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하나 없어도 유명한 두부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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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기자]
"10월 소비자물가가 3.8% 상승했습니다. 석유류는 1.3% 하락했으나, 사과, 상추 파 등 농산물이 15%상승하여 수확기를 맞아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란 정부의 예상과 달리 29개월째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들리는 소리다. 뉴스를 비롯한 언론 매체에선 매번 고공행진 중인 물가 이야기가 들려온다. 의류, 신발 등이 전보다 8%나 뛰어 31년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다느니, 머지않아 식당 소주가 7000원 시대를 맞을 거라느니... 이렇게 반갑지 않은 뉴스가 들려온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실제로 마트나 시장에 나가 장을 보다 보면 현장에서 체감하는 먹거리 물가는 뉴스에서 전하는 숫자 그 이상이다. 가격 부담이 덜하다 싶은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앞에서도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면 말해 뭣하겠나.
두부 한 모, 콩나물 천 원어치 살 수 있는 곳
식탁에 오를 반찬이 궁해지면 나는 두부 한 모를 사러 동네 '콩나물 공장'을 찾는다. 콩나물 공장은 동네 좁은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낡은 건물을 말한다. 그곳에는 20년 넘게 콩나물과 두부를 파는 할머님이 계시다. 본인이 직접 기른 콩나물과 밤새 인근 공장에서 아들이 만든 두부를 같이 팔고 있어서 동네에서는 흔히들 '콩나물 공장' 혹은 '두부집'이라고 부르며 왕래한다.
▲ 동네 골목에서 직접 만든 두부와 직접 기른 콩나물을 파는 할머님이 계시다. |
ⓒ 박진희 |
제사를 지낸다고 플라스틱 통을 들고 와서 두부 다섯 모를 사가는 손님을 보긴 봤지만, 이른 아침에는 주로 한 모나 두 모를 사가는 가정주부들이 고객이다. 아침상에 올릴 반찬 재료로 갓 만들어진 따끈한 두부를 사러 오기 때문이리라. 콩나물 공장에는 아침나절까지도 손님들이 드나든다.
그런가 하면 멀리서 콩나물과 두부를 사려고 차까지 끌고 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변변한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아도 용케들 알고 찾아온다.
치솟는 물가보다 아쉬운 건, 사람들 사이 사라지는 정(情)
콩나물 공장 근처에서 영업하는 식당들도 싸고 맛 좋은 이 집 두부를 많이들 쓴다. 단골 식당에는 할머님께서 직접 배달 서비스를 해주기도 하는가 보다. 종종 길거리에서 두부판이 올라간 밀차를 끌고 다니시는 할머님을 뵙곤 하니 말이다.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이 곳 두부집에 오면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을 때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 두부 한 판에 12개의 모두부가 나온다. |
ⓒ 박진희 |
그런데 요새 마트에서는 두부 한 모를 사며 "예전보다 50원이 올랐네, 100원이 비싸네"하며 머릿 속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두부집 옆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던 잎을 한 잎씩 떨구는 가을날, 2000원 하는 두부 한 모를 떼어주시는 할머님의 주름진 손을 보며 깨닫는다. 요즘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단지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식구들 안부 먼저 물어오는 채소전 아주머니, 목청 높여 호기롭게 모객하는 어물전 아저씨가 점점 줄어든다. 손님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며 만두소 한 숟가락을 더 눌러 담던 만둣가게 할머님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더는 볼 수 없는 그리운 얼굴을 그리며, 덧없는 그 옛날 감성에 젖어 숫자로 정량되지 않는 정(情)이 든 기억 속 곳간을 매만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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