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고 꼼꼼한 선비 스타일… 원칙주의자 대법원장 기대
신임 대법원장 후보에 조희대(66) 전 대법관이 지명됐다. 지명 이후 “인사청문회 준비에 매진하겠습니다. 추가적인 말씀은 추후에 드리겠습니다”라는 짤막한 소감만 남긴 조 후보자는 내일 오전 10시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 접견을 시작으로 청문회 준비에 착수할 예정이다.
조 전 대법관은 1957년 경주 출생으로, 대구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3기를 수료하고, 육군 법무관으로 근무했다.
1986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대구지방법원장을 역임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법관에 임명됐고, 2020년 3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양승태 제청, 김명수 시대 ‘미스터 소수의견’
조 후보자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기에 보수적인 소수의견을 다수 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2019년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어떠한 뇌물도 요구하지 않았고 이익을 취했다고 드러난 것이 없다”며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것을 주장했다. 이때 최순실 씨에 대해서도 “(최씨가 받은 말 3필이) 최 씨에게 소유권 넘어가지 않아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2020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상고심에서는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이 특검에 넘긴 ‘청와대 문건’은 위법하게 수집돼 증거능력이 없고, 그로 파생된 이차적 증거들도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 취지의 별개의견을 냈다.
조 대법관은 2018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전합 사건에서도 “다수의견은 우리 역사와 헌법을 도외시하는 해석론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역사를 망각하고 헌법을 오도하면 나라의 장래가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말수 적고 학구파 원칙주의자, ‘선비’ ‘양반’ 수식어
조 후보자는 연수원 15기인 김명수 전 대법원장보다 선배다. ‘보수적이고 학구파인 정통 법관’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에는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대학으로 직행해,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다. 교수 소개 페이지에 관심 분야로 ‘법학방법론‧생명윤리와 법‧오판에 관한 연구’를 적어뒀다.
법원 내에선 “실력에 대해선 이견이 없이 뛰어나고, 인품도 좋다”는 평이 많다. 말수가 매우 적고 원칙주의자라, ‘선비’‘양반’‘생불’ 등의 표현이 늘 따라다닌다. 사법연수원 제자인 한 변호사는 “부처님처럼 모든 이야기를 다 듣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기억한다”며 “여기저기 활동을 많이 하지 않고 말수도 적은 데다, 평소 생활도 모범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결에서 보수 색채가 분명한 편”이라며 “법원 내에서 두루 존경받고 인정받는 분으로, 그간 법원의 균열을 치유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대법원에서 함께 근무한 한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차명 주식 보유에 대해선 의결권을 부여하지 않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변경을 비롯해 명의신탁에 관해 강경한 판결을 많이 냈다”며 “판결문을 쓸 때도 매우 꼼꼼하고 철저한 편”이라고 말했다.
꾸준하고 한결같이 일하는 점도 늘 장점으로 꼽힌다. 대법관 취임사에서 “눈(雪)을 퍼서 우물을 채우는 것처럼 당장은 효과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정의와 화합의 샘물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던 조 후보자에 대해, 대법원에서 함께 근무한 한 고위법관은 “퇴임 때까지 한결같이 일한 원리원칙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화수목금토일 출근해서 일만 하고, 그러면서 전속연구관들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출근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소수의견이지만 법리적으로 오히려 다수의견보다 더 정확한 느낌이 드는 판례가 많다”고 말했다.
검찰 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연수원 제자인 한 차장검사는 “대법관 끝나고 교수로 간 것도 존경스럽고, 공사가 분명하고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한 전형적인 법관 스타일”이라며 “실력이 뛰어난데도 외부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고,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사법농단 마무리 지을 대법원장… “법원 개혁에 3년 반 부족” 아쉬움도
다만 3년간의 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한 고법판사는 “딱 옛날 법관 스타일이고, 오래 법원을 떠나 있어 최근 법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부장판사는 “법원 내 젊은 세대와 갈등이 심화하지 않게 잘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임기가 짧은 점도 지적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금 법원엔 일견 ‘독한 해결책’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원칙주의자인 조 후보자는 뭘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스타일”이라며 “큰 개혁은 임기 초부터 말까지 해도 모자랄 일인데, 3년 반밖에 일하지 못하는 건 좀 아쉬운 면”이라고 말했다.
조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는 시기는 자신을 대법관 자리에 앉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1심 판결을 받는 시기와 겹친다. 임명될 경우 조 후보자 임기 내에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사법농단 사태의 최종 결말을 짓는 대법원장이 되는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꾸준히 심화한 재판지연·사건적체 문제, 법원 내의 정치성향·세대에 따른 분열 및 대립을 해소하는 것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임명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돼 이른 시일 내에 취임할 경우, 당장 해야 할 대법관 임명제청 및 내년 2월 정기인사가 리더십의 첫 시험대로 꼽힌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진영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게 조 후보자의 최대 장점”이라며 “사람을 잘 쓰기만 하면 다들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연‧윤지원‧이병준‧김정민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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