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도심을 떠나 강릉으로 거처를 옮긴 아티스트 김나훔(@nahumkim)과 그래픽 디자이너 안성경(@rower.sungkyung) 부부의 일상은 옴니버스 영화처럼 유쾌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예정에 없던 걸 먼저 지르고 벌어진 일을 수습하면서 엮어내는 이야기들은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강릉 살이의 다사다난한 즐거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열두 번째 #홈터뷰.
「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
구 남친 나훔씨(@nahumkim)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번아웃을 겪고 훌쩍 베를린 여행을 갔었어요. 삶의 이유를 찾으러 간다고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강릉으로 가더라고요. 저는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주말에만 강릉에 가서 데이트를 이어갔어요. 장거리 연애였죠. 그러다 저도 퇴사를 하고 웃프게도 자취방의 에어컨 문제로 강릉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을 알게 됐어요. 강릉은 감탄할 만한 무언가를 늘 보여주더라고요. 2020년에 이주해서 벌써 4년째네요.
지금 사는 곳은 서른 군데 넘게 매물을 보러 다니다 포기하려고 했을 때 나타난, 정말 오아시스 같은 집이었어요. 40년 넘은 주택인데 감나무가 있고 귀여운 텃밭도 있었죠. 현관 신발장 바닥의 네 잎 클로버 모티브를 발견했을 땐 ‘우리 집이다’ 느낌이 왔어요.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은 실컷 했으니 강릉에서만큼은 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 확신의 INFP 부부 」
저희 부부는 둘 다 INFP예요. 무계획, 노플랜 부부죠. 결혼을 준비할 당시 외국에 나가서 살려고 신혼집도 구하지 않았었어요. 외국 생활도 생각만 하고 계획은 자세히 세우지 않았었는데, 코로나가 터진 거죠. 바로 계획을 바꿔 남편을 따라 강릉으로 왔어요. 저희는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는 대신에 언제든지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근력은 꽤 다부져요. 그리고 이렇게 즉흥적으로 움직였을 때 짜릿함은 더 크답니다.
「 감나무 그늘 아래 툇마루에 앉아서 」
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 올 리모델링을 진행했어요. 수도, 배관, 난방 등 오래되어 언제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기초 공사도 모두 치러야 했죠. 예산이 생각보다 많이 초과되었지만 평소 팬이었던 인테리어 스튜디오 콩과하 (@duo.kongha) 친구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라 재밌고 신선했습니다. 콩과하는 저희의 라이프를 유심히 관찰하고 대화를 하면서 디자인을 이어갔어요. 거실에서 감나무가 잘 보이도록 창을 크게 내고 툇마루를 만들어 주었는데, 여기에 걸터앉아 풍경을 보다 보면 여기가 어디인지 잊게 돼요. 이 집을 계약할 당시 마당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했었는데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죠.
그렇지만 가끔 감나무 때문에 고생도 해요. 달달한 감 때문에 벌레도 잘 꼬이고 바닥에 떨어진 조각난 감들도 치워줘야 하고요. 어떤 날은 갑자기 나무에서 송충이들이 30마리 넘게 떨어져서 기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햇살에 흔들리는 감나무 잎들을 보면 다 잊게 돼요. 주택 살이의 힘든 점들은 다 감수하게 될 만큼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아요.
「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물결에 몸을 맡기듯, 편집숍 오어즈 」
오어즈는 노 젓는 사람들에게 행동을 멈추고 노를 수평으로 유지하라는 구령을 말해요.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물결에 몸을 맡기듯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편집숍 이름을 오어즈로 지었어요. 사실 이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어요. 저희가 계획하고 오픈한 건 아니었거든요. 무더운 여름날 아침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층 상가 창문에 ‘임대’라고 크게 써진 빨간 글자가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 살고 있는 주택 전에 잠시 살았던 집이 너무 좁아 작업한 그림들을 다 보관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창고로 쓰자고 덜컥 계약해버린 게 시작이었죠. 그림을 모두 가져다 놓았는데 공간은 텅텅 남아있고, 당근마켓에서 득템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누워있다 전기세라도 벌어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어요. 월세가 저렴했고 인테리어도 셀프로 해서 투자 비용이 크지 않았어요. 그러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재밌게 뚝딱뚝딱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강릉은 기회의 땅이에요. 창업에 도전하신다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로컬 지원 사업 공고도 종종 들여다보세요. 운이 닿으면 창업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어요. 여러 가지 세미나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해 주죠.
「 N잡러의 하루 일과 」
아침에 눈을 뜨면 강아지 보뜨와 산책하러 나가요. 송정해변 근처의 소나무 숲으로요. 나무에 기대어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봐요. 강릉에서 제일 아름다운 장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어즈로 출근해서 스탭 친구와 함께 공간을 정비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외주 디자인 작업을 시작합니다. 늦은 오후 즈음 일을 마치면 이제 오어즈에서 판매할 pb 제품들을 디자인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는 끝내려고 해요. 노을질 때 경포생태저류지로 가면 정말 끝내주거든요. 강릉이 커피의 고장인만큼 맛있는 커피 집도 정말 많아요. 보뜨와 카페 데이트를 즐기고 돌아와 저녁을 해 먹으며 마무리합니다.
「 공간을 사랑스럽게 가꿔주는 감나무 주택 속 보물들 」
아르텍 k65 바 스툴 & 비트라 쁘띠 포텐스 월 램프
카페에 가면 바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해요. 높은 바 체어에 걸터앉으면 뭔가 집중이 더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주방에도 바를 만들었어요. 벽 조명을 켜고 바 체어에 앉아 저녁을 먹을 때 종종 외식하는 느낌이 들어 좋아요.
LG전자 시네빔 HU810PW
집에 TV를 두지 않고 빔을 켜서 보고 싶은 영상만 봐요. 보통 TV가 있으면 그냥 틀어 두게 되니까 필요 이상으로 보게 되는 게 싫어서 빔으로 대체했죠. 대만족이에요.
아르떼미데 Demetrio 45 스태킹 테이블
툇마루에 어울리는 소반을 찾다 아르떼미데 빈티지 테이블을 발견하고는 이거다 싶었어요. 우리나라 전통 바느질로 수놓은 방석 옆에 이탈리아 테이블 매치하기. 생각보다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리고 흥미로운 조합이라 정이 많이 가요.
AGT 퀼트 이불
평소 손 맛이 느껴지는 퀼트 제품들을 좋아하는데요. AGT 숍에서 구매한 퀼트 이불을 침실이 아닌 거실로 끌고 와 소파 커버로 활용해 보니 독특한 분위기를 내주더라고요. 거실 분위기가 한층 화사해졌어요.
「 요즘 갖고 싶은 건 자수 테이블 매트 」
친구들을 초대해서 야외 마당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 먹는 걸 좋아해요. 몇 번 차리다 보니 스멀스멀 테이블 세팅에 욕심이 나더라고요. 요즘 눈에 들어온 건 프랑스 남부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사라(@sarahespeute)의 자수 테이블 매트예요.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라가 차린 러블리한 테이블은 보고 있으면 그저 미소가 지어져요.
「 강릉의 로컬 바이브를 함께 만들어가는 곳 」
바우어마켓 (@bower_market). 강원도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샌드위치와 신선한 과일 주스를 맛볼 수 있는 브런치 카페예요. 주기적으로 재즈 공연 ‘바우어 재즈나잇’도 열어요. 전통 시장에서 열리는 재즈 파티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