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찬송가 부른 공수처장…"1기는 文정부 게슈타포, 2기는 尹수처?" [미완성 공수처 下]
[미완성 공수처 下]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지난 1월 2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시무식.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김진욱 처장은 신년사 말미에 기독교 복음성가
「선한 능력으로」
를 부르다 눈물을 흘렸다. 장면을 목격한 공수처 직원들에게선 “충격적이었다”는 증언이 나왔고 불교계와 여당의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김 처장은 “공직자이자 수사기관장으로서 특정 종교 편향적인 언행은 부적절했다”며 사과했다.
이 사건은 꾸준히 제기됐던 공수처의 ‘리더십 리스크’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로 남았다. 본지가 만난 전·현직 공수처 직원들은 대부분 수사 성과 부진과 리더십 부재를 연관지었다.
리더십 균열이 부른 절차시비·통신조회 논란
‘사건사무규칙 논란’은 지휘부의 조급함이 조직에 부담을 준 대표적 사례다. 전직 공수처 관계자에 따르면, 공수처 지휘부는 2020년 공수처설립준비단이 마련해 둔 400여개 조문의 사건사무규칙 초안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300여개 조문으로 구성된 검찰 사건사무규칙 등을 준용한 것이었지만 지휘부는 “검찰 출신들이 사건사무규칙을 깐깐하게 만들어 공수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려고 한다”는 사견을 표출했다.
대신 지휘부는 “지금은 빨리 어떤 수사든 착수해야 하고 조문을 일일이 살펴볼 시간이 없으니 대폭 줄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일부 검찰 출신들은 “이 규칙을 없애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 말렸지만 몇 번의 토론 끝에 초안은 폐기됐고, 현행 43개 조항만이 남게 됐다.
사건사무규칙 간소화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고발사주 의혹 수사 당시인 2021년 9월 공수처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김 의원이 이의를 제기하자 법원은 공수처에 내준 압수수색 영장을 취소했다. 전직 공수처 부장검사는 “주요 국면마다 저지른 절차상 하자는 ‘편파 수사’ 같은 불필요한 프레임을 뒤집어 쓰는 빌미가 됐다”고 말했다.
경험 부재로 인한 난맥상은 2021년 4월 완료된 1차 인선 때부터 예견됐다. 부장검사 2명과 평검사 11명으로 짜여진 1기 검사진은 공수처법에 규정된 검사 정원(처·차장 포함 25명)의 절반에 불과했다. 수사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은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뿐이었다. 나머지 자리는 판사 출신인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을 포함해 변호사, 공무원, 공공기관 출신들로 채워졌다.
수사 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 처·차장과 검찰 출신 공수처 검사들 간 균열은 수사력 논란으로 이어졌다. 기자 100여명과 국민의힘 의원 90여명에 대한 ‘무차별 통신조회’ 논란도 지휘부의 무리수가 낳은 결과였다. 전 공수처 관계자는 “‘대화 내용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무리한 수사를 하냐’는 부장검사와 ‘검찰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는 차장의 대립이 심했다”고 기억했다. 공수처는 “적법한 수사”라고 항변했지만, 조회 대상자를 선별치 않고 수사범위 밖의 민간인까지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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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 인력에 협소한 수사·기소 범위
리더십 부재가 수시로 도마에 오르는 탓에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지만 실력 논란은 공수처법의 구조적 한계와도 선명한 인과관계가 있다. “수사 가능한 범죄가 29개뿐이다” “검사 임기 3년으론 신분 보장이 어렵다” “행정 인력이 20명으로 제한돼 정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김 처장의 토로(지난달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는 출범 전부터 경·검의 수사 전문가들이 내놓던 우려와 거의 같다. 익명을 원한 국회 법사위원은 “현재 공수처의 안쓰러운 성적표는 2019년 4월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으로 ‘날치기 통과’ 시켰을 때부터 예고된 결과”라고 짚었다.
김 처장의 말대로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로 한정된 협소한 수사 범위는 큰 족쇄다. 공수처 관계자는 “공직자 뇌물의 경우 ‘단골 공여자’인 기업인의 다른 범죄를 수사하다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법상 이들을 공수처에 불러 진술하게 할 근거가 없다”며 “검찰이 불렀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청탁금지법·이해충돌방지법·증거인멸 등 공직자 범죄도 공수처가 수사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검·경에 있는 범죄정보수집 기능이 없어 공직자 비리를 독자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수사범위의 한계와 맞물려 공수처의 활동 반경을 비좁게 만든 큰 이유였다.
그 결과 공수처는 “애초부터 수사하기 힘든 고소·고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황”(더불어민주당 관계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공수처에 3년간 접수된 사건 7304건 중 고소·고발·진정 등은 무려 6598건(90%)을 차지했다. 김 처장은 이같은 상황을 “국민들이 판·검사를 상대로 자신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사건이 많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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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1.5년 근무…김진욱 처장 “분위기 달라졌다”
인적·제도적 한계가 겹치면서 공수처는 인력 이탈→성과 논란→추가 인력 이탈의 악순환에 빠져있다. 출범 이후 지난 9월까지 검사와 수사관 각 11명이 사표를 냈고, 본래 임기 3년(연임 3회 가능)인 공수처 검사의 평균 재직 기간이 1년 6개월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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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들어간 與 폐지론…2기는 尹수처?
8일 2대 공수처장을 인선하기 위한 공수처장후보추천위가 위촉식에 이어 첫 회의를 열었다. 첫 회의에선 초대 처장 인선 때와는 달리 위원 1명당 추천 가능한 후보자를 5명에서 3명으로 줄이고, 해당 후보를 추천한 위원이 누구인지는 대외비에 부친다는 새로운 룰에 합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수사 역량과 정치적 중립성이 차기 공수처장의 필수 요건”이라는 인사말을 건넸지만 추천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야가 각 2인씩 지명한 추천위원들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공수처 폐지론자이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반대했던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정교모)’ 사무총장 이호선 국민대 교수와 공수처 초대 수사자문단장이었던 검사장 출신 박윤해 변호사를,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인권국장·법무실장을 지낸 이상갑 변호사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장을 맡았던 정한중 한국외대 교수를 추천위원으로 선정했다. 추천위는 여기에 당연직인 법무부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을 포함해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법조계에선 벌써 “공수처는 결국 ‘尹수처’가 될 것”(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이라는 전망이 공공연히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추천할 최종 후보 2인을 결정하기 위해선 추천위원 7인 중 5인의 동의가 필요한데 결국 여당이 다수를 점하기 쉬운 구조라서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연직인) 법원행정처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민주당 선정 추천위원이 제시한 후보에 동의해도 결국 ‘5인 동의’ 요건을 채울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2020년 공수처법 입법 과정에서 야당 반발을 약화시키기 위해 처음엔 후보 추천 요건을 ‘7인 중 6인의 동의’로 정했지만 후보 추천의 걸림돌로 작용하자 법을 재개정해 ‘여권 우위’의 구조를 만들었다.
공수처 출범 전후 “문재인 정부의 게슈타포(옛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로 전락할 것”이라던 국민의힘은 ‘언제 그랬냐’는 분위기다. 여당 법사위 관계자는 “여전히 공수처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갖고 있지만, 예전처럼 폐지보다는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이번 정부도 2기 공수처 수뇌부를 ‘내 편’으로 채우려 할 것”이라며 “결국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칼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허정원·박현준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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