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털리고 25년형 받은 범인... 정황 증거밖에 없는 검찰

김형욱 2023. 11. 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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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로사의 테이프>

[김형욱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로사의 테이프> 포스터.
ⓒ 넷플릭스
 
2017년 5월 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시 저수지 인근에서 불에 완전히 타 버린 차와 시체가 발견된다. 알고 보니 38세 남자로 바르셀로나 도시경비대원 페드로 로드리게스였다.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그를 불태워 죽였을까? 철저히 계획된 살인일까?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일까? 혹은 살인이 아닌 자발적 사고일까?

증거가 인멸되었기에 정확히 알 도리가 없지만, 경찰은 페드로의 파트너인 로사 페랄과 그녀의 연인 알베르트 로페즈를 공범으로 지목해 체포하고 기소한다. 재판에 넘겨진 로사와 알베르트,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진다. 검찰은 명명백백한 증거 없이 정황과 맥락과 추측으로 공동 범행을 입증하려 하고, 로사와 알베르트는 서로에게 떠넘기며 자신은 페드로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와중에 로사의 믿을 수 없이 화려한 남성편력 이력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검찰 측이 살인 사건과 관련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게 로사의 남성편력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로사의 테이프>는 파트너를 살해하고 불태워 증거를 인멸한 죄목으로 25년형을 받아 감옥에 있는 로사 페랄이 직접 출연해 여전히 굽히지 않는 주장을 내보인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페드로를 살해하지 않았거니와 알베르트가 살해했으며 언론의 억측이 여론재판 형식을 만들었고 앙숙 사이의 증인을 내세워 법적 보호로 진술을 거부한 미성년자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불법적으로 대신 전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몇 명의 남자와 염문을 뿌려 왔던 건 사실이지만, 다분히 사생활이고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25년형 범죄자와 검찰의 상반된 주장
 
 넷플릭스 <로사의 테이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검찰의 생각은 달라도 완전히 달랐다. 로사 페랄이야말로 페드로 살인 사건의 주모자이자 지휘자, 조종자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페드로가 죽고 난 후 한참이 지나서야 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는데, 알베르트가 저지른 짓을 눈앞에서 보고도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는 점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그녀가 말하길, 사건 3개월 전 알베르트가 페드로와 바람피운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 이후 꾸준히 그에게 폭압적으로 시달렸다고 했다. 하여 사건 당일에도 그녀는 그를 거스를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로사는 현직 경찰로 본능을 이겨내며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거라 검찰은 추측한다. 즉 신고하지 못한 게 아니라 그녀가 직접 범행을 저질렀으니 신고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물론 검찰이 제시한 정황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없이 오고 간 메시지와 통화 내역을 분석해 로사와 알베르트가 사건 당일까지 친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하지만 로사는 당황하지 않고 반박한다. 그리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역시 정황과 추측일 뿐이다.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알베르트 혼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는 것도 어폐가 많은 게 사실이다.

결국 로사는 25년형, 알베르트는 20년형을 받았다. 감옥에 갇혀서도 수년째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로사, 하지만 2021년 대법원은 로사와 알베르트에 대해 공모 살인의 가중 사유를 인정했다. 그들은 함께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정되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진실은 로사와 알베르트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에 대하여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 작품 <로사의 테이프>를 두고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무슨 말인고 하면, 사건을 두고도 검찰과 언론이 로사의 사생활을 깊숙이 파고들었던 만큼 이 작품도 비슷한 기조를 보이기 때문이다. 로사는 훤칠한 외모와 매혹적인 끌림을 앞세워 수많은 남자와 염분을 뿌렸는데, 동 시기에 몇 명과 교제하기도 했다. 하여 그녀의 변호사와 아버지는 그녀의 잘못이 비도덕적인 사생활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톨릭 국가 스페인에선 용납되기 힘든 부분이다.

로사의 단독 범행이든 알베르트의 단독 범행이든 로사와 알베르트의 공동 범행이든, 사생활이 범행 입증에 깊숙이 파고드는 건 다분히 어폐가 있어 보인다. 충분히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백 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정황 증거와 맥락상 추측만으로 범죄 사실을 입증하려는 건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검사들은 그렇게 했다.

형용하기 힘든 특수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 꽤 이어질 수 있다. 하여 로사는 페드로 사망 당일부터 자신의 행각에 특수성을 부여한 반면 검사는 보편성을 부여하려 했다. 즉 로사의 행동을 두고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의 시선을 보낸 것이다. "왜 그렇게 행동했나?",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말이 되는가?", "나만의 특수한 상황이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감옥에서 몇 차례에 걸쳐 화상 인터뷰를 한 로사의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해외의 풀빌라에서 인터뷰하는 것 같은 평온함이다. 자신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 덕분일까? 혹은 그렇게 믿고 싶어서 스스로도 완전히 속여 버렸기 때문일까? 인터뷰에 응한 검사와 변호사가 말하길, 자신들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로사는 왜 25년형을 받고 감옥에 있는 걸까? 사건은 일어났고 피해자는 죽었고 가해자는 벌을 받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누군가에겐 찜찜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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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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