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인가" 문재인·윤석열 정부는 왜 다른 판단 했나 [소셜 코리아]

김윤희 2023. 11. 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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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북송·납북 어부 문제, 편 가르기가 드러낸 분단의 모순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김윤희]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2022년 7월 12일 공개했다.
ⓒ 통일부 제공
한반도에 사는 민(民)은 분단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어느 쪽 사람인가'를 판정받아야 한다. 남과 북은 단일민족임에도 민족국가 건설을 완수하지 못한 분단의 결과로써, 반쪽짜리 국가가 결여하고 있는 정당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를 만드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제거, 즉 상대방을 부정함으로써 비로소 성립되는 배타적인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분단체제 민의 숙명이다.

2019년 11월 북한 어민 두 명이 오징어잡이 배에서 16명을 살해하고 도주하던 중 우리 해군에 체포되어 강제 북송되는 사건이 있었다. 공론장은 들끓었다. 흉악범을 귀순자로 받아야 하느냐, "흉악범을 내보냈으니 잘한 일이다"라는 찬성 여론과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국내법에 따라 처리해야 하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여론이 맞섰다.

북송 어부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그에서 비롯되는 영토주권, 사법권 행사 문제가 핵심이다. 2011년 대법원에서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을 두고 있는 이상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효력이 미치므로 북한 지역도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고, 북한 주민 역시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 포함"된다고 판결한 사례(2011두24675)가 있기는 하다.

북송 어부 사건은 윤석열 정부 들어 재조명되면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2022년 7월 18일 통일부는 북한 군인들의 손에 잡혀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북송 어부의 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전 정권의 이른바 '반인권적 행태'를 부각하고자 했다. 당시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영상에 보이는 탈북 어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포승줄에 묶여 형장으로 향하는 수인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떠밀려 걷고 있었다"라고 했다.

북송 어부 사건을 놓고 인권의 수호자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을 향해 다른 한쪽에서는 '정작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귀환한 납북 어부들에게 가한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볼 때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의 당사자이며 방관자이기도 했던 정치권이 아니었던가.

납북 어부들은 국가 권력기관에 감금되어 고문을 받아야 했고, 그중 1300여 명은 반공법, 수산업법 등으로 형사 처벌된 것은 물론, 일부는 간첩으로 조작되기까지 했다. 납북 어부들과 그 가족들은 주변의 냉대와 외면 속에 취업과 진학의 제한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

납북 어부 문제는 수십 년이 지난 2009년에 이르러서야 진실화해위원회의 직권조사로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6·25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남한의 3600명이 납북되었다. 어선 장비 고장 등으로 월선되어 납북된 경우도 있지만 북한 경비정이 남한 영해에 내려와 납치해 간 예도 있다.

북송 어부와 납북 어부 문제는 민을 이데올로기 틀 속에 가두고 편 가르기로 '잠재적 적'을 설정하고 자기 쪽의 국민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그들의 생명을 보장하지 않는 분단체제 폭력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남북의 국민·공민 만들기 프로젝트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북한 선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을 중심으로 한 남북한의 줄다리기는 해방 직후와 6·25전쟁 시기 접경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해방은 분단으로 이어졌다. 개성, 강령 일대 주민들은 이승만 정권에서 내준 도민증과 북한 정권에서 공민증 대신 내준 임시증명서를 모두 가지고 있어 선을 넘어오면 이남 국민이요, 넘어가면 이북 공민인 셈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이 남으로 진격해 내려왔다. 경기도 연천군 대지주의 아들 조모씨는 인민군대에 의해 마을의 자위대장이 되었다. 자위대장으로 선발한 것은 전쟁 전 북녘땅에서 벌어지는 토지개혁과 지주 숙청의 회오리바람에 부친이 지레 겁을 먹고 토지를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자발적 중농이 된 전력 때문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이 북진하면서 마을은 다시 국군의 치하에 들어갔다. 국군은 조씨의 자위대장 완장을 떼버리고 치안대장 완장을 달아주었다. '지주의 아들'이라는 계급 성분이 치안대장 선발 이유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중 조씨의 마을은 1951년 다시 북한 체제에 편입되었다. 이른바 미수복지대가 된 것이다. 이승만 치하에서 국군에 입대했던 조씨의 처남은 개성 근방에서 인민군과 전투를 하다가 고향이 북한에 편입되었다는 소식에 농사꾼 차림으로 야반도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숨어 지내는 동안 국군의 '강제 복귀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군 도피자는 전시법에 따라 총살될 수 있었다.

조씨는 처남을 배에 태워 일본으로 빼돌렸다. 이처럼 조씨 가족은 남북한 권력에 의해 국민·공민으로 이중 호명됐다. 유엔군에 의해 북중 국경 지역까지 밀렸던 인민군이 재진격하면서 국군 부역자들을 처벌한다는 포고령이 내려졌다.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조씨는 아내와 두 자식을 남겨두고 월남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월남자들을 향해 "우리는 북한서 온 형제자매를 구호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지난 5년간 학정에서 신음한 북한 동포를 구하고자 하던 그 애타던 심정을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줄 시기가 왔다는 것을 국민 일반이 깊이 인식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동아일보> 1950년 12월 16일)라는 환영의 메시지를 냈다. 권력의 관점에서 월남이나 월북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상대 체제를 향한 일종의 전향이었으므로 월남자, 월북자는 권력으로부터 우대와 환영을 받는 이유가 된다.

북한은 1955년 4월 12일 내각결정 제40호 '미제와 리승만 통치를 반대하는 남반부 청년 학생들을 보호할 데 관하여'를 통해 "월북하면 신변 안전과 활동의 자유 보장, 희망과 능력에 따라 국비로 교육 및 외국 유학도 보장, 학업에 안착할 때까지 생활필수품 무상 공급 및 매월 1000~1500원의 장학금 지원, 언제든지 고향에 돌아갈 것을 희망한다면 허용하고 방조할 것이다" 등의 조건을 공표함으로써 남한 청년들의 월북을 적극 유도했다.

이처럼 민중은 여전히 강한 민족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국민 정체성은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한 명의 민이라도 더 쟁취하기 위한 분단 권력의 노력은 끈질겼다. 체제 경쟁이 막을 내린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남과 북은 여전히 반쪽짜리 국가로서 상대 쪽의 민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16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북한 군인과 주민들을 향해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것이고,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권장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뉴스를 접한 중국 연변지역 조선족들은 "판문점을 열어놓고 남한에 오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중국으로 넘어오란 말이 아닌가"라고 분단국가 대통령의 한계를 꼬집었다.

남북한 두 정권은 탄생부터 근대국가의 국민적 정체성과 한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했다. 그것이 곧 국가의 완성이었다. 북송 어부 사건을 놓고 해석이 다른 문재인·윤석열 정부 간의 정치적 목적이나 정파적 이익 문제에 앞서 이 사건은 분단체제 모순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우리 앞에 그 모순을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김윤희 /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위원
ⓒ 김윤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윤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요 논문으로 <영생하는 수령과 그리움의 정치>(2016), <북한에서 '임수경 열광'과 도전받은 집단주의>(2022), <분단 가족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미수복지역 조할머니의 3대(三大)에 걸친 분단가족 형성사>(2022) 등이 있고, 공저로 <한반도시민론>(2022)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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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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