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뉴라이트, 너무 설쳐... 윤 대통령 정신 바짝 차려라"

박도 2023. 11. 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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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종찬 광복회장, 그가 강조한 '나라 정체성' 이야기

[박도 기자]

 이종찬 광복회장.
ⓒ 광복회 임소희
 
"지금 우리나라에는 뉴라이트들이 너무 설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 6일 '정치권, 특히 윤석열 정부를 향한 조언을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목소리를 높여 이와 같이 답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인생 멘토'로 알려진 원로 인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원로에게 묻고 답을 듣다'라는 취지로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나라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정부 당국의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영웅 흉상 철거 계획이 세상에 알려진 뒤 비판적인 목소리를 한층 더 냈던 그였다. 

내가 이종찬 광복회장과 인터뷰 한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시끄럽지 않은 적이 있겠느냐마는, 최근에는 우리의 '뿌리'를 갖고 동의하기 어려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영웅 흉상 철거 이야기부터 시작해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으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 홍범도 장군을 향한 '공산주의자 낙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논란이 일자 정부여당의 '뉴라이트 사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심지어 7일엔 여당 의원의 입에서 "대한민국은 출범할 때부터 공산전체주의와 싸워서 세워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우파 국가"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회장은 "요즘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면서 "이 나라의 정체성 정립만큼은 결코 그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을 향해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운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회장실에서 진행됐다. 아래는 이종찬 광복회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기사는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 구어체로 적었다. 

"자존심 잃은 국민들 많아지면 국운 쇠퇴"
 
 2021년 6월 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씨와 대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미수(米壽, 88세)입니다."

- 아흔을 앞둔 연세임에도 여전히 건강해 보이고 동안(童顔)입니다. 건강을 유지하신 비법은 무엇입니까?

"저는 매사에 낙관주의자입니다. 잠을 푹 자는 습관 그리고 집안 문제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탓인가 봅니다."

- 회장님을 만나기 전에 며칠간 당신의 회고록 <숲은 고요하지 않다>를 다시 읽었습니다. '자유인' '속박되지 않은 삶'으로 평생 살아오셨다고 말했는데, 격동기 근현대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살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비결을 말씀해주십시오. 

"아마도 평생 자유인으로 사셨던 우당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내 몸에 전해져 왔나 봅니다. 그분은 아나키스트로 평생을 자유주의자로 사셨습니다. '아나키스트'의 삶이란 극단적 자유주의자입니다."

- 제가 오늘 인터뷰를 하자고 한 주 목적은 한 작가 또는 시민기자로, 그리고 한 교육자로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살아온 원로로부터 실타래처럼 꼬인, 여러 현안문제 - 예를 들면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 남북관계의 악화, 나라의 정체성 문제 등을 타개할 방안에 대한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원로에게 묻고 답을 듣다'이지요. 이에 대한 평소 지론이나 그 방안을 우리 국민들에게, 그리고 정치권 특히 윤석열 정부에게 조언을 해 주십시오.

"우리 국민들은 매우 현명합니다. 교육 수준도 매우 높고요. 제가 주제넘게 훌륭한 국민들에게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듣고 배워야지요. 

다만 현 정부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뉴라이트들이 너무 설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은 우리 국군의 탄생을 '조선경비대'에 두고 있어요. 이는 해방 후 일본군 잔재들이 세운 겁니다. 그들의 주장은 우리 국군의 정체성에 심대한 상처를 주는 대단히 위험한 역사관입니다. 

우리나라 찬란한 반 만 년의 역사로 볼 때, 국군의 뿌리는 매우 깊습니다. 저 멀리 삼국시대 때 수나라, 당나라를 물리친 당시 군사들의 용맹무쌍한 역사로부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자랑스러운 역사, 그리고 근대 일제강점기 전후로 일제에 맞서 저항한 의병, 독립군, 광복군이 우리 국군의 뿌리입니다. 거기에 국군의 정체성을 둬야 할 것입니다.

서구의 다른 선진국에서는 자기 나라와 민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서 자그마한 역사적 사실도 신화나 전설을 만들어 자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자존심을 잃은 국민들이 사는 국가는 국운이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요즘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정체성 정립만큼은 결코 그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습니다. 나라의 정체성을 해치는 이들과 싸우다가 죽어도 좋다는 각오입니다. 윤 대통령이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신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마련이고,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새 정권이 기존의 나라 정체성까지 뒤흔드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통치 행위입니다. 

이미 쌓아놓은 나라의 기틀 위에 보다 더 좋은 국리민복의 정책을 시행할 때 나라가 더욱 융성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임 정권이 쌓아 놓은 그 바탕조차 뭉개면, 다음 정권도 또 그렇게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역사 발전이 아니라 역사 퇴행일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종찬 회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열기를 식히고자 당신의 어린 시절 상하이에서 살았던 옛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망국노'라고 놀림 받은 사연
 
 기자(사진 왼쪽)와 대담을 나누는 이종찬 광복회장(오른쪽).
ⓒ 광복회 임소희
 
- 제가 알기로는 회장님은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얘기를 간략히 들려주십시오.

"다들 어려운 때였습니다. 망국민의 설움을 겪어보지 못한 이는 상상이 안 될 겁니다. 중국인 아이들이 우리 임시정부 아이들을 보고 '망국노'라고 놀렸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을 패줬는데 그 부모가 찾아와 야단쳐도 저희 어머니는 그분들에게 쩔쩔매시며 사과만 하시고 밤이면 저를 안고 몰래 우시기만 하셨어요. 

또 양식이 없이 저녁을 짓지 못하자 중천에 떠오는 달을 보고 우당 할아버지는 퉁소를 부셨답니다. 당시 아버지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전차회사에서 검표원으로 일하셨지요."

- 그러고 보니 광복회장 취임 후 처음 만났습니다. 취임 이전과 이후의 소감을 간략히 말씀해주십시오.

"광복회는 독립운동 후손들이 만든 단체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멸문지화를 당한 집안이거든요. 광복 후에도 별반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제가 광복회장에 취임하고 보니까 컴퓨터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어요. 저의 경기고등학교 선후배 동문들의 도움으로 80여 대를 기증 받아 각 지부에까지 설치도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기고등학교 동문들에게 참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이런 열악한 형편에 제가 광복회장이 된 것은 선열님들의 뜻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 세대 위해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
 
 광복회장실에 게시된 백범 휘호 '양심건국' 휘호 액자 아래서 기념 촬영(오른쪽 이종찬 광복회장).
ⓒ 광복회 임소희
 
이종찬 광복회장이 그간 걸어온 발자국은 '정치'에 그 방점이 찍혀 있다. 88세의 나이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역할이 있을까? 

- 요즘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 말합니다. 100세를 넘기신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같은 분은 아직도 정정하셔서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이종찬 회장님도 능히 그리 하실 분 같습니다. 다시 나라와 겨레를 위해 정치 일선에서 봉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말씀 고마우나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다음 세대들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그러한 농부의 마음으로 여생을 살 작정입니다."

- 제가 미처 질문 드리지 못한, 평소 말씀하고 싶은 바를 마무리로 들려주십시오.

"저는 제가 뿌린 씨앗의 싹이라도 보고 죽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여생 후진을 양성하는데 여력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잖아요. 모든 걸 후진 양성에 쏟아부을 각오입니다. 프랑스의 드 골도, 일본의 요시다 쇼인도 훌륭한 인재를 길러 부국강병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모든 걸 접고 저도 그런 일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광복회관 정문 앞에는 "의병·독립군·광복군이 국군의 뿌리! 독립투사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라는 펼침 막이 걸려 있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그 펼침막을 바라보자 마치 조금 전에 만난 독립운동가 종손 이종찬 광복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원도 원주 내 글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내내 그분의 여생이 평안하길 두 손 모아 빌었다.
 
 서울 여의도 광복회 앞의 펼침막.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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