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맞아? 특이한 예술가들의 기상천외한 레시피 북
마틴 스코세이지의 1990년 작 〈좋은 친구들(Goodfellas)〉을 기억하는 이들은 감방 안에서 면도칼로 마늘을 저미며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마피아 두목 ‘폴리’의 클로즈업 신이 떠오를 것이다. 스코세이지는 자신이 집착하는 영화 속의 음식 디테일 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음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런던과 홍콩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하토 프레스는 스코세이지에게 영감을 받아 〈더 쿡북:쿠킹 위드 스코세이지〉를 기획한다. 그들은 평소 애착하는 지구촌 곳곳의 레스토랑 오너와 셰프들에게 서한을 보내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요리 장면과 그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레시피를 부탁했고, 그렇게 응답한 셰프들의 레시피가 모여 한 권의 요리책이 탄생하게 됐다. 책에는 영감을 받은 영화의 스틸 컷 일부가 나란히 실려 있으며, 해당 장면에서 파생된 레시피가 텍스트로 함께 소개된다. 일부 레시피는 영화의 식사 장면을 충실히 재현하는 반면, 다른 레시피는 영화의 연출이나 세트 디자인 또는 특정 장면에서의 감정을 중심으로 보다 추상적으로 표현된다. 이 책의 미덕은 할리우드 데뷔 전 이안 감독이 연출했던 아름다운 영화 〈음식남녀〉에서의 매주 일요일 가족 식사 장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에서 ‘태석’이 자신을 따라나선 ‘선화’에게 차려준 유난히 하얀 공깃밥과 김치찌개가 있던 밥상, 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밥’과 ‘샬럿’이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만나 불면증과 포르쉐 그리고 중년의 위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맛깔나게 피워대던 담배 등 유난히 특별했고 유달리 귀중했던 장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정된 영화에 공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삶에 찌들어 잊고 지나온 추억의 조각을 다시 찾아주는 마법의 요리책이 될지도 모른다.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요리책〉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념비적인 저작임에는 틀림없다. ‘미래주의 선언’을 작성했던 장본인이기도 한 마리네티는 우리 모두가 과거의 것과 결별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마리네티가 택한 결별의 방식이 매우 극단적이라는 사실이다. 마리네티는 점차적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사분사분한 이별의 방식이 아니라 과거를 산산이 조각내어 완전히 파괴시키는 방식을 선호했다. 전쟁은 마리네티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미래주의적 실천이었으며, 파시즘이야말로 이 미래주의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론이었다. 〈미래주의 요리책〉을 ‘특이한 예술가의 이상한 조리법’ 정도로 치부한다면 굉장한 오독이다. 마리네티는 매우 진지하게 말한다. 미래로의 도약, 즉 ‘전쟁’은 바로 밥상 위에서 시작된다고. 마리네티에 따르면 이탈리아인을 ‘회의적이고 느리고 또 비관적으로 만드는’ 악의 근원은 바로 파스타다. 이 책의 사명은 파스타를 이탈리아인의 식탁에서 몰아내고 근절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근절의 대상은 파스타 같은 음식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무릇 감각의 경험을 회복하고 극적인 사건을 체득하며 예술적 표현을 완성시키려 할 사명을 가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다시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원시적 방식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손은 원시적이며 완벽한 도구다. 그러므로 식기를 없애라!” “인간은 우주의 신비에 대해 너무 오래 꿈꿨다. 우리는 그것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탐구는 우주의 광활함이 아닌 우리 앞의 접시에서 시작된다.” 그 자체로 대단히 흥미로운 마리네티의 주장은 미래주의가 파시즘과 결탁하고 파시즘이 세계대전을 야기하며 일종의 반면교사로, 요즘 말로는 ‘밈(meme)’으로 회자됐다. 그리고 다양한 후대의 예술가들에 의해 변주되며 앞으로도 영구히 회자될 것이다.
독일 태생의 현대미술가 카타리나 그로세는 공간을 캔버스 삼아 에어 스프레이를 이용해 엄청난 크기의 그림을 그린 다음 관람자를 그 속으로 흡수시켜 안과 밖, 가장자리와 중심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변칙적 스케일의 작업을 선보인다.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발간한 요리책 〈화가를 위한 채식주의 요리책〉은 그로세와 요리사 헬렌 러셀 브라운이 공저한 것이다. 책 서두에 헬렌과 그로세의 짧은 인터뷰가 실려 있고, 그다음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레시피와 함께 완성된 요리 사진이 등장한다. 여느 요리책과 구별되는 지점은 요리의 완성 컷과 그로세의 작품 사진이 병렬돼 보인다는 것이다. 책의 내지는 한 번 접혀 있어 책을 연 다음 다시 또 한 번 페이지를 열게끔, 그러니까 책 안에 책이, 페이지 속에 페이지가 숨어 있는 구성을 취한다. 확장된 페이지에서 발견되는 것은 완성된 요리의 만듦새와 시각적으로 연장 선상에 있어 보이는 듯한 그로세의 스튜디오 내부 풍경이다.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로세의 공간 회화와 헬렌의 요리 사이에 걸쳐 있는 형식적 유사성이다. 엄격한 채식주의 원칙하에 구현된 헬렌의 레시피에서 각종 요리사의 제스처로 마감된 음식의 만듦새는 그로세의 작품이 선사하는 생동감과 유사해 보이며, 어떤 맥락에서 작가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일종의 주방이라고 간주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요리책의 미덕은 그로세의 작품이 어떤 우주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추상 회화가 아니라 소박한 식사에서 받은 어떤 작은 영감을 회화의 특정한 특성에 기반해 표현한 결과라는 점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혁명의 시작은 음식에서 발단한다는 식의 거대한 선언이 빠지고 접힌 내지를 삽입해 책의 촉각성을 배가시킨 조각적 실현은, 책이 퇴장한 자리를 스크린이 채운 현시대에 우리가 왜 책을, 그것도 요리책을 만져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을 세우고 있다.
냉장고, 기름이 찌든 커다란 화덕, 플라스틱 의자와 접이식 테이블, 그리고 코를 찌르는 젓갈 냄새가 뒤섞인 전시장은 동남아의 어느 야시장 한 귀퉁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팟타이 국수를 만들어 무료로 접대하고, 사람들은 전시장에 앉아 국수를 먹는다. 이것은 설치 작품인가, 공연인가? 혹은 사회운동의 한 형태일까? 미술비평가 니콜라 부리오는 태국의 현대미술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작품을 ‘관계적 미학’의 한 형태로 설명한다. 환대, 일상, 협업, 참여와 같은 요소는 티라바니자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일관된 개념들로 주로 요리나 음식을 통해 구현됐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요리와 음식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티라바니자가 핀란드 요리사(블랙 메탈 밴드의 일원이기도 한) 안토 멜라스니에미와 공저한 〈바스타드 쿡북〉을 주목해야 한다. 두 사람은 스톡홀름에서 방콕, 베네치아에서 뉴욕, 싱가포르에서 마이애미, 홍콩에서 뉴욕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함께 요리하고 예술계와 미식계 일반에 관습적으로 형성된 규칙을 위반하는 요리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사생아 형제(Bastard Brothers)’라고 부르는 이 협업의 핵심은 듀오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함께 만들어낸 레시피를 모아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도 있다. 이 책은 퓨전이라는 좁은 범주의 낡은 트렌드와 듀오가 추구하는 어떤 혼합, 사생의 레시피를 구분하려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어떤 음식을 다른 음식과 섞을 때 재료의 순수성을 인정하며 전통적인 방식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저 요리법과 재료의 촉각적이고 본능적인 조합을 통해서도 꽤 훌륭한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창작해나가는 행위, 함께 자라지 않은 두 사람이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마치 어린애처럼 어울리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이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라는 꽤나 무거운 주제를 요리하는 ‘암시적 레시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유다.
〈발효주의 페미니즘〉은 캐나다 출신의 시각예술가, 연구자, 큐레이터인 로렌 포르니에와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학과 생태학 연구소(LAE)’가 공동으로 출간한 출판물로, 2017년 코펜하겐에서 진행된 동명의 심포지엄 결과물이기도 하다. 기존 요리책이 개인의 음식 철학을 요약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이 책은 포르니에의 초대에 응답한 여러 시각예술가의 텍스트를 편집해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특정 음식의 상세 요리법을 다루기보다는 페미니즘과 발효라는 사상과 태도의 교차점에서 다양한 시각예술가들의 관점을 집약한 것이다. 발효는 특정 조건 아래에서 음식물을 거의 무한정 보관케 하며, 동시에 다양한 미생물과 협업해 음식물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발효의 양가적 특징인 보존과 변화에 주목, 포르니에는 페미니즘의 어원인 ‘여성스러움’의 부정적 변화와 잠재적인 긍정적 차원을 연결하며 발효에서의 영감을 통해 ‘발효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포르니에의 초대를 받은 시각예술가와 큐레이터, 연구자들은 의식과 인식, 건강과 물질성, 전통과 커뮤니티, 소비에 관한 논쟁을 활성화하며, 발효를 생물학적 가용성, 접근성, 변형, 공생, 생물 다양성 및 관심의 상징으로 사용해 페미니스트 관점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적 이항 구도를 초월해 비평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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