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그 많은 텀블러는 어쩌나

김나래 2023. 11. 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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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주변에서 텀블러를 작은 선물로 건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여러 번 받아도 텀블러는 늘 반갑다.

마트나 쇼핑을 갈 때 장바구니나 에코백을 미리 챙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일회용품 규제 교육을 한다며 초등학생부터 중고생까지 10대들 또한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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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래 사회부장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텀블러를 작은 선물로 건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여러 번 받아도 텀블러는 늘 반갑다. 텀블러에도 수명이란 게 있어서 자주 쓰다 보면 보온·보냉력이 떨어지고 교체할 시기가 금세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점심 먹으러 나갈 때, 더구나 처음 보는 사람과의 약속 자리에 텀블러를 들고 나가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가끔 까먹기도 하고, 누가 보고 유난하다 하진 않을까 하는 시선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울 뿐 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의식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한 건 2021년 겨울이다. 그해 12월 환경부는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식당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마트나 쇼핑을 갈 때 장바구니나 에코백을 미리 챙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많은 이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학교에서도 일회용품 규제 교육을 한다며 초등학생부터 중고생까지 10대들 또한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정부의 규제 정책은 그래서 힘이 있다. 사람들이 늘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계기가 된다. 자발적 행동이 가장 좋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하지 말라고 강제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교육할 때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은데 난데없이 환경부가 폭탄선언을 내놨다. 환경부는 7일 일회용품 관리 대책이라며 정부의 규제를 통해서보다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실천을 통해 일회용품을 줄여나가겠다며 규제를 철회했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국민들이 강제적인 규제가 있으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규제가 없으면 일회용품 사용을 더 늘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단순 교육이나 홍보를 통한 자발적 사용 억제보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라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여론조사가 있다는 지적엔 “그때의 국민의식과 지금의 국민의식이 같다고 볼 수 없다. 여론조사라는 게 100% 국민, 시민의 뜻을 반영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는 답을 내놨다.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차라리 규제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사용 효과가 미미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거나 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효과보다 크다는 수치라도 내놨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임 차관은 총선과의 연계성은 부정하면서도 “원가 상승과 고물가·고금리의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분들에게 이 규제로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정부의 도리가 아닐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의 도리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어떤 정책이든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정책은 없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환경 문제는 불편의 감수를 설득하지 않고는 추진하기 어렵다. 정부 부처 내 환경부가 늘 산업 논리에 밀리는 상황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주무부처로서 환경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섰어야 했다. 정부 부처 공직자들의 도리는 바로 그 첨예하게 부딪히는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을 조율하며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한동안 우리 사회는 ‘직권남용’의 나쁜 사례를 통해 진통을 겪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윤석열정부 들어와선 자꾸만 정치든 정책이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의 모습을 보인다. 이번 환경부의 결정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게 될 미래세대에게 이번 일은 어른들의 부작위 리더십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나쁜 선례로 남을 것 같다.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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