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낙점까지 고심의 33일… 임기 못 채울 조희대 고른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조희대 전 대법관(66·사법연수원 13기)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균용 전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이 민주당 주도로 부결된 지 33일 만이다.
이 전 후보자 카드가 불발로 돌아간 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퇴임으로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했고, 10일 임기가 만료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마저 퇴임하면 사법부 양대 수장이 모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최대한 빨리, 그리고 최대한 안전한 후보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했다.
이처럼 새 후보자 인선에 까다로운 조건이 붙으면서 대통령실에서 '엄선'한 인물들이 대법원장 후보자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65·14기), 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59·18기), 오석준 대법관(61·19기), 김형두 헌법재판관(58·19기) 등이 조희대 전 대법관과 함께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처음부터 까다롭게 고른 만큼 '능력과 그릇'에서 함량미달인 사람은 없었고, 저마다의 강점과 특징이 달랐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법원에서 손꼽히는 IT 및 리걸테크 전문가이다. 홍승면 부장판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선임재판연구관, 수석재판연구관을 모두 지냈을 만큼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했다. 오석준 대법관은 대법원 공보관을 두 차례나 맡았을 정도로 친화력이 좋고 대인관계와 소통에 능하다.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 중 법원 내부 인기가 가장 좋다. 김형두 재판관은 법이론 최고 전문가이며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덕분에 법원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후보자보다 높다.
이 전 후보자가 처가 회사의 비상장주식 미신고 의혹에 휩싸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만큼, 대통령실은 각 후보자의 적격성을 따지면서 재산 상황에 특히 큰 비중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 후보 중 한 명은 법조인 자체로서는 결격 사유가 없었으나 본가와 처가가 원래 부유한 점 때문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전해졌다.
다른 후보 한 명은 앞서 이 전 후보자가 지명되기 전 한 차례 고사했다가 이번에 인사 검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후보자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모 기업과 가깝다는 평가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한 명은 자천보다 타천이 대통령실에 많이 들어갔는데, 이런 좋은 상황에서도 과거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했다는 점을 대통령실이 부정적으로 보는 바람에 최종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김명수 대법원 체제를 뒤집고 바로잡기엔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앞서 이균용 후보자 결정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김명수 대법원과 대척점에 선 사람, ‘김명수 코트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선정 기준이었다는 게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서 나오는 공통된 이야기다.
대통령실에서 이런 스크리닝을 진행하는 동안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유력자로 거론되는 이름이 매일 바뀌었다. 통상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후보자를 낙점하면 법원행정처에는 어느 정도 정보가 알려진다. 낙점된 당사자가 발표 전에 비공식적 또는 간접적으로 법원행정처에 "인사청문회를 도와줄 준비를 해달라"고 슬쩍 언질을 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법원행정처 고위관계자들도 발표 전날인 7일 밤까지 누가 낙점되고 언제 발표될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는 이균용 후보자 지명 때도 마찬가지로, 법원행정처 주변에선 이균용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발표 전날 밤까지 후보군으로도 거론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막판까지 조 전 대법관과 더불어 가장 유력했던 인물이 김형두 헌법재판관이다. 그는 지난 3월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이후 4월부터 참여한 헌재 평의와 결정에서 보수적인 별개의견을 적극적으로 내 윤 대통령이 눈여겨보게 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재판관이 과거 진보적 판결을 많이 했다"며 유력자로 거론되는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한 것을 기억하는 전·현직 검사들이 그랬다. 그는 경쟁 후보자에게 2억원의 뒷돈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된 곽 전 교육감의 유죄를 인정하고도 징역형 대신 벌금 3000만원을 선고하며 석방, 교육감직을 유지하도록 했다. 당시 당연히 실형 선고를 예상했던 검찰은 그에게 호되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 윤석열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수2과장이었다. 주진우 법률비서관 등 현재 용산 대통령실에 나가 있는 검사들도 이 일을 기억 못 할 리가 없기 때문에 그가 지명될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검찰 안팎에서 나왔다.
결국 윤 대통령은 조 전 대법관을 선택했다. 조 후보자는 보수 성향 원칙론자로 분류된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의 지형이 진보로 기울었을 때 소수의견을 많이 내서 ‘미스터 소수의견’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만 그가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북고, 서울대 법대 동문이라는 점이 윤 대통령을 끝까지 고민하게 했다고 한다. 양대 사법부 수장이 모두 TK 엘리트를 상징하는 경북고에 서울법대 출신이면 내년 총선에 여권의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66세인 조 후보자는 대법원장이 되면 70세 정년 때문에 6년 임기를 절반 남짓 채우고 2027년 6월 정년 퇴임한다. 그해 3월 대통령 선거가 있고, 두 달 뒤인 5월 윤 대통령이 퇴임하는 만큼 차기 대법원장은 신임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는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주당으로선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곧바로 원하는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할 수 있고, 이는 조 후보자 임명에 동의할 숨은 명분이 된다.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에게도 조 후보자는 임명동의안 처리 부담이 덜한 인물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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