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하나 없어도 유명한 두부집이 있습니다

박진희 2023. 11. 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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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두부와 콩나물 직접 만들어 파는 이 곳... 멀리서도 차 끌고 사러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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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기자]

"10월 소비자물가가 3.8% 상승했습니다. 석유류는 1.3% 하락했으나, 사과, 상추 파 등 농산물이 15%상승하여 수확기를 맞아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란 정부의 예상과 달리 29개월째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들리는 소리다. 뉴스를 비롯한 언론 매체에선 매번 고공행진 중인 물가 이야기가 들려온다. 의류, 신발 등이 전보다 8%나 뛰어 31년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다느니, 머지않아 식당 소주가 7000원 시대를 맞을 거라느니... 이렇게 반갑지 않은 뉴스가 들려온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실제로 마트나 시장에 나가 장을 보다 보면 현장에서 체감하는 먹거리 물가는 뉴스에서 전하는 숫자 그 이상이다. 가격 부담이 덜하다 싶은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앞에서도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면 말해 뭣하겠나.

두부 한 모, 콩나물 천 원어치 살 수 있는 곳

식탁에 오를 반찬이 궁해지면 나는 두부 한 모를 사러 동네 '콩나물 공장'을 찾는다. 콩나물 공장은 동네 좁은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낡은 건물을 말한다. 그곳에는 20년 넘게 콩나물과 두부를 파는 할머님이 계시다. 본인이 직접 기른 콩나물과 밤새 인근 공장에서 아들이 만든 두부를 같이 팔고 있어서 동네에서는 흔히들 '콩나물 공장' 혹은 '두부집'이라고 부르며 왕래한다.

콩나물을 사는 방식은 지극히 단순하다. 손님이 일정 금액만큼 콩나물을 달라고 하면, 주인은 손님이 제시한 금액만큼 콩나물을 담아 준다. 그런데 천 원짜리 한 장만 내도 누구든지 서운치 않을 양을 건네준다.
 
 동네 골목에서 직접 만든 두부와 직접 기른 콩나물을 파는 할머님이 계시다.
ⓒ 박진희
두부는 한 판에 12모가 나온다는데, 시판되는 모두부보다도 훨씬 더 두툼하고 크기가 크다. 가격은 한 모에 2000원이다. 콩나물 공장에는 우리 콩으로 만든 두부도 보인다. 한 판에 15모가 나온다는데 한 모에 1500원이다. 우리 콩 두부는 한 번도 사 본 적은 없다.

제사를 지낸다고 플라스틱 통을 들고 와서 두부 다섯 모를 사가는 손님을 보긴 봤지만, 이른 아침에는 주로 한 모나 두 모를 사가는 가정주부들이 고객이다. 아침상에 올릴 반찬 재료로 갓 만들어진 따끈한 두부를 사러 오기 때문이리라. 콩나물 공장에는 아침나절까지도 손님들이 드나든다.

그런가 하면 멀리서 콩나물과 두부를 사려고 차까지 끌고 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변변한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아도 용케들 알고 찾아온다.

치솟는 물가보다 아쉬운 건, 사람들 사이 사라지는 정(情) 

콩나물 공장 근처에서 영업하는 식당들도 싸고 맛 좋은 이 집 두부를 많이들 쓴다. 단골 식당에는 할머님께서 직접 배달 서비스를 해주기도 하는가 보다. 종종 길거리에서 두부판이 올라간 밀차를 끌고 다니시는 할머님을 뵙곤 하니 말이다.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이 곳 두부집에 오면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을 때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어릴 적 집에 큰 행사를 앞둔 날이면 잘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아 콩물을 내리고, 큰 솥에 그걸 붓고 끓이다 몽글몽글 하얀 응어리가 올라오면 한 바가지씩 퍼서 틀에 부어 눌러 준다. 모양이 대충 잡히면 숭덩숭덩 자른 따끈한 두부를 앞다투어 먹었다. 그 두부가 아무 양념 없이 먹어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두부 한 판에 12개의 모두부가 나온다.
ⓒ 박진희
 
그런데 요새 마트에서는 두부 한 모를 사며 "예전보다 50원이 올랐네, 100원이 비싸네"하며 머릿 속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두부집 옆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던 잎을 한 잎씩 떨구는 가을날, 2000원 하는 두부 한 모를 떼어주시는 할머님의 주름진 손을 보며 깨닫는다. 요즘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단지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식구들 안부 먼저 물어오는 채소전 아주머니, 목청 높여 호기롭게 모객하는 어물전 아저씨가 점점 줄어든다. 손님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며 만두소 한 숟가락을 더 눌러 담던 만둣가게 할머님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더는 볼 수 없는 그리운 얼굴을 그리며, 덧없는 그 옛날 감성에 젖어 숫자로 정량되지 않는 정(情)이 든 기억 속 곳간을 매만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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