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당 20주년, 연광철의 한국 가곡 음반으로 기념

장지영 2023. 11. 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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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 ‘그대 있음에’ 등 18곡 수록한 ‘고향의 봄’ 발매…200명 후원
박종호 대표 “한국인의 영혼 담은 한국 가곡은 예술적 수준 높아”
클래식 전문 음반 매장으로 출발한 풍월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왼쪽)의 한국 가곡 음반을 제작했다. 오른쪽은 박종호 풍월당 대표. 피알엠(PRM) 제공

한국 클래식계에서 ‘풍월당’은 특별한 존재다. 정신과 의사이자 오페라 평론가로 활동하던 박종호(63)가 2003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 설립한 풍월당은 국내 최대 클래식 음반 매장이자 음악 감상실 그리고 클래식 전문 출판사다. 레코드 가게가 잇따라 문을 닫고 CD라는 매체가 음원으로 바뀔 즈음 박 대표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반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풍월당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풍월당은 음반 판매 외에 음악 강의와 아티스트들의 쇼케이스 때로는 작은 음악회를 열며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방으로도 자리 잡았다.

풍월당이 올해 20주년을 맞아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을 제작했다. 지난 3일 발매된 음반은 풍월당 최초의 자체 제작 음반으로 세계적인 성악가 베이스 연광철과 신박 듀오의 피아니스트 신미정이 녹음에 참여했다. 음반에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에 발표된 한국 가곡 중 ‘고향의 봄’ ‘비목’ ‘청산에 살리라’ ‘내 마음’ ‘그대 있음에’ 등 대표적인 명곡과 작곡가 김택수가 시인 나희덕, 황경민과 만든 신작 가곡 ‘산속에서’ ‘산복도로’ 등 총 18곡이 수록됐다. 한국어와 함께 영어, 일어, 독일어 3개 언어로 번역한 가사집이 함께 제공된다. 오는 12월 3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를 개최한다.

풍월당 개관 20주년을 맞아 발매된 한국 가곡 앨범 ‘고향의 봄’에는 베이스 연광철(왼쪽)과 피아니스트 신미정이 참여했다. 피알엠(PRM) 제공

박 대표는 음반 발매와 함께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한국에서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이 나오면서 ‘K-클래식’이란 말을 쓰곤 한다. 하지만 한국적 정체성 없이 서양 음악을 그대로 하는 것에 ‘K’를 붙이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한국 시에 선율을 붙인 한국 가곡은 한국인의 영혼이 담겨 있는 음악으로 예술적 수준 역시 뛰어나다. 우리의 음악을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음반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풍월당이 2년 전부터 준비한 이번 음반은 도중에 엎어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세계적인 음반 회사와 논의를 시작했지만, 한국 가곡 음반 판매량을 고려할 때 제작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풍월당은 회원 200여 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직접 음반 제작에 나섰다. 지난달 작고한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도 자기 작품으로 앨범 표지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줬다. 표지 디자인에 쓰인 작품은 ‘묘법 No.980308’이다. 박 대표는 “박서보 화백의 아들이 풍월당의 오랜 고객이라 이번 음반의 표지 디자인 이야기를 드렸다. 그리고 박서보 화백도 흔쾌히 좋다고 하셔서 녹음 중인 앨범을 미리 들어보신 뒤 그림을 주셨다”고 전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연광철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 기자간담회에서 베이스 연광철, 피아니스트 신미정, 박종호 풍월당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피알엠(PRM) 제공

이번 음반은 베이스 연광철의 첫 한국 가곡 음반이기도 하다. 30년 가까이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연광철(58)은 “30년 동안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그들의 음악을 해석하고 노래해 왔는데, 이번에 한국 가곡을 부르면서 온전히 내 음악을 한다는 느낌이었다”면서 “13세 때까지 전기도 나오지 않는 시골길을 다니면서 느꼈던 정취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절로 생각났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이번 음반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 등 기본이 되는 곡들로 선정했는데, 기회가 되면 아쉽게도 빠졌던 곡들로 다시 앨범을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2018년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캄머쟁어’(Kammersaenger·궁정가수) 호칭을 받기도 한 그는 오페라 외에 독일 가곡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독일어 발음이나 뉘앙스를 독일인보다 더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그는 “관사가 있는 서양 언어는 뒤쪽에 음악의 강세가 있지만, 한국어는 앞 음절에 강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양식으로 뒤 음절에 강세를 둔 한국 노래가 많은데, 이런 노래는 어색하게 들린다”면서 “우리나라 말은 굉장히 노래하기 좋은 언어다. 열린 모음이 많아서 서양을 비롯해 모든 언어를 발음할 수 있다. 작곡가들이 음성학적으로 좀 더 공부하면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예술적인 가곡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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