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6명 하던 일 혼자하는데 수주 2배…HD현대 변압기 '마법'
창립 46년 만에 공장 첫 언론 공개
7일 울산 동구 방어동 HD 현대일렉트릭 500kV 변압기 스마트공장. 노란 옷을 입은 육중한 기계가 5초 간격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기계는 길이 약 4m, 두께 약 0.23㎜의 얇은 회색 전기강판을 들어 올려 바로 옆 평상 위에 내려놓고는 잠시 멈췄다. 공장 천장에 설치한 레이저 장비의 수많은 센서가 시스템에 입력된 각도에 맞춰 강판 위치를 잡아주는 작업이다. 5초 정도 지나자 기계는 다시 철판을 집고 옆으로 이동해 켜켜이 쌓인 또 다른 강판들 위에 살그머니 내렸다.
기계는 이 작업을 반복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양재철 HD현대일렉트릭 변압기 담당 상무는 “변압기 생산공정 중 첫 단계인 철심구조물을 만드는 중”이라며 “예전에는 사람 5~6명이 하던 작업을 이 기계가 대신한다. 지금은 1~2명만 투입한다”고 말했다. 이제 작업자는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에러 난 부분은 없는지 체크하는 게 주 업무가 됐다.
강판 5000장을 1m(높이는 제품마다 다름)까지 쌓으면 철심구조물 1개가 완성된다. 철심은 일종의 철기둥으로 변압기 내부 전기장 통로 역할을 한다. 이날 만들고 있던 철심은 영국 전력 공기업 내셔널그리드에 납품할 3상 변압기로, 철심구조물 7개를 ‘日’ 형태로 이어 만든 철심이 들어간다. 변압기 한 대를 만드는 데 전기강판 총 3만5000장을 쌓아야 하는 셈이다.
강진호 변압기생산부서장은 “사람이 하면 밤낮으로 일주일 걸리는 이 작업을 철심자동적층설비를 통해 4일 정도로 줄였다”며 “야간작업이 가능해 제작 효율이 올랐다”고 했다.
공차(公差) 2mm 이내로 쌓아야 하는 철심적층작업은 바늘귀 맞추듯 예민하다. 공차란 도면에 정해진 수치와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나도 되는지 나타내는 범위다. 쉽게 말해 강판끼리 맞닿는 부위의 간격을 말한다. 양 상무는 “세계 유일 철심자동적층설비를 통해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공차(1mm 이내)로 관리한다”고 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이 설비를 국내 로봇 기업과 함께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철심에 순도 99.9999%의 구리선(권선)을 감아놓은 것을 중신이라 부른다. 예전엔 철심 1개씩 감던 권선작업을 이젠 크레인으로 2개에서 5개까지 한꺼번에 조립한다. 중신에 케이블과 절연물을 연결한 뒤 진공건조로에서 건조해서 외함(탱크)에 삽입한다. 방열기 등을 부착한 후 시험실에서 시험까지 마치면 모든 공정은 끝난다.
변압기를 옮길 땐 에어쿠션이라는 설비를 이용한다. 이날도 길이 12m, 높이 5.5m의 250t짜리 변압기를 에어쿠션이 떠받치고 있었다. 에어쿠션 하나가 400t 까지 들 수 있다.
공장 내부는 깨끗하다. 입자크기 0.5㎛ 이하의 미세먼지가 10만개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한다. 미국 연방 관리 규정인 클린룸 규정에 맞춘다. 양 상무는 “반도체 공장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한다”며 “외국 고객들이 자기가 사는 집보다 깨끗하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또 생산공장 곳곳에 설치된 키오스크와 태블릿PC, 바코드를 이용해 모든 작업자가 최신 3D(입체) 도면을 동일하게 확인하고 설비도 제어할 수 있다.
첨단설비로 가득 찬 이곳은 2018년 기존 공장 4곳 중 1곳을 철거하고 2020년 새로 지은 스마트공장이다. 이날 HD현대일렉트릭은 1977년 회사 설립 46년 만에 언론에 공장 내부를 공개했다.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부사장은 “2018~2019년 시장이 급속도로 침체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800억원을 들여 스마트공장을 준비했다”며 “품질 강화만이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장은 포화상태다. 양 상무는 “주문받아 출시하기까지 10개월 정도 걸리는데 요새는 공장에 생산물량이 꽉 차서 대기 시간까지 14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다. 총조립장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출용과 전남 해상풍력발전단지용 변압기들이 즐비했다. 나머지 3개 공장(300kV, 400kV, 800kV)까지 합치면 변압기 총 100여대를 동시 제작 중이다. 김 부사장은 “이 스마트공장 옆에 내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철심공장을 짓고 있다”며 “조립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905억원으로, 이미 전년 한 해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수주잔고는 올 3분기 기준 5조1571억원으로, 2년9개월 만에 2배 늘었다. 3~4년 납기 물량을 채웠다. 올해 들어서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네옴시티 변압기 2226억원어치(사우디 전력청 포함)를 수주했고 미국 엑셀에너지에서 2130억원, 덴마크 해상풍력기업 셈코 마리타임에서 790억원을 수주했다. 잇단 호재에 HD현대일렉트릭 주가도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17년 HD현대중공업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가 인적분할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했다. 전력기기, 배전기기, 회전기기 사업을 한다. 2019년 취임한 조석 사장은 기존 매출 중심의 외형 성장 전략을 과감히 버리고 선별수주 전략에 주력했다. 시장 침체에도 선제 투자에 나섰다. 2019년 미국 알라바마 변압기 생산공장 증설을 완료했고 2020년 울산 스마트공장 구축과 미국 애틀랜타 판매법인 설립을 마쳤다.
수익성 위주 수주전략은 글로벌 탄소중립 실현 기조가 강화하며 급물살을 탔다. 북미와 유럽 중심으로 신재생 발전 투자가 늘어나 시장 수요가 확대됐고 중동 대형 프로젝트도 활발해졌다.
조 사장은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생산공장을 둘러보며 생산·품질관리 현황을 직접 챙기며 임직원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 중동 시장을 넘어 새로 진출한 산업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해상풍력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단지 에너지관리시스템(CEMS)을 신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변압기 시장 호황이 내후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 부사장은 “2033년 장기공급계약을 제안하는 해외 고객사도 있다”며 “내년 매출 3조원, 2030년 5조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울산=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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