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물가에 꺼내는 ‘MB 카드’…민심 잡기 ‘총력전’ [尹정부 민생현안]
민생경제 팍팍…밥상 물가 3년째 5%대
‘MB식’ 물가관리 TF 가동…실효성 의문
정부가 11년 만에 ‘MB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12년 MB정부 당시 서민 물가에 직결되는 품목에 대해 담당 공무원을 지정한 뒤 물가를 관리한 적 있는 데, 이 방식을 다시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잡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실효성이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가 5% 이상 상승했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먹거리 물가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5%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10월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 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올랐다. 올해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누계비 기준 6월까지 5% 이상을 유지했으나 7∼9월 4.9%로 내려온 뒤 지난달 다시 올랐다. 이는 2009∼2011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대부분 먹거리 품목이 지난달 기준 전방위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사과 오름세가 컸다. 지난 10월 사과 가격은 전년 대비 72.4% 올랐다. 복숭아(47.0%), 귤(16.2%) 등 많은 품목에서 증가율이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관측 11월호 과일’, ‘농업관측 11월호 과채’ 보고서를 통해 이달 사과(후지·상품) 도매가격이 10㎏에 5만∼5만4000원으로, 1년 전(2만7800원)보다 79.9∼94.2% 올라 두 배 수준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여름철 잦은 비 등 기상 이변으로 올해 과일 작황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품목별로 보면 올해 1∼10월 생강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7.0% 올랐다. 당근(33.8%)·양파(21.5%) 등 채소류와 드레싱(29.5%)·잼(23.9%)·치즈(23.1%) 등 가공식품도 20% 넘게 상승했다.
가공식품은 절반 이상이 올랐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가공식품 32개 품목 가운데 24개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크게 비싸졌다.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품목도 13개나 됐다. 가격이 오른 품목의 평균 상승률은 15.3%였다.
품목별로 보면 햄 10g당 가격이 1년 전보다 37.7%나 올라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케첩(100g·36.5%), 된장(100g·29.6%), 간장(100㎖·28.6%), 참기름(10㎖·27.8%), 카레(10g·25.4%), 마요네즈(100g·24.1%) 등도 큰 폭으로 올랐다.
이런 고물가 추세에 정부도 서민을 위협하는 밥상물가 잡기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일 7개 주요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리 대상은 서민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라면과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등이다.
특히 국제가격이 작년보다 35% 오른 설탕과 원유(原乳) 가격 인상 여파로 가격이 상승한 우유까지 포함해 모두 7가지 품목이다. 사실상 가격 통제 중심의 물가 관리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같은 방식은 11년 전 이명박(MB) 정부 시절 정책과 비슷하다. 2012년 당시 정부는 ‘물가안정 책임제’를 시행하면서 1급 공무원에게 서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품목의 물가 관리를 책임지도록 했다. 당시 농식품부 먹거리 물가 관리 대상은 쌀, 배추, 고추, 마늘, 양파,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가공식품이었다.
10여년 전 대책을 꺼내든 물가 당국의 절박함이 보인다. 이같은 방식은 11년 전 이명박(MB) 정부 시절 정책과 비슷하다. 2012년 당시 정부는 ‘물가안정 책임제’를 시행하면서 1급 공무원에게 서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품목의 물가 관리를 책임지도록 했다.
‘MB 물가지수 귀환’이라는 평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모든 부처가 물가안정을 위해 총력을 다한다는 취지는 동일하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식에는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MB 정부 당시 행정부 차원에서 52개 관리품목을 선정하고 품목별 담당자도 함께 지정했으나 현 정부는 물가 상황에 맞춰 부처가 품목과 담당자 등도 자율적으로 선정·운영하기 때문이라고 기획재정부는 설명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일 “각 부처 차관이 담당 품목을 맡아 물가 안정을 책임지라”고 했다. 다음 날인 3일에는 “매주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겠다”며 물가 관리 고삐를 쥐었다. 그러면서 주요 식품 담당자를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시장경제를 강조 해왔던 정부 경제 정책 방향과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경호 부총리는 작년 5월 시장 친화적 물가 관리 원칙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당시 물가상승률은 5.4%를 기록했다.
농식품부가 앞으로 계획한 일정도 많다. ‘현장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물가 잡기에 나서지만 업계에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인위적인 가격통제와 인상 시기를 뒤로 늦추는 압박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인진단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물가 잡기에 나선 정부가 물가 오름세를 낮추기 위해선 원자재 가격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발표한 뒤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설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가만히 앉아있기 어려우니 현장점검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은 방식은 물가 상승을 자제하는 부분에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자유 시장 경제를 이해 못하는 것 같다”며 “실효성이 없는 정책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압박하는 행태는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고”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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