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 피카소 붓을 들게 하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발굴 현장의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4년부터 진행한 전국각지 유해발굴 현장의 생생한 기록과 발굴을 둘러싼 사연, 증언, 느낌 등을 한 주에 한 편씩 전할 계획이다. 잘못된 역사와 진실을 밝히고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진실과 화해의 치유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기자말>
[김영희 기자]
▲ 우석대 심포지엄 안내 |
ⓒ 김영희 |
필자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북한 신천 학살사건 간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여 2021년 6월 22일 전북 전주로 향했다. 우석대학교 동아시아 평화연구소가 '6·25 전쟁과 이북 지역의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기 때문이다.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파블로 피카소의 140주년 특별전 |
ⓒ 김영희 |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파블로 피카소의 140주년 특별전 |
ⓒ 김영희 |
학술대회를 마치고 바로 피카소 특별전을 가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전시회 마지막 날 전시장을 방문했다. 전시를 관람한 후 내려오는 길에 대전 골령골 발굴장을 가볼 계획이었으나 관람을 마치니 장대비가 쏟아져 다음을 기약했다.
피카소 특별전을 다녀오다
학술대회에서 대략적인 전시 내용을 알고 갔지만, 피카소 전시회는 생각보다 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개별 오디오를 나누어 주었기에 작품의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피카소를 위대한 화가로 알고 있었을 뿐, 작품이 추상적이라 이해가 어려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일단 다른 작품은 뒷전이고, '한국에서의 학살'을 빨리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작품의 관람 순서를 따라 '아비뇽의 처녀들' '광대복을 한 폴' 등을 감상했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났을까, 마지막 관람실에서 '한국에서의 학살'이 저만치 보였다.
▲ <한국에서의 학살> 앞에서 |
ⓒ 김영희 |
국내에 처음 전시된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 반전 예술 3대 걸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이 유명한 이유는 '전쟁'을 주제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전쟁과 이번 특별전에서 전시된 '한국에서의 학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쉽게도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담은 '게르니카',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시체 구덩이'는 전시되지 못했다. 그럼 3대 반전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자.
▲ 피카소 <게르니카> 1937년, 776X349cm. 마드리드 국립 레이나 소피아 예술센터 소장. |
ⓒ 마드리드 국립 레이나 소피아 예술센터 소장 |
1937년 완성된 피카소의 반전 작품의 효시 '게르니카'는 그의 조국 스페인에서 일어난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랑코 정권의 사주에 의한 나치 독일의 민간인 학살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같은 해 파리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됐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프랑코 정권과 공화당 정권 사이 싸움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프랑코 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1937년 4월 26일, 프랑코 정권은 나치를 사주해 공화당파를 지지하는 북부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한다. 이 무자비한 폭격으로 1600여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게르니카> 작품 해석
"이 작품은 흑백으로 그렸다. 여기에는 수많은 역사, 이야기, 전설, 비극, 은유 등이 들어 있다. 죽은 아이를 안고 우는 어머니, 쓰러진 사람들, 황소, 말, 불타는 건물 등의 여러 요소가 나란히 배치되는 식으로 구성됐다. 더 이상 표현은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그림의 해석은 우리의 몫이다. 게르니카는 마치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그려져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 전수미 '피카소 picasso 탄생 140주년 특별전 어록',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21.4.25. 207~208쪽
최악의 전쟁범죄, 유대인 집단학살의 비극
▲ 피카소 <시체구덩이> 1946년. 캔버스에 유화작품 200X200cm.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
ⓒ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
'시체구덩이'는 1946년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 유대인 집단학살의 비극은 다시 한번 피카소로 하여금 붓을 들게 만들었다.
이 작품도 단색 처리기법을 사용하였으며 나치 독일이 특정 민족에게 행한 비극적 만행을 이미지로 고발하고 경종을 울린 작품이다.
한국전쟁을 고발하다
▲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년 1월 18일 완성작품. 한국전쟁 중에 그린다. 파리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 |
ⓒ 파리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 |
<한국에서의 학살> 작품 해석
남성임을 알 수 있는 군인들의 몸통은 심장이 없는 로봇처럼 사이보그의 모습이며 반쯤 열린 낯선 헬멧과 투구를 쓰고 총을 겨누고 있다. 오른쪽 마지막 칼을 든 인물은 투구를 쓴 중세의 기사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반대편에는 세 명의 성인 여자와 소녀 그리고 네 명의 어린아이 모두 여덟 명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는 알몸으로 겁에 질린 채 서 있다. 발아래 쪽에 앉아있는 어린아이는 심각한 상황과는 무관한 듯 천진난만하게 놀이하고 있고, 소녀로 보이는 가슴에 손을 얹은 여인은 얼굴이 사색이 된 듯 응고된 시선으로 정면을 직시하고 있다.
그 바로 옆의 여인은 모든 걸 체념한 듯 눈을 감아버렸다. 그 옆에는 아기를 가슴에 안은 여인이 울고 있는 아기를 안고 공포에 질려 오열하고 있으며 임신한 여인은 겁에 질린 아이를 자신의 몸 뒤로 숨기고 있다.
공포에 질린 사람과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군인들의 대립적 구도,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충격적 묘사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초록색과 노란색이 화사하게 색칠되어 있다. 초록은 평화를 염원하는 뜻이다.
작품 제목 이외에는 내용적으로 한국전쟁을 특징지을 만한 요소가 없다는 평가이다. - 전수미 '피카소 picasso 탄생 140주년 특별전 어록',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21.4.25. 209쪽
피카소는 1944년 10월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한다. 프랑스 공산당은 1950년 9월 피카소에게 저 머나먼 한국의 한국전쟁을 고발하는 작품을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피카소는 즉시 붓을 들어 1951년 1월 18일에 '한국에서의 학살'을 완성한다.
프랑스 공산당의 속셈은 한국전쟁에서의 미군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고 프랑스 공산당은 피카소에 거는 기대에 비해 애매하게 표현한 부분에서 실망한다.
작품에는 특정한 사건을 지칭하지 않고, 미군이라는 특정 군대를 직접 묘사하지도 않았으며, 작품 속 배경이 한국의 자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피카소는 작품의 해석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반면 미국이나 우방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미국은 이 작품을 보고 총을 쏘는 군인이 미군임을 짐작한다. 피카소는 이 작품으로 인해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감시까지 당하게 된다.
▲ <한국에서의 학살> 작품 앞에선 피카소 모습 |
ⓒ 살바도르 달리 |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학살
1950년 9월 중순부터 전세가 바뀌기 시작해 북한에 매우 불리해졌다. 10월부터 38도선 북한에서 인민군이 후퇴하는 전선이 형성되자, 10월 13일 황해도 신천지역을 비롯한 재령과 안악에서 반공청년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이 봉기를 전후해 인민군은 우익 청년들과 기독교인 700여 명을 죽인다.
이어 우익 무장단체와 북한 측 간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10월 17일 미군이 신천을 점령하고 북쪽으로 진격하면서 신천은 '치안 부재지역'이 된다. 이때 반공청년단(우익)이 공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 인민들을 살해한다.
신천학살은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간 2만3천 명(국제민주여성연맹 조사단의 자료제공)이 학살되었다. 신천학살은 기독교 청년들이 주도한 우익치안대와 미군에 의해 자행되었다.
11화 북한 신천학살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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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전쟁 창원유족회 유해발굴 조사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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