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업용 대용량만 인상…언제까지 전기료 땜질 처방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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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고객 기준 99.8% 동결…또 총선 고려했나
독립적 위원회 만들어 전기료 결정 구조 바꿔야
한국전력과 정부가 한 달 넘게 미뤄뒀던 4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어제 발표했다. 주택용과 소상공인(업소용), 중소기업 요금은 동결하는 대신 산업용 요금 중에 전기를 많이 쓰는 대용량 수요자 요금을 kWh당 10.6원을 인상했다. 전체 전기 이용 고객의 0.2%가 인상된 요금의 적용을 받는다. 한전 본사 조직을 20% 줄이는 등 추가 자구책도 발표했다.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을 가져다 쓰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건 불가피한 면이 있다. 값싼 전기요금은 기업의 에너지 절감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 불필요한 통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을 사실상 정부 보조금으로 보고 미국이 최근 한국산 철강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기업 투자를 늘린다며 대기업에 대한 감세 정책을 적극 옹호했던 윤석열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만 콕 집어 올리며 기업 부담을 늘린 것은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보기 힘들다. 전체 전기 이용 고객의 99.8%인 주택용과 소상공인·중소기업 요금만 두 분기 연속 동결한 대목은 최근 정부가 총선을 의식해 쏟아내고 있는 선심성 표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이번 요금 인상 역시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엔 역부족이다. 한전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201조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고, 2001년 이후 누적 적자가 47조원에 달한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올해 4000억원, 내년 2조8000억원의 재무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기대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당초 산업부는 올해 전체 전기요금을 51.6원 올려야 한전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올해 전체 요금 인상은 kWh당 26원 정도에 그쳤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전과 정부는 물가와 서민 경제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라고 하지만 3분기 전기요금 동결에 이어 산업용 이외의 전기요금을 계속 묶어두는 땜질 처방이 이어지고 있는 건 문제다. 총선 직전인 내년 1분기에는 전기요금 현실화가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 한전과 정부는 이번에 더 적극적으로 요금 현실화에 임했어야 했다.
한전의 부실은 송·배전 등 전력망 투자를 위축시키고 발전 자회사와 협력업체의 부실로 이어지며 전력 생태계 전체의 활력마저 떨어뜨린다. 에너지 가격 변화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요금 결정에 정치 논리가 작동하지 않도록 요금 결정권을 독립적 위원회에 넘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전기요금을 둘러싼 갈등과 정책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미 ‘정치요금’으로 변질된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만신창이가 된 한전을 정상화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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