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의 시간이 왔다 [2024 대예측]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11.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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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美 금리만 쳐다보는 세계
고금리는 ‘뉴노멀’ 韓 경제는 ‘無노멀’

‘Higher for Longer(더 높은 기준금리를 더 오래)’.

2023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를 상징하는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당국은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코로나19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시중에 풀었기 때문이다. 이 돈을 회수하지 않으면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물가가 급등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는 고물가에 시달렸고 주요 국가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긴축’이 이렇게 어려운 과제일 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 기준금리는 ‘무려’ 5.5%다.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올렸지만 미국은 여전히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어 선뜻 금리를 내리지도 못한다. 이른바 고금리의 장기화다. 2024년 경제를 가늠할 다양한 변수 중 으뜸이 미국 금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는 ‘긴축’이라는 울타리에 갇힐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4년 들어서도 금리 인하까지 ‘인고(忍苦)’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미국 GDP(국내총생산)나 물가 수준이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낮아서다. 금리 인하를 시작하더라도 그 속도는 매우 완만할 것이라는 게 한국은행 분석이다.

‘출구가 없다(No Exit)’.

‘New Concept: 불확실성의 지배’.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

‘Uncertainty(불확실성)’.

증권사 리서치는 매년 말이면 이듬해 경제 전망치를 내놓는다. 2024년 전망 보고서 제목들은 하나같이 우울하다. 장밋빛은커녕 긍정적인 키워드를 내세운 곳이 별로 없다. ‘불안정한 안정’ ‘기우(杞憂)’ ‘가장 낮은 곳에서의 시작(Starting from Scratch)’ 리포트는 그나마 2024년 경제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4년 전망은 밝지 않다. 악재가 수두룩하다. 2023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사상 최초로 1%대로 하락할 듯 보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의 2023년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3.5%) 이후 2024년까지 12년간 계속 낮아진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3년 내내 하락세다. 2021년 4.1%에서 2022년 2%대 중반, 2023년에는 1% 초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IMF 전망치 기준 2022년, 2023년 2년 합산 한국 경제성장률은 4.1%다. IMF가 분류하는 41개 선진경제권 가운데 미국(4.15%)에 이어 25위다.

한국은 미 금리 등 글로벌 경제 영향을 크게 받는다. 문제는 미 금리가 쉽게 떨어지기 힘들다는 데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가 10월 31일(현지 시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경제 전문가 상당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3분기까지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 말 예상 기준금리는 4.6%대다. 현재 수준에서 75bp(=0.75%) 정도 내려갈 것으로 예측했지만 여전히 높다.

한국은행 역시 최근 미국의 통화 정책 운용 여건이 1990년대 중반과 유사하다며 하락세가 가파르지 않을 것으로 예견했다. 1990년대 이후 ▲걸프전 ▲IT 버블 붕괴 ▲코로나19 등의 글로벌 이슈로 경제·금융위기가 닥칠 때마다 물가 상승률은 빠르게 둔화하고, 실업률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에 대응해 미 연준도 매번 정책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인하했다. 1995년 이후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자 금리를 6%에서 5.25%로 내리는 등 긴축 강도를 낮췄지만, 금리를 급격하게 내리진 않았다. 한국은행은 내년 이후 금리 인하를 시작하더라도 그 속도는 1990년대 중반처럼 매우 완만할 것으로 예측했다.

고금리가 부인하기 어려운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지만, 한국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무(無)노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 연준이 11월 1일 금리를 동결했어도 한국보다 상단치는 2%포인트 높다(미국 연 5.25~5.5%, 한국 연 3.5%). 높은 미국 국채 금리, 원화 약세 등을 감안하면 국내 외국인 자금이 언제라도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구조다.

한국은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를 안고 있다. 가계부채다. 그간 금리가 꽤 올랐는데도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전체 가계신용(금융사에서 빌린 가계 빚의 총합)은 지난해 3분기 사상 최고치(1871조1080억원)를 찍은 이후 하락하는 듯했으나 올해 2분기(1862조7809억원) 다시 늘었다. 주택 가격이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에 가을 이사철까지 겹치면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금리 인상이 맞지만 기업, 가계 자금 부담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통화 정책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은 또 있다. OECD 전망대로라면 2024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1.7%)은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1.9%)보다도 0.2%포인트 낮아진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 통상 중립금리가 하락한다. 미국과 중립금리 격차가 커질 경우 통화당국 운신의 폭도 그만큼 좁아진다.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3호 (2023.11.08~2023.11.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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