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빛으로 물드는 늦가을 정취
여름 같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단풍은 낙엽으로 변하고, 쌀쌀한 기운이 코끝을 시리게 하는 초겨울은 여행을 떠나기에 어정쩡하다. 하지만 11월엔 다른 계절에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취를 만날 수 있다. 늦단풍으로 만추의 서정을 뿜는 메타세쿼이아가 대표적이다.
장태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부터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숲속어드벤처가 반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데크길을 따라 들어가면 ‘스카이웨이’ 입구가 보인다. 스카이웨이는 높이 10~16m, 총길이 196m의 아찔한 ‘하늘길’이다. 그 길 끝에 우뚝한 27m 높이의 스카이타워가 반긴다.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 나선형 데크길은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펼쳐놓는다. 타워 정상에 오르면 뾰족한 메타세쿼이아 꼭대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그 사이로 걸어온 길이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스카이타워를 내려와 스카이웨이를 빠져나오면 출렁다리로 연결된다. 2019년에 조성된 출렁다리는 짜릿한 긴장감과 함께 멋진 추억을 만들어 준다.
출렁다리 위 전망대에 오르면 메타세쿼이아 숲과 스카이타워, 출렁다리가 어우러진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10분가량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 전망대에 서면 발품을 판 수고를 보상받는다. 바로 아래부터 멀리 계곡으로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물결이 감탄을 자아낸다.
전망대는 아침 일찍 더욱 황홀한 풍경을 선사한다. 왼쪽 산등성이로 떠오른 해가 빛줄기를 내려 쏘이면 메타세쿼이아 꼭대기가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인다. 여기에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더해지면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저절로 든다. 전망대 바로 아래 바위는 인생샷 포토존이다.
모래재는 전북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진안과 장수, 무주 등 이른바 ‘전북의 지붕’으로 불리는 ‘무진장’ 주민들이 과거 전주를 오가려면 꼭 넘어야 했던 고개였다. 길은 1972년 11월 개통됐다. 분주했던 길은 97년 26번 국도가 새롭게 놓이면서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이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사진작가들에게 포착되고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한 뒤 유명해지면서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부귀면 세동리 큰터골 마을에서 원세동 마을까지 1.5㎞ 남짓한 거리에 조성돼 있다. 이 길은 묘한 매력을 지녔다. 굽은 듯 뻗은 길이 여유 있게 돌아가는 모양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움푹 파인 길에 달려오던 차량이 살짝 내려앉아 갑자기 사라진 뒤 나타나는 모습이 압권이다. 늦가을 붉게 타들어 가는 용암 같은 풍경에 잠시 녹았다가 되살아나는 듯한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때맞춰 ‘행복한 무진장’이라 쓰인 주황색 버스가 지나치는 순간을 포착하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전북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는 메타세쿼이아가 성벽처럼 둘러쳐진 ‘아가페정양원’이 자리한다. 50년 가꾼 숲 ‘비밀의 정원’이 전북도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한 뒤 시민 쉼터로 무료 개방했다. 약 11만5700㎡(3만5000평) 부지에 메타세쿼이아, 향나무, 꽝꽝나무, 섬잣나무, 공작단풍 등 17종 1400여 그루의 나무가 식재돼 있다.
정원에 들어서서 미로처럼 연결된 산책로를 걸으면 잘 다듬어진 향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숲길을 지난다. 영국식 포멀가든(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구조로 설계한 화단)에 도착하면 이 정원의 상징이라 할 메타세쿼이아가 거대한 원뿔을 자랑한다. 울타리 삼아 심은 500여 그루 메타세쿼이아가 40m 높이 성채처럼 정원을 감싸고 있다. 길게 늘어선 아름드리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고대 건축물의 회랑을 연상시킨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에 숲속의 잠자는 공주처럼 숨어 있는 풍경이 있다. ‘불장골 저수지’(송곡 소류지)다. 저수지 제방에 올라서면 저수지와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른 새벽 여명 속에 잔잔한 수면 위로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저수지 너머 원뿔처럼 우뚝한 메타세쿼이아 두 그루가 매혹적인 데칼코마니 풍경을 빚어낸다. 왼쪽 산 능선 위에서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저수지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한다.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답지만 사시사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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