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같은 호수 섬에서 펼쳐진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물빛 판타지
알프스산맥의 남쪽 기슭,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와 롬바르디아 주 사이에는 여의도 면적의 70배가 넘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레이크 마조레, 이탈리아어로 ‘큰 호수’라는 뜻이다. 호수가 워낙 크다 보니 호수 섬도 여럿이다. 가장 커서 어머니 섬이라 불리는 ‘이솔라 마드레’, 작은 어촌마을이 있는 어부의 섬 ‘이솔라 수페리오레’,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섬 ‘이솔라 벨라’등. 지난 5월, 이탈리아에 봄기운이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이솔라 벨라에서 루이 비통의 2024 크루즈 컬렉션이 열렸다. 이솔라 벨라는 밀란의 유서 깊은 귀족 보로메오 가문이 소유한 섬이다.
매년 호수 섬을 비롯한 마조레 호수 일대에서 보로메오 가문이 주최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지만, 특정 브랜드에 섬의 문을 열어준 건 이번이 처음.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위해 근사한 정원이 있는 건축물을 고르고 또 골랐다는 후문이다. 2023년의 소크 생명과학연구소, 2022년의 악스 마죄르가 그랬듯 이국적인 장소에 얽힌 히스토리를 해석하고 이를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해 온 그 아닌가. 이솔라 벨라는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단숨에 사로잡았으리라. 이솔라 벨라 안에는 계단식으로 조성한 정원이 있다.
벨벳같이 잘 관리된 푸른 잔디와 삼나무, 오렌지나무, 레몬나무, 월계수와 동백, 그 사이사이 세워진 오벨리스크와 신화 속 인물의 조각상, 보로메오 가문의 상징인 유니콘 조각 등은 그 자체로 동화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석양이 내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쇼를 준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쇼 시작을 몇 시간 앞두고 이솔라 벨라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정원 배경 크루즈 컬렉션 사진은 비가 내리기 전에 미리 찍어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쇼 노트에 ‘지상의 불가사의를 발견하기 위해 물 위의 삶을 저버리는 불안정한 이들의 현대적인 이야기’라고 언급된 부분이다. 폭우가 내리는 날씨마저 그의 계산에 들어 있었다는 듯. 비를 뚫고 수많은 셀러브리티와 프레스, VIP들이 속속 보로메오 빌라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스트레이키즈의 필릭스가 참석했고(이후 그는 루이 비통 앰배서더가 됐다), 패션쇼가 있기 며칠 전 칸영화제에서 루이 비통 블랙 가운을 근사하게 소화했던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해 엠마 스톤과 레아 세이두,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루이 비통이 아끼는 50여 명의 셀러브리티가 이솔라 벨라에 모였다. 라파엘로, 코레조, 티치아노 등 이탈리아 화가들의 명화들이 걸려 있는 웅장한 보로메오 빌라가 일순간 조용해지고 쇼를 알리는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셔링으로 볼륨을 준 르네상스 슬리브의 톱과 스터드 디테일, 보석을 박은 것처럼 보이는 톱은 웅장한 빌라와 잘 어울렸다. 쇼의 피날레가 가까워질수록 런웨이는 꿈결 같은 컬러의 살랑거리는 드레스로 채워졌다. 파도 모티프를 비즈로 장식한 블라우스, 노을이 지는 호수의 포말을 닮은 더스티 핑크 컬러의 시폰 드레스, 잔잔한 물결을 형상화한 에메랄드그린 드레스 등. 쇼가 끝나고 여운은 한동안 이어져 이솔라 벨라에 온 손님들은 쉽사리 섬을 떠나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배가 한두 척씩 섬을 떠나기 시작할 때까지도 비는 잦아들 줄 몰랐다. 아리엘과 그의 언니들은 빗줄기로 촉촉해진 섬의 정원 어딘가에 걸터앉아 흐뭇하게 이번 쇼를 감상하지 않았을까. 이솔라 벨라 섬의 아름다움에 한껏 취해서 말이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