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대학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국립대의 민낯
[김일곤 기자]
▲ 대학 개강일인 2일 오전 경상도 한 대학 입구에 추가 모집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 대학은 올해 정시 모집에서 8개 학과가 지원자 0명이었다. 2023.3.2 |
ⓒ 연합뉴스 |
학령인구가 대폭 감소하면서 지방대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대학들이 동시다발로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더해졌다. 지방대 위기를 막지 못하면 지역의 붕괴, 지역의 소멸은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진단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지금의 지방대 위기의 근본 원인은 누가 뭐래도 수십 년간 지속된 고등교육 정책과 재정의 수도권 집중 결과다. 따라서 지방대 위기 해결 방안은 수도권에 집중된 고등교육 정책과 재정을 지방대 지원 정책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대폭 줄여야 하고(대학이 많아 지방에 학생이 없는 게 아니라, 수도권 대학이 학생을 싹쓸이해 가서 지방대학에 학생이 없는 것이다), 수도권을 정점으로 수직 고착화된 대학 서열화 해체를 전 사회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실천했어야 한다.
특히 교수, 직원, 조교, 학생, 대학 당국 등 대위 위기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는 지방대학 구성원들은 강력한 연대를 통해 수도권 대학 정원 축소, 지방대 재정 지원 확대, 대학 서열 해체 방안 마련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고 싸워야 했다.
하지만 글로컬 대학 선정 과정에서 대학 구성원들은 '연대'보다는 '경쟁'을, '같이 살기'보다는 '각자도생'을 선택했다.
법안이 국회에 최초 발의된 지 십 년 이상 지나 묵혀만 있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이 법의 제정으로 고등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모든 지방대학에 고른 재정지원을 주장해 지방대학이 같이 사는 해법을 요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과 구성원들은 정부가 선택할 30개 글로컬 대학에 뽑히기 위해 연대를 포기하고 경쟁에 참여했다. 이것은 연대를 통한 위기 극복이 아니라, 죽기 살기 경쟁 속에 뛰어들어 결국 나만 살겠다는 것, 알량한 정부 재정 지원의 노예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지방대학 위기의 시대를 맞아 지역의 국립대도 위기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국립대 중에서도 수십 년 동안 국가의 집중 지원을 받아온 소위 말하는 거점국립대학의 위기도 예외가 아니다.
거점국립대는 지역의 다른 국립대와 비교해 정부의 재정을 집중적으로 받아 왔지만 대학 위기를 피해 가지 못하고, 대학 위기의 시대가 닥치자 위기 돌파용으로 지역 국립대 흡수 통합에 나서고 있다.
거점국립대는 정부의 재정 지원 규모, 대학의 재정 규모에서 일반 국립대와 비교해 압도적이다. 2016년 자료이지만 국립대 내에서도 수십 년에 걸쳐 정부의 차등 지원 결과 당시 강원대, 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제주대 등 거점대(9개교) 재정 규모는 전체 국립대학의 48%를 차지했다.
서울시립대, 강릉원주대, 공주대, 군산대, 목포대, 순천대, 안동대, 창원대, 부경대 등 지역중심대학(9개교) 재정 규모는 전체 국립대학의 27%, 서울과기대, 한국체육대, 한경대, 한국교통대, 한밭대, 금오공대, 경남과기대, 목포해양대, 한국해양대 등 특수목적대학(9개교) 재정 규모는 전체 국립대학의 19%, 경인교대, 서울교대, 춘천교대, 공주교대, 한국교원대, 청주교대, 전주교대, 광주교대, 대구교대, 진주교대, 부산교대 등 교원양성대학(11개교) 재정 규모는 전체 국립대의 6%를 차지했다.
수십 년에 걸친 거점대와 일반 국립대와의 차별 지원 결과, 국립대 내에서는 대학 서열은 거점대들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를 이용해 작은 국립대학을 흡수통합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자만이다.
대학 위기 시대에 거점대의 지역 국립대 흡수통합은 대학 서열화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지역 국립대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자만이고, 결국 국립대 존재 의의와 국립대 생태계를 파괴하는 몰염치한 짓이다.
거점국립대가 사는 길은 지역 국립대와 상생할 때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시민의 눈으로 볼 때는 거점대나 지역 국립대나 고만고만한 지방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지역의 국립대를 균형 있게 지원해 이들 대학을 살려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국립대학'의 존재 의의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첫째로 국립대는 대한민국 시민 누구에게나 본인이 원하면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로 만들어졌다. 교육이 부와 권력의 대물림의 도구가 되지 않고, 계층의 이동이 가능한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립대는 저렴한 교육비(등록금)가 필수적이고, 국가의 예산 지원 또한 안정적이며 확대되어야 한다.
국립대 존재 의의 두 번째는 기초·인문학을 양성하는 역할이다. 지금의 사립대는 수년 전부터 취직이 잘 되는 학과, 즉 돈이 되는 학문인 응용학을 대폭 확대해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사립대학에서 기초 학문, 인문 학문은 퇴출당하거나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서 지금의 아주 작은 규모로만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자료이지만 2013년 김태년 의원실의 국정감사 자료를 살펴보면 '2003년 대비 2013년 대학 계열별 학과 수 및 입학정원 변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10년 동안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추진으로 인문계열 등 기초학문 학과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실용 학문 학과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용학문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초 학문인데 대학에서 취업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기초 학문이 퇴출되는 추이가 지속되면 결국엔 응용학, 기초학 동반 몰락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국가가 세금으로 설립한 국립대학은 우리 사회 발전의 학문적 토대인 기초학문, 인문학이 융성하도록 지원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국립대 존재의 세 번째 의의는 지역 균형 발전의 역할을 담당하라는 것이다. 국립대를 지역 곳곳에 세워 인재 양성, 지역에 인재 제공, 지역 공동체 강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역 균형 발전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삼척의 인구가 7만 명가량이다. 강원대 삼척캠퍼스 총 구성원(교수, 직원, 학생, 그 가족들)은 삼척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만약 강원대 삼척캠퍼스가 문을 닫는다면, 또는 지역의 국립대학이 무너지면 지역의 붕괴는 명확하다. 충주, 삼척, 안동, 군산, 진주 등 지역 중소 도시 곳곳에 여전히 국립대가 운영되고 있는 것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큰 그림에 의해, 국가 예산을 들여서 운영이 가능한 것이지, 이들 대학이 사립대였다면 그 운명을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로컬 본 대학 선정과정에서 국공립대 교수, 직원, 조교, 학생들은 더이상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연대를 통한 대학위기 극복에 관심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글로컬 예비대학에 선정된 부산대와 부산교대, 강원대와 강릉원주대, 안동대와 경북도립대, 충북대와 한국교통대 등 8개 국공립대학의 국립대 통폐합 찬반투표 과정에서 너무나 민망하게도 이들 대학 교수, 직원, 조교, 학생들이 오히려 국립대 통폐합 찬성에 적극 나섰다.
국교련, 교수노조(민주노총), 국공립대 교수노조, 대학노조(민주노총), 공무원노조 대학본부(민주노총), 학생 단체는 기자회견이나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글로컬 대학 정책이 문제가 있다고 반대하는 시늉만 할 뿐, 개별 국공립대 교수, 직원, 조교, 학생들의 찬성 여론을 바꾸려고 하는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
지난 30년 가까이 적어도 교수, 직원, 학생들이 조직해 활동해 온 고등교육 단체들이 합의하고 실천해온 '연대 강화',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가 철저히 뭉개지는 것을 방관했고, 결과적으론 동조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글로컬 대학 선정과정에서 드러난 국립대 교수, 직원, 조교, 학생 등 대학 구성원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게 돼 민망했다.
지방 대학 위기 극복 해법 중의 하나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지방대학에 균형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 국립대의 경우 적어도 거점국립대가 매년 받는 만큼의 재정 지원은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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