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뿌리 한국, 미국서도 안 잊어…100만 달러, 방산연구 써달라”
지난 8월 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 박종승 소장 사무실에 해외에서 온 편지 한 통이 전달됐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소인이 찍혔다. 평소 소장실엔 ‘ADD와 협력하고 싶다’라거나 ‘ADD에 납품하고 싶다’는 내용의 우편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당시 수상한 해외 우편물 신고가 잇따랐던 때였다. 그런데도 무엇에 끌린 듯 소장실 비서가 편지를 열었다.
‘박종승 소장님께 드립니다. 제 이름은 강춘강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편지에서 강춘강(80·사진) 여사는 손글씨로 유산 100만 달러(약 13억원)를 한국의 방위사업 발전을 위해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7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참배한 뒤 ADD에 기부약정서를 전달했다.
강 여사를 6일 만나 사연을 들었다.
Q : 왜 기부를 결심했나.
A : “미국에선 나이가 들면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면서 유산을 어떻게 쓸지 정하는 문화가 있다. 나도 유언장을 고민하던 중 한국의 무기가 폴란드에 많이 수출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너무 반가웠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려면 ADD의 국방 연구개발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사후에 받게 될 개인연금 전액을 ADD에 기부하겠다고 결심했다. 내 돈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보다는 한국을 지키는 데 쓰이길 바란다.”
강 여사는 긴 비행시간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고 한다. 50여년 만에 ADD를 다시 찾기 때문이었다. 그는 1970년 8월 서울 홍릉에서 ADD가 세워졌을 때 창립 직원이었다. 경북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신응균 ADD 초대 소장의 비서로 채용됐다. 영문 문서를 번역하거나 외국 손님과 상담하는 게 그의 주요 업무였다.
Q : ADD 초창기 여건이 어떠했나.
A : “처음엔 ADD의 연구시설이 변변찮았다. 해외에서 공부한 인재들이 많이 귀국했다. 당시 한국이 잘 살지 못해 그들에게 큰돈을 주지 못했다. 정부가 더 챙겨 주려고 집을 지어줬다. 그래도 외국서 받을 수 있는 급여보다 모자랐다. 그런데도 귀국 인재들은 자주국방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연구했다.”
강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은 ADD를 자주 들러 브리핑을 받고 현안을 꼼꼼하게 챙겼다. ‘뭐 필요하시냐’고 물으면 항상 ‘보리차 한 잔이나 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강 여사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강 여사에게 ‘여자도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197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상담심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필라델피아 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특수아동 교육·상담 업무를 맡았다. 미국 시민권을 땄지만, 자신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다고 한다.
Q : ADD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내가 대구서 나고 자랐는데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대구로 몰려왔다. 전쟁 통이라도 학교는 계속 열렸고,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쳤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이 언젠가는 선진국이 될 것이라 믿었고, 지금 선진국이 됐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몰랐는데, 지금은 내 이름만 보고도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후배들이 너무나 고맙다.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ADD가 많이 노력했다. 계속 혁신했으면 한다.”
강 여사는 “내 기부 결정이 한국 국방연구 분야 기부 릴레이의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ADD 측은 강 여사의 뜻을 잘 살리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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