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술 창업이 국가안보 방파제

최은경, 김수민 2023. 11. 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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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혁신창업국가 국제심포지엄


“랩(연구실)부터 팹(공장·상용화)에 걸쳐 18개국, 90개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이 가운데 85%가 스타트업(창업기업)이에요. 랩에서 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간극이 있다면 초기 단계뿐 아니라 마지막 단계까지 성장을 지원합니다.”

아난드 카만나바르 어플라이드벤처스 글로벌 투자총괄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3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스타트업이 제시한 혁신적 아이디어가 산업 현장에서 꽃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어플라이드벤처스는 세계 1위 반도체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가 만든 기업형 벤처캐피털이다.

카만나바르 총괄은 “첫 투자 기업인 아데스토는 AMAT의 기술센터와 최첨단 팹에서 대량 생산을 지원해 메모리 제품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딥테크(Deep-tech)는 아이디어를 상용화하려면 10~15년 이상 걸린다”며 “파트너 대학과 기업·연구소 등은 팔을 걷어붙이고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MAT는 반도체 공정 기술 및 제조 장비 플랫폼인 ‘에픽’ 센터 설립을 위해 4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최근 글로벌 경기 한파를 겪으면서 국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는 된서리를 맞았다. 등록 기업 숫자로 3만3000개를 넘었지만,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 유니콘은 14개(올 상반기 기준)에 불과하다. 세계 유니콘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2.2%에서 올해 1.2%로 줄었다. 여기에다 최근 미·중 패권 갈등,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기술 혁신이 경제를 넘어 안보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딥테크 창업·육성이 중요해진 이유다.

KAIST와 서울대, 중앙홀딩스는 이날 ‘기술패권 전쟁의 시대, 혁신창업이 곧 안보’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막하고 딥테크 혁신창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규제와 인력난, 자금 부족 등 테크 스타트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정부와 산학연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이날 또 다른 기조연설자인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이스라엘은 400개 기업이 연구개발(R&D)센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기업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98개의 유니콘을 배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유와 재량에 우선권을 둔 인재 육성 ▶창업을 북돋우는 방위군 시스템 ▶항상 질문하는 유대교 문화 등을 이스라엘이 ‘창업국가’로 불리는 비결이라고 꼽았다.


AMAT “투자한 기업 85%가 스타트업, 상용화까지 돕는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3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 권동수 로엔서지컬 대표, 유홍림 서울대 총장, 이관형 에스그래핀 대표, 박진호 포인투테크놀로지 대표, 김진표 국회의장, 이용재 매스프레소 대표, 이광형 KAIST 총장, 전은권 럭스로보 팀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이대영 휴마스터 대표,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이날 참석자들은 ‘기술패권 전쟁의 시대, 혁신창업이 곧 안보’를 주제로 딥테크 혁신창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강정현 기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언급하며 “(이스라엘의) 금융은 어렵겠지만 테크 산업은 회복 중”이라며 “정보기술 인프라가 강력해 로켓이 파괴할 수 없다”고 자신했다. 이들은 한국과의 협업 확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카만나바르 총괄은 “한국(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두 배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토르 대사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디자인·마케팅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며 “현대차가 이스라엘의 파괴적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날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 위기와 안보 위협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첨단 과학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스라엘의 엘리트 과학기술 전문장교 육성 프로그램인 ‘탈피오트’처럼 KAIST와 육군사관학교에서 우수한 인력을 교육하고, 학위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2023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부터), 아난드 카만나바르 어플라이드 벤처스 글로벌 투자총괄,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강정현·김종호 기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탈피오트는 세계적인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모빌아이 탄생 등에 기여했다”며 “우리도 패스트팔로어(추격자) 전략 대신 세계 최초,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한계도전 R&D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완성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합성생물학, 양자, 핵융합 등 딥사이언스 분야에서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게 지원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 역시 “창업이 국가경제 혁신과 민생 향상을 이끄는 원동력인 만큼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은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하는 국가적 과제”라고 역설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과학기술의 사업화로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창출하는 중심에 혁신 스타트업과 딥테크가 있다”며 “이번 심포지엄은 혁신과 변화의 촉매제이자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는 논의의 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중 패권 전쟁이 세계 공급망을 재편하고, 경제산업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며 “혁신기술 기반 창업은 국가의 든든한 안보 방파제가 된다. 혁신창업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 성공의 꽃을 피울 수 있게 탄탄한 생태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날 참가자들의 토론은 뜨거웠다. 배현민 KAIST 창업원장을 좌장으로 열린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사업화를 막는 것들’이란 토론에서 최치호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는 “중국이나 미국처럼 사전에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 규제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진호 포인투테크놀로지 대표는 “스타트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인력 수급”이라며 “해외의 우수 두뇌를 유치하기 위해 영주권을 쉽게 취득할 수 있게 하거나 장기간 세제 혜택을 주는 등 파격적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 이틀째인 9일에는 글로벌 진출 계획·추진 중인 KAIST와 서울대의 딥테크 스타트업 6개사의 기업 설명회와 ‘딥테크 스타트업의 새로운 도전, 글로벌 진출’을 주제로 전문가 토론이 이어진다. 이번 행사는 국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과학기술지주 등이 후원했다.

최은경·김수민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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