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도 '광탈' 당했다"…저출산인데 유치원 입학전쟁 왜
3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배모씨는 지난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열린 입학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클(빠른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 전쟁을 치렀다. 예약 첫 날 오전부터 신청자가 몰려서다. 급기야 유치원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결국 전화로 사정을 설명해 겨우 설명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배씨는 “인근에 있는 유치원이 폐원하면서 남아있는 유치원은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번 달부터 전국 8500여개 유치원이 만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2024학년도 원아를 모집한다. 저소득층, 국가보훈대상자, 다자녀 등이 지원하는 우선선발 전형은 8일 완료됐고 15일부터 일반 전형이 시작된다.
“쌍둥이도 광탈, 저출산 국가 맞냐”
2019년부터 유치원 입학 전산 포털인 '처음학교로'가 도입되면서 입학 추첨을 위해 학부모가 유치원 앞에 줄을 서던 풍경은 사라졌다. 하지만, 유치원 입학 전쟁을 치러본 학부모들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유치원 입학은 왜 이리 어렵냐”고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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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만한 유치원 드물고, 신설은 가뭄에 콩 나듯
유치원 입학이 어려운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국적으로는 저출산으로 폐원이나 휴원하는 유치원이 많아진 반면 신설 유치원은 드물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5년간 전국에서 폐·휴원된 유치원은 2308곳인데, 같은 기간 신설된 유치원은 601곳에 불과하다. 문 닫는 유치원이 늘어 거주지와 가까운 유치원은 줄고, 일부 유치원으로 더 많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경기 등 도시 지역은 쏠림 현상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근거리 배정하는 초등학교와 달리 유치원은 학부모의 선호에 따라 지원자가 일부 유치원에 몰릴 수 밖에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도권의 경우 취원 대상 유아 수와 어린이집, 유치원 정원을 비교하면 대부분 수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유치원으로 몰리다보니 입학이 어려워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공립 병설 유치원은 미달이 나 휴원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은 설립 주체에 따라 국·공립과 사립으로, 유형에 따라 병설과 단설로 나뉜다. 지역에서 명문으로 입소문이 난 사립 유치원, 학비가 들지 않으면서도 시설이 좋은 국·공립 단설유치원의 인기가 높다. 반면 초등학교에 붙어 있는 병설 유치원은 초등학교와 함께 방학을 실시하는 이유 등으로 선호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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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등록금은 계속 오르는 중
유아 학부모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입학을 통제하는 초중고교와 달리, 사립유치원은 입학 자격도 제각각이다. 서울 성북구에서 만3세 자녀를 키우는 김모씨는 “대여섯 군데 설명회를 다녀보니 어느 유치원은 다자녀나 원아 형제를 우선 선발하는데 다른 곳은 근거리 거주 기준을 조건으로 제시하더라”며 “어떤 곳은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오늘 원서를 내면 바로 입학 확정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해서 혼란스럽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유치원비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교육부는 6일 내년 원비 인상 상한선을 3.8%라고 발표했다. 2022학년도보다 2.8%포인트 올랐다. 교육부는 최근 3년 물가상승률의 평균만큼 유치원비를 올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치원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사립유치원비는 월 60만~80만원 선에서 책정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쌍둥이 워킹맘 김모씨는 “유치원 학비는 어린이집보다 최소 2배 이상인 데다가, 두 아이가 각각 다른 유치원에 합격하면 하원도우미를 한 명 더 구해야 해서 합격해도 걱정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입학 전쟁 완화하려면…공립 수준 '상향평준화' 해야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사립 유치원 역사는 120년이다.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교육 노하우는 쌓여온 반면 시설은 노후화 된 곳이 많다. 공립 역시 병설의 경우 초등학교와 함께 지어져 오래된 건물이 많다. 전폭적인 시설 개선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유치원의 약 40%가 사립이라 지원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2017년 사립유치원에 공립 수준의 재정 지원을 하겠다며 ‘공영형 사립유치원’ 제도를 도입했지만, 현재까지 4곳밖에 설치되지 않았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공영형 사립유치원으로 전환하려면 폐원 시 사립유치원 건물 등의 재산이 국가로 귀속되는 법인화를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대부분 사립이 전환을 꺼린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1인당 유아 학비 인상 등을 국회에 요청 중이지만, 예산 심의를 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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