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전공의’ 눈치 본다는 의대 교수들… "교수가 왕이라는 건 옛말"

전종보 기자 2023. 11. 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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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上] ‘꼰대’ 소리가 두려운 교수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사진=조선일보DB
세대 갈등은 여러 세대가 모인 곳 어디에든 있는 법이다. 병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도제식 교육 문화가 자리 잡은 병원 사회에서도 기성세대 교수와 새로운 세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벽을 허물려면 대화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들어보기로 했다. 上편을 통해 MZ세대 전공의에 대한 기성세대 교수들의 생각을 듣고, 이어진 下편에서는 당사자인 MZ세대 전공의들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한 쪽 편을 든다거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거니와 그럴 이유도 없다. 두 세대가 이렇게나마 대화해보길 바랄 뿐이다. (편집자 주)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왕이라는 건 옛말이다. 적어도 2023년을 살아가는 교수들의 말로는 그렇다고 한다. 권위는 점점 희미해져가며, 오히려 젊은 세대 눈치를 보기 바쁘다는 푸념도 들린다. 병원이 어떤 곳인가. 우리 사회 어느 조직보다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곳 아닌가. 그런 병원도 변화의 바람을 피하진 못한 듯하다. ‘꼰대’ 소리를 들을까 무섭다는 교수들에게 조심스레 요즘 전공의들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인터뷰에 응한 세 교수는 모두 40·50대며, 다른 대학병원, 다른 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당사자의 요청으로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자기주장 표현하고 워라밸 중시… 현실적인 성격 강해
이런 저런 질문에 앞서 정말 MZ세대 전공의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지부터 물어야 했다. 세 교수는 모두 “그렇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달라졌을까? 공통적으로 두 가지 대답이 나왔다. 첫 번째는 ‘자기주장이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새삼스럽지 않은 답변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건 MZ세대 이전 X세대 시절에도 젊은 세대의 특징이었다. 이어진 답변에서 자세한 차이를 들을 수 있었다. A교수는 “요즘은 단순히 자기 주관이 뚜렷한 걸 넘어, 여러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표현한다”며 “상대와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교수가 짠 근무 스케줄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어떻게든 의견을 낸다. ‘이것도 배움의 일부다’, ‘좋아지겠지’ 생각하며 무작정 버티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B교수 또한 “좋고 싫음이 명확하고, 이를 바로바로 이야기한다”며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함께 일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이전보다 훨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엔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삶의 질을 포기하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의사 또한 퇴근 후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설명이다. C교수는 “삶의 질이 정말 중요한 가치가 됐다. 20여 년 전 외국 전공의들이 그랬고, 지금 우리나라도 그렇게 바뀐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된 것도 이 같은 가치관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두 가지 대답 외에도 ‘감수성이 높아졌다’, ‘법규를 중요시한다’, ‘현실적이다’ 등 여러 답변이 나왔다. B교수는 “MZ세대는 냉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다”며 “의사로서 장기적인 목표를 지향하기보다, 단기적으로 현실적인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이해 어려워도 적응해야… 혼내고 다그쳐선 안 돼
기성 교수들은 병원 특유의 수직적 조직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할 말은 하는’ MZ세대 전공의들의 모습이 낯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 처음엔 적응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A교수는 “지금은 적응이 됐지만, 처음엔 사고방식이 너무 달라서 어색하게 느껴졌다”며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고, 사회가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시절 교수들이 그랬듯 혼을 내거나 강압적으로 의견을 밀어붙인 적은 없었을까?(과거엔 권위적인 교수가 많아 반대 의견을 내지 못했고, 혹시라도 반대 의견을 내면 고성과 욕설이 난무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세 교수 모두 손사래를 쳤다. 확실하게 틀린 부분이 있을 땐 말해줄 수 있으나, 이마저도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B교수는 “다른 직장과 마찬가지다. 옛날 교수들처럼 소리 지르고 혼내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잘못된 걸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정도”라며 “잘 설명하면 금방 이해하고 수긍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교수가 이처럼 행동하진 않는다. 여전히 병원에는 과거 방식을 고수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다만 이 경우 과거와 달리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했듯 MZ세대는 참지 않기 때문이다. C교수는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못 혼냈다가 민원이 들어오고, 찾아와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더라”며 “지금은 누구나 자기 권리를 지키려 한다. 화내고 혼내는 건 옛날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다”고 말했다.

◇MZ세대 덕에 병원도 바뀌어… “직업 특수성 생각해야” 당부도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수들 또한 이 점을 높이 산다. 국내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를 낸 전공의들 덕에 관련 제도가 생기고 환경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A교수는 “기성세대 입장에서 당황스러워도 MZ세대의 새로운 사고방식은 좋은 변화라고 본다”며 “그 덕에 구태 악습이 사라지고 새로운 제도가 생기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B교수 또한 “규정과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억지로 참고 일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불합리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바꾸는 게 가능해졌다”며 “부당하고 불합리한 시스템들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MZ세대가 과거 세대와 다른 사고방식과 성격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A교수는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의대생은 빠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다고 한다”며 “상대적으로 예민하고 일찍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오랜 기간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온 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또 다시 참고 버텨야 한다면 심한 반감·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사회 변화 속도를 감안하지 않고 ‘참는 한계’가 일방적으로 빠르게 낮아지고 있는 건 우려되는 점이다. MZ세대 의사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워라밸을 추구하지만, 아직 우리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도가 맞지 않으면 주자는 이탈할 수밖에 없다. B교수는 “전문의가 되려면 장기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전공의·전임의도 그 과정 중 하나”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당장 힘들면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말대로 공정한 보상은 중요하다. 다만 공정성을 따지는 기간이 너무 짧아졌다”고 했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당부도 있었다. C교수는 “의사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에 매여 있는 직업이다. 어쩔 수 없이 자유롭지 못하다”며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그런 성향이라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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