대의 나이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로 변함없는 외모와 열정을 유지하고 있는 배우 최수종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11월 8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왕이 나타났다!' 특집으로 뉴욕 '킴스비디오' 김용만 대표, 삼성전자 사내 노래 경연대회 수상자 이은영과 김인환, 제빵사 서용상, 배우 최수종이 출연하여 자신들만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킴스 비디오'는 1985년 1호점을 개점해 한때 30여만 편의 영화 컬렉션, 25만 명의 회원, 30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한 미국의 유명 비디오 대여점이자 뉴욕의 명소로 이름을 떨쳤다. 김 대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비디오로 나오지 못한 영화들을 소개하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사랑했던 김 대표는 할리우드 유명 상업영화만이 아니라 참신한 독립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로버트 드 니로, 쿠엔틴 타란티노,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단골손님이었다고. 영화 <조커>를 감독한 토드 필립스는 킴스비디오의 직원으로 일하다가 김용만 대표에게 직접 해고를 당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비디오 산업이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를 맞이하면서 인터넷과 스트리밍서비스의 득세 속에 비디오 대여점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넷플릭스' 이전에 제가 스트리밍을 먼저 시작했다. 뉴웨이브에 대해 준비를 많이 했다. 그런데도 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부어도 안 되더라. 가지고 있는 데이터만 100만 개인데, 이게 비용이 너무 드는 거다. 디지털로 옮겨 과는 과정이 속수무책이었고 그사이 넷플릭스가 빠르게 성장했다"고 전했다.
2008년부터 킴스비디오 역시 하나둘씩 매장을 정리하게 됐다. 김 대표는 그동안 축적한 비디오컬렉션을 한국예술영상원과 한국·미국의 여러 대학들에 기부했다. 2009년 당시 김 대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잊히고 싶다. 저는 패자이고 이긴 뉴테크놀로지(넷플릭스)는 승자이기 때문"이라는 인터뷰를 남기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킴스비디오의 단골이었던 애슐리 세이번과 데이비드 레드먼 감독은 킴스비디오의 역사를 다룬 다큐 영화 <킴스비디오>를 제작하여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또한 2022년에는 방치된 비디오컬렉션을 모아 킴스비디오를 재오픈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킴스비디오는 우리가 황금을 얻으러 갔던 곳"이라고 표현하며 뉴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의 낭만을 다시 이어가려는 킴스비디오를 향한 찬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파리지앵 입맛 사로잡은 한국인 제과제빵사
S전자에서 근무하는 이은영, 김인환씨는 1년 전 열린 사내 경연 대회에서 노래를 열창하여 각각 1등과 4등을 차지하며 프로 가수 못지 않은 가창력과 쇼맨십으로 화제가 됐다.
이은영씨는 과거 라디오 공개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경연에도 나간 적이 있다며 결선에서 만난 상대가 SG워너비 김진호였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김인환씨 역시 역시 대학교 축제 등에 많이 출전했는데 경쟁자가 래퍼 스윙스였다는 불운한 대진운을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대기업다운 화려한 상품과 회사 베네핏은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은영씨는 500만 원 여행 상품권을 받아서 코타키나발루로 가족여행을 갔다 왔다고 자랑했다. 김인환씨는 상금 대신 고급호텔 숙박권과 2인 뷔페권을 받아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와 다녀왔다고 밝혔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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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서용상씨는 아시아인으로 현지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을 고백했다. "2007년 오픈을 하고 3년 정도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 길거리에 아시아인이 오픈한 빵집이 갑자기 생기니까 꺼려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나다니시기는 했지만 막상 들어오시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다"며 힘들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아내 양승희씨는 "지금은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너무 좋은데 저희가 처음 오픈했을 때만 해도 한국을 잘 모르시고 아주 가난한 나라로 생각하고 무시하는 분들이 계셨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빵 만드는 실력 하나로 동네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서용상씨는 제과 대회까지 출전하게 되었고 이제는 현지인들에게 인정받는 명장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서용상씨는 자신만의 제빵 비법으로 "간단한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하여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정해진 시간, 온도, 수분율 등을 모두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가장 맛있는 빵을 만드는 길이다"라고 기본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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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왕'이자 '시청률의 보증수표', 동시에 대한민국 남편들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우는 배우 최수종이 마지막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최수종은 최근 방영을 앞두고 있는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강감찬 역을 맡아 오랜만에 다시 대하사극으로 복귀했다. 또한 <고려 거란 전쟁>은 국내 대하사극 최초로 넷플릭스를 통하여 글로벌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에 최수종은 "부담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인 '작지만 크고 위대한 민족'이었다는 소강국의 이미지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게 된다면, 한국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며 사명감을 드러냈다.
최수종은 사극지왕 이미지와 달리 대하사극을 많이 한 편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최수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현대극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다만 2000년대 이후 출연한 <태조왕건> <태양인 이제마> <해신> <대조영> 등의 대작이 모두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사극 전문 배우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태평성대를 이루는 고전적 영웅의 이미지는 최수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지금이야 연기력과 프로의식에서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최수종이지만 처음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최수종은 커리어 초창기, 사극 데뷔작이었던 MBC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에서 사도세자를 맡았을 때 대사 한마디를 할 때마다 어색한 연기로 선배들이 박장대소를 했다는 흑역사를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한 최수종은 선배들의 연기와 발성을 꼼꼼히 분석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2000년 방영된 <태조 왕건>은 한국 사극의 레전드이자 최수종의 필모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년에 걸쳐 방영된 <태조 왕건>은 한국 사극 역사상 최장편이자 최고시청률 60.5%에 이르는 각종 기록을 세우며 공전의 히트를 달성했다. 최수종은 현대 멜로물 특화 이미지와 초반 미스캐스팅 논란을 극복하고 배우로서 재평가를 받으며 이후 사극지왕으로 승승장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최수종은 "다른 작품을 찍다가 <태조 왕건> 캐스팅 소식을 듣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고 감격적인 순간을 떠올렸다. 하지만 초기에는 당시 동글동글한 얼굴에 쌍꺼풀까지 있는 최수종의 외모와 이미지가 사극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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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최수종은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쳤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민망하다. 저는 작품에서 구성원의 하나일뿐, 제가 그 모든 걸 다 만든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많이 한 건 없다"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만 "남들보다 더 대본을 많이 본다. 대본을 읽을 때마다 정(正)자로 표시를 한다. 남이 100번 읽었다면 저는 101번을 본다는 각오다. 그러면서 대사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할지 고민한다"라는 자신만의 연기 비결을 덧붙였다.
심지어 한때는 국어사전을 챙겨가지고 다니며 대사 한 마디의 장음과 단음까지 구분할 만큼 철저히 연구를 했다고. 최수종은 "그래서 남들보다 첫 대본을 읽는 데 두 배는 오래 걸렸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하려고 하니까. 촬영이 들어가면 대본을 딱 놓는다. 그때까지 대본은 늘 저와 같이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과 남다른 프로의식에서 최수종과 닮은 인물이 바로 유재석이다. 과거 유재석은 최수종이 메인 MC를 맡았던 예능프로그램에 <자유선언>에서 보조 MC로 활약했던 인연이 있었다.
최수종은 "지금은 많이 여유있고 성장했지만 그때는 많이 떨었다"고 풋풋하던 시절의 유재석을 회상하며 "저 사람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줄까만 머릿속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유재석은 "형님이 저를 안심시켜줬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내가 다 받아줄게, 걱정하지마'라고 하더라"는 훈훈한 일화를 전하여 최수종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 형이 나를 키웠다"고 감사를 전했다.
최수종은 "지금 유재석을 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가 할말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거기서 뭔가 포인트를 찾아서 이야기하더라.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까 싶더라"며 국민MC로 성장한 유재석의 모습에 뿌듯해했다.
명배우 최수종의 탄생은 알고보면 우연에서 비롯됐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최수종은 자신이 과외를 하던 학생의 부모가 마침 당시 KBS 드라마 예능 총괄국장으로 추천을 받아 하루아침에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최수종은 청춘드라마였던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최수종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돈을 벌고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강했던 '생계형 배우'에 가까웠지만, 특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차근차근 성장해나갔다. 연기에 아무 것도 모르던 최수종은 대본을 받으면 남의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고. 최수종은 연기를 넘어 <젊음의 행진> MC로도 발탁되며 예능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아내인 배우 하희라 역시 연기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됐다. 최수종은 하희라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일화를 언급하며 여전한 사랑꾼의 면모를 드러냈다. 두 사람은 여러 편의 청춘멜로 영화에서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으며, 결혼하고 장성한 자녀들을 둔 지금도 연예계의 대표 잉꼬 커플로 통한다.
최수종은 환갑을 넘긴 지금도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하다. 작품을 할 때는 철저히 대본 연구에 충실하고, 주중에는 집과 일터, 체육관을 오가는 루틴을 성실하게 무한반복한다고. 최수종은 "때로는 너무 단순하고 심심하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일하러 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배우는 것이 많고, 그게 내 재산이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40년 가까이 젊은 시절의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최수종에게 누구보다 공감한 유재석은 "엄청난 자기관리와 절제가 아니면 이뤄낼 수 없다. 본인만의 생활을 꾸준히 지켜낸다는 것은 무엇보다 박수 받을 일"이라며 경의를 표했다.
최수종은 자신이 연기한 강감찬처럼 앞으로 70대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조금 더 절제하면 충분히 건강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다"면서 세월마저도 이겨내는 성실한 삶의 가치를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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