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세계로 들어간 에스파…현실로 튀어나온 가상 아이돌
VR(가상현실) 기기를 쓰자 눈앞엔 드넓은 우주 공간이 펼쳐졌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이동한 그곳엔 걸그룹 에스파의 네 멤버가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뻗으니 가상 응원봉이 잡혔다. 멤버들은 바로 눈앞에서 데뷔곡 ‘블랙맘바’를 부르기 시작했고, 상영관 내 30여 명의 관객은 에스파와 각자 눈을 맞춰가며 공연을 즐겼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리는 ‘링팝: 더 퍼스트 VR 콘서트 에스파’ 현장이다.
K팝 시장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아이돌은 가상 세계로 들어가 개별 팬들과 더 가까이서 교감을 시도한다. 꾸준히 늘고 있는 가상 아이돌 그룹들은 점차 오프라인 무대로 나오고 있다. 그들은 관객들과 현장에서 콘서트의 열기를 채워 나간다.
VR 콘서트의 핵심은 가수와 팬 사이 거리감이다. 표정은 물론 피부나 머릿결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무대가 있다. 2D가 아닌 3D로 구현되는 무대는 가수의 키와 체구 등을 실물에 가깝게 담아낸다. 사실적으로 구현된 가수가 관객에 가까이 다가와 시선을 맞추며 노래와 안무를 한다.
에스파는 약 30분 동안 5곡을 소화했다. 2~3시간 진행되는 일반 콘서트에 비하면 짧지만, 팬들의 만족도는 높다. 데뷔 때부터 에스파의 팬이었다는 김지민(23)씨는 “좋아하는 가수가 나만을 위해 공연을 해주는 개별 콘서트 느낌이라 특별했고 생생했다”며 “팬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에스파 VR 콘서트의 기획을 맡은 이승우 스튜디오리얼라이브 대표는 “제작에 4~5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VR 기기가 양안(兩眼)용이기 때문에 렌즈 두 개로 촬영해야 했다”며 “관객들의 시선을 상상하고 그에 맞는 속도로 카메라를 움직이고 안무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리얼라이브는 미국의 VR 콘텐트 제작 업체 어메이즈VR과 손잡고 VR 콘서트를 차츰 늘려나갈 계획이다. 에스파 다음 타자는 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다.
가상 아이돌은 점차 오프라인 현실로 뛰쳐나오는 추세다. 가상 아이돌 이터니티는 지난달 14~15일 경기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첫 단독 공연을 열었다. 대형 전광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초대형 고해상(16K) LED와 조명·음향 등으로 현장감을 더했다. 이터니티를 제작한 펄스나인의 박지은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영화관 스크린과 실제 아이돌 무대의 중간 지대에 있는 ‘하이브리드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대중과 직접 만나는 장을 연다는 측면에서 향후 이터니티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인조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도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첫 오프라인 무대를 꾸몄다. 5000명의 팬덤 ‘플리’가 몰린 가운데 무대 앞자리보다 전광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층 좌석을 두고 치열한 자리 전쟁이 벌어졌다. 같은 날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선 6인조 가상그룹 이세계아이돌이 ‘2023 이세계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나섰다. 이 페스티벌은 1차 예매 시작 8분 만에 1만 석이 전석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K팝 아이돌 문화를 향유하는 MZ세대에게는 더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문화를 통해 느끼는 만족감”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3D로 구현된 에스파든, 현실로 나온 가상 아이돌이든 콘서트 그 자체로 팬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 아이돌의 오프라인 콘서트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현실 공간에서 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콘서트는 가상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고, 그 물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연 자체는 또 하나는 현장 콘텐트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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