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보다 이자율 높은 한국…‘부채 함정’ 빠졌다
[한국경제TV 서형교 기자]
<앵커>
이슈플러스입니다. 경제부 서형교 기자 나와 있습니다. 서 기자, 오늘 이슈플러스 주제는 무엇입니까?
<기자>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여러 차례 전해드렸죠. 저희가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빚이라는 게 잘만 쓰면 오히려 더 큰 수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문제가 될 경우엔 그야말로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데요.
최근 우리 경제 상황을 두고, 부채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이른바 ‘부채함정’에 빠진 게 아니냐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연일 논란이 되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그리고 정부부채까지 총체적으로 문제를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앵커>
네, 하나씩 살펴보죠. 일단 오늘 키워드 '성장률보다 이자율이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내용이 흥미로운데, 구체적으로 한 번 설명해주시죠.
<기자>
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10년물 국채 금리를 비교해봤는데요. 주요 선진국 가운데 금리, 그러니까 이자율이 성장률보다 높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습니다. 지금 그래프로 나오고 있는 건 명목성장률과 명목금리 기준인데요. 여기에 인플레이션을 제외한 실질성장률과 실질금리 기준으로 보더라도 한국의 경우 이자율이 성장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반적인 거냐, 그렇진 않습니다. 지금 나오는 그래프는 2000년 이후 작년까지 우리나라의 명목 GDP 성장률과 국고채 10년물 금리를 비교한 건데요. 이자율이 성장률보다 높았던 시기를 동그라미로 표시했습니다. 보시면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간에서 이자율은 성장률보다 낮았거든요. 물론 단순히 금리와 성장률만 비교해서 위기라고 얘기하는 건 무리일 수 있지만, 그래도 일종의 ‘경고등’이 켜진 것 아니냐 이런 우려들이 나오는 겁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이자율이 성장률보다 높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기자>
경제성장률이라는 건 쉽게 말해 가계와 기업, 정부 같은 경제주체들의 소득이 얼마나 증가했나를 나타낸 건데요. 이자율이 성장률보다 높다는 건 어떤 경제주체의 소득 증가 속도보다 이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입니다.
사례를 하나 들어서 설명해볼게요. 어떤 한 개인의 연 소득과 대출이 모두 1억원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성장률은 3%, 이자율은 4%라고 할 때 1년 뒤 이 사람의 소득은 1억300만원, 대출액은 1억400만원이 될 겁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 사람은 소득으로 대출을 갚아나가는 게 점점 어려워지겠죠. 이걸 모든 경제주체,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입해서 본다면 우리 경제의 부채 상환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부채 함정’에 빠지는 거죠.
<앵커>
이자율이 높으면 일반적으로 부채가 줄어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통계가 발표됐는데 오히려 증가세가 또 다시 커졌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지금 나오는 그래프는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 폭을 나타낸 건데요. 10월 한 달 동안 가계대출이 6조3000억원 증가했습니다. 지난 4월 이후 7개월 연속 가계부채가 늘어난 건데요. 특히 이번 증가 폭은 2021년 9월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대 수준이었습니다.
또 하나 문제는, 최근 대통령을 시작으로 금융당국에서 은행권에 이자장사를 비판하고 있다는 건데요. 만약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내릴 경우 시장에선 자연스럽게 대출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최근 당국의 조치들이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세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다음으로 기업부채 그래프도 한 번 보시죠. 이건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을 나타낸 그래프인데요. 올해 들어서만 76조원이나 불어났습니다.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 연속 증가했는데, 사실 증권가에선 올해 경기 상황이 나빠지면서 하반기 들어선 기업대출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대출 증가세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기업대출이란 게 투자로 이어질 경우엔 경기에 긍정적인데요. 문제는 지금 기업대출의 대부분이 ‘생존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미래 먹거리 개발을 위한 투자에 쓰이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 공장을 가동하고 근로자 임금을 주는 용도로 부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또 우리나라 GDP 대비 기업부채 비중을 보면 2분기 말 120%를 넘었거든요. 통계가 작성된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가계부채도 그렇고, 기업부채도 그렇고 정말 심각한 상황인 거죠.
<앵커>
그렇다면 정부부채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래도 현 정부 들어서 긴축 재정을 강조하고 있어 상황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기자>
네, 앵커 말대로 정부가 건전 재정을 강조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만 올해 세수를 보면 정부 예상보다 59조원이나 덜 걷혔거든요. 이걸 외평기금이랑 작년 세금에서 남은 돈으로 메꾼다는 게 정부 계획인데, 이건 사실 지속 가능한 방법은 아니거든요. 내년에도 세수가 부족할 경우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정부부채 데이터를 보면 올해 8월 말 111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는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올해 54%에서 2028년에는 58%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그러니까 정부부채도 마냥 안심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겁니다.
<앵커>
가계, 기업, 정부 안 가리고 빚더미가 늘어나고 있는 거군요. 문제는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건데, 이런 시기에 부채가 늘어나면 더 큰 위기가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기자>
네 맞습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와중에 우리나라만 특이하게도 가계·기업·정부부채가 모두 급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금리가 올라가면 대출 부실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최악의 경우 가계·기업·정부의 건전성이 일제히 악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빚이라는 게 잘만 활용하면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부채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석병훈 /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 : 현재 가계부채는 우리나라의 가계원리금 상환 부담을 지나치게 높여서 소비를 침체시킴으로써 경기침체 위험성을 키우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윤수 /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 사실 연명해선 안 될 기업들한테 돈이 흘러 들어감으로 인해서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왜곡시키고, 그런 경우에는 경제가 더 성장할 가능성이 어려워지는 문제들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앵커> 결국 부채 규모를 줄여야 하는 건데, 정답은 모두 알지만 실행으로 옮기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땜질’ 식의 단기적인 대책만 내놓으면 나중에 더 큰 위기가 온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이슈플러스 경제부 서형교 기자였습니다.
서형교 기자 seogyo@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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