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의 퍼스펙티브] 수도권 집중 해소부터 풀어야 메가시티도 성공
‘서울시 김포구’ 편입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김포 편입’은 공론화 없이 공약화해 단번에 폭발성 강한 정치 이슈가 돼버렸다. 김포만의 문제가 아닌게 됐다. 판이 커진 것이다. 깊이 있는 논의는 실종됐다. 총선 득실 계산과 찬반 대결만 남았다. 이대로 흘러가게 놔둬선 위험하다. 국가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각오로 전략적 토론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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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표심 노린 총선용” 의심
지방소멸, 수도권 편중 부채질
런던광역시 둘러싸고 대혼돈
일본은 전국에 82개 중추도시
지방도시 특성화 전략 만들어
수도권 인구 지방으로 분산을
」
대한민국은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집중이라는 트라이앵글의 늪에 빠져 있다. 수렁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 김포의 서울 편입 여부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이 걸린 미래 전략 수립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메가시티 이슈가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서울 공화국만 남게 될 것”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메가시티 서울’에 대한 비(非)서울, 비수도권의 반발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시와 같은 생활권인 (김포) 주민 편의를 위해 당론으로 추진할 것”이란 발언이 여당 대표에 의해, 그것도 전문가 토론이나 공청회 한 번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김기현 대표는 지방(울산) 출신이다. 울산시장을 지냈고 울산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4선 의원이다. 균형 발전에 대한 현실 인식과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이나 클 수밖에 없을 텐데 ‘닥치고 메가 서울’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이러니다.
당장 같은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국민적 공감대도 없는 정치공학적 포퓰리즘이며 실현 가능성 없는 정치 쇼”(유정복 인천시장)라거나 “서울을 더 비대화시키는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홍준표 대구시장)이란 비판이 나왔다. 김태흠 충남지사도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의 청사진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인구는 2605만3000명이다. 서울·인천·경기를 합친 국토 면적은 12%에 불과한데 전체 인구의 절반(50.5%)이 몰려있다. 문제는 전체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된 2021년 이후 수도권 집중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엔 국민의 53%가 수도권에 몰릴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했다. 일자리·돈·기회를 빨아들이는 ‘수도권 블랙홀’은 지방소멸을 재촉한다. “결국 서울 공화국만 남게 될 것”(무소속 기초단체장)이란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메가시티, 수도권 표심 흔들 수도”
‘김포 편입’ 불씨는 주변 도시로 퍼지고 있다. “서울과 출퇴근이 공유되는 곳의 서울시 편입”이란 발언이 불을 댕겼다. 광명·과천·부천·고양·구리·하남·성남 등 인근 ‘베드타운’이 들썩이고 있다. 한 중진 정치인은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값 상승 등으로 직장은 서울에 두고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인구가 불어났는데, 메가 서울 공약이 수도권 표심을 흔들 매력적 유인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해당 지역의 야당 의원들이 침묵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총선을 앞둔 여당이 경제 문제 같은 불리한 이슈를 덮고 정치적으로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셈이다. 10년 넘게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정치 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 상태다. 현재도 국회의원 의석의 85%(121석 중 103석)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여당 당세를 반전시키려는 노림수”라거나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 이후 불안정해진 김 대표가 당내 입지를 의식한 것”이라고 비난이 야당에서 나오는 건 이런 민감한 표심을 의식한 것이다.
향후 전망을 장밋빛 일색으로 보긴 어렵다. 여당은 ‘메가시티 구상’이라고 둘러대지만 주변 도시를 흡수해 몸집과 크기를 불리는 것과 인근 도시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핵심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 개념인 메가시티는 180도 다른 얘기다. 한 자치단체장은 “메가시티란 말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부동산 개발업자들”이라며 “서울 주변 도시들의 부동산 가격만 올려놓을 공산이 크다”고 부작용을 우려했다.
국가적 존망이 걸린 문제를 심모원려(深謀遠慮) 없이 밀어붙이는 아마추어리즘과 무책임이 자칫 더 큰 재앙의 불씨를 잉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난 정권의 국민 갈라치기와 포퓰리즘을 앞장서 비판했던 이들이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데 대한 비난 여론도 거세다.
통합→해체→부활, 런던광역시
행정구역이나 국토 개편은 사실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한 사례가 있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민주정을 연 클레이스테네스의 정치개혁은 행정개혁으로 시작됐다. 아테네 전역을 행정구로 분할한 행정개혁으로 귀족들의 소유지가 쪼개져 결과적으로 귀족계급의 권력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영국 런던광역시(Great London Council, GLC)의 사례도 시사하는 바 크다. 지방자치 권위자인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의 저서 『지방자치론』엔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생겼다 없어졌다 한 런던광역시의 사례가 자세히 나와 있다. 내용을 소개한다.
런던광역시는 1963년 구(舊) 런던 지역에 있는 12개 자치구와 외곽의 20개 버러(borough), 특별자치체 성격을 지닌 런던시(City of London)를 합쳐서 발족됐다. 사회주의자들이 장악한 구 런던 지역을 보수 중산층이 많은 외곽 지역과 통합해 사회주의자들의 도시 정부 장악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통합 런던광역시 내에 점차 사회주의 세력이 늘어나더니 1981년 선거에선 노동당이 92개 의석 중 48석을 차지하며 의회를 장악했다. 신좌파 리빙스턴의 지도 아래 지하철·버스 운임 인하, 부유세 징수 등 사회주의 정책을 강행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대처 총리는 행정의 효율화란 이름 아래 1986년 런던광역시를 해체한다. 엄청난 정치적 소요와 갈등이 일어났으나 1986년 런던광역시는 폐지되고, 런던은 중앙 정부와 기초지방정부(City of London)가 바로 연결되는 단층제가 됐다. 하지만 1997년 집권한 노동당은 다시 런던광역시 부활을 추진, 2000년 5월 런던광역정부(Greater London Authority, GLA)를 재출범시켰다. 행정구역 개편이 원하는 정치 지형의 변화는커녕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다.
지방소멸 간과하면 나라 패망
수도권 집중은 청년의 이동이 견인한다. 지방의 질 낮은 일자리, 저임금, 문화 소외, 기회 박탈 때문이다. 수도권 편중이 OECD 26개국 중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란 건 그만큼 지방의 생존기반이 취약하다는 걸 입증한다. 청년의 수도권 이동은 출생률 저하와 인구 감소를 가속하고, 이는 다시 지역 경제의 축소로 이어져 지방소멸에 이르게 한다.
일본 정부의 지방창생(地方創生), 즉 지역균형 발전 정책의 모체가 된 마쓰다 히로야(増田寛也) 일본 우정 홀딩스 사장의 저서 『지방소멸』은 정독해야 할 ‘교과서’다. 이와테 현 지사와 총무 대신을 지낸 마쓰다 사장은 일본 청년들의 도쿄권(도쿄도, 사이타마·지바·가나가와현)으로의 과도한 집중으로 지방 도시들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출산율 감소가 나라의 패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방의 인구 감소가 지속할 경우 2040년엔 90개 지역이 소멸할 것이란 주장이 경종을 울리면서 일본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도쿄권을 제외한 전국 82개 도시를 중추 중핵 도시로 지정하고, 도쿄에서 지방으로 이주하는 가구에 지원금을 줬다. 도쿄도나 사이타마·지바·가나가와현에 살면서 도쿄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지원금 혜택을 받게 했다.
김포식 ‘당근’ 정책과는 정반대다. 손쉬운 서울 편입 방식이 아니라, 각 지방을 특성화 생활권 거점 도시로 재편하고 김포에서 각 지방으로의 이전을 유인하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 수도권 집중을 막고 국토 균형발전과 지방시대를 여는 데 부합하는지 자명하지 않은가.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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