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섬보이 왔다" 환호한 중국…'신중한 거북이' 호주총리 전략

전수진 2023. 11.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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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앨버니지(오른쪽) 호주 총리가 지난 7일 방중 일정 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의 왼쪽에 있는 인물은 그의 중국계 외교부 장관 페니 웡. EPA=연합뉴스


지난 7일 중국의 소셜미디어에 "호주에서 핸섬 보이가 왔다"는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5일부터 방중 일정을 소화 중인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샹하이 강변에서 조깅을 하는 사진이다. 중국 리창(李强) 총리는 7일 앨버니지 총리와 만나 환담하며 "중국인들이 당신을 이렇게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단교 가능성까지 거론됐던 중국과 호주 간의 관계를 고려하면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이 드라마의 주연은 앨버니지 총리다.

그는 2016년 이후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호주 총리다. 그의 전임자인 스콧 모리슨 총리는 중국과 각을 세우고 선명한 친미 노선을 걸었다. 중국은 고율 관세 등 경제 보복을 하며 양국 관계는 바닥을 쳤다. 그러나 모리슨 총리의 자유당에서 지난해 5월 정권을 탈환한 노동당의 앨버니지 총리는 180도 다른 노선을 택했다. 신호는 중국이 먼저 보냈다. 앨버니지의 취임 직후 중국이 석탄 등 일부 품목의 관세를 폐지한 것. 앨버니지 총리는 이에 화해의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고, 중국도 적극 화답했다. 리 총리의 "핸섬 보이" 발언 하루 전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과 호주는 올바른 개선과 발전의 길로 들어섰다"며 "가슴이 벅차다"라고 발언했다. 연례 정상회의도 복원됐다.

지난 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환대를 받는 호주 앨버니지 총리. 신화=연합뉴스


앨버니지 총리의 태도는 그러나 친중보다는 용중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가디언 등 서구 언론은 그의 행보를 경제 관계 개선을 위한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안보에 있어선 미국과 잡은 손을 놓지 않되,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복원해 국익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안미경중,' 즉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을 취한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적으로 중국과 관계를 중시한 노동당 소속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중국과 호주는 1973년 수교했는데, 당시 고프 휘틀럼 노동당 소속 총리가 방중하면서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중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6일 앨버니지 총리를 만나 "중국에선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며 "(중국과 호주 관계를 위한) 우물을 파준 휘틀럼 총리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중국 베이징의 천단 공원을 방문한 사진. EPA=연합뉴스


앨버니지 총리의 중국과의 관계 복원은 이런 점에서, 노동당의 맥을 잇는 동시에 지난 정권과의 차별화 및 그 자신의 리더십을 부각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국내에선 존재감이 강하지 않은 편이지만 호주에선 오랜 기간 일선 현실 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거물이다. 신중한 거북이 스타일의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올해 60세인 그는 시드니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10대 시절부터 노동당 일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학 졸업 후 보좌관 등으로 일하다 실제로 의석에 앉은 건 33세였고,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는 더디게 찾아왔다. 노동당 소속 케빈 러드 총리 등이 대개 의회 입성 후 10여 년만에 총리직에 올랐지만 앨버니지에겐 두 배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앨버니지 총리가 2016년, 의회 입성 20년을 기념한 행사에서 "나는 인내심이 장점"이라고 연설한 이유다.

그가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전망은 그러나 밝지만은 않다. 중국의 태도 변화 가능성이 상수로 존재하는 데다, 미국과의 관계 역시 호주엔 핵심적 요소인 터라 갈등 역시 상존한다. 이코노미스트가 7일(현지시간) 앨버니지 총리 방중 기사에서 호주의 상징인 캥거루가 아슬아슬 외줄 타기 하는 삽화를 곁들인 이유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과 호주의 해빙기는 짧을 수 있다"고 짚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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